마태복음 27:11~24 바라바냐 예수냐 2011. 11. 5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1)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2)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회의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를 죽이기로 확정하고 총독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이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확정한 죄목(罪目)은 성전 파괴자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신성모독은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재판 현장에서 선언한 내용입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을 하여도 아무른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시키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다고 하시면서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올 것을 너희가 볼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 대세자장은 자기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죄목을 붙여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기지만 빌라도는 그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긴 것을 압니다.

 

본문 11~14절입니다. 예수님이 총독 앞에 섰습니다. 총독이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면 네가 말했다고 한 것입니다. 좀 모호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이 답변에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유대인의 왕은 아니지만 내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왔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는 답변이 됩니다. 그리고서는 아무른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렇게 고발을 하는데도 예수님은 아무런 변호를 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빌라도에게는 크게 놀랄 일입니다. 예수를 사형시키라고 달려드는 고발 자들 앞에서 아무른 대답을 하지 않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고난과 죽음의 길로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로마법으로 죄가 아님을 알고 풀어주려고 합니다.

 

15~18절입니다.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특별 사면할 권한이 있습니다. 사형수도 특별사면 하면 석방이 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줄 생각으로 무리들에게 제안을 하기를 바라바인지 예수인지 선택하라고 합니다. 바라바는 유명한 죄수라고 되어 있는데 마가복음을 15:7절을 보면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가 바라바라 하는 자입니다. 이 당시에 민란을 일으킨 자라면 유다의 열심당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열심당원으로 보이는 자가 있습니다(10:4).

 

이 당시에 유대에는 여러 파당들이 있습니다. 사두개파는 종교와 정치의 실세들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로마와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현재의 체제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물론 때로는 열심당원들과 손을 잡기도합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열심 당원이었기에 이들과도 뒷거래를 하였다고도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파는 평신도 운동이었지만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집단이 됩니다. 이들은 모든 생활 속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들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거룩할 수가 없다고 하여 광야로 가거나 집단생활을 한 자들이 에세네파입니다.

 

이 모든 자들보다 더 열심인 자들이 열심당원들입니다. 이들은 무력으로라도 적을 물리치려고 합니다. 율법과 성전과 유대 땅이 거룩한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더러운 이방인들이 유대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몰아내자고 하는 군사적 반란을 하였습니다. 품에 칼을 품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 아주 상세하게 나옵니다. 성경본문에서도 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드다와 유다와 같은 자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무너졌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냥 버려두라고 가말리엘이 말합니다(5:37~39).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다 같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들 성경을 보고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자기들의 기호에 맞는 메시아를 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당시의 파당들이 각자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들이 메시아를 대망하면서 바리새인이나 에세네파나 열심당이나 모두들 자기중심의 메시아를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이제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빌라도 총독에게 넘겼습니다.

 

빌라도가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시기심으로 예수를 넘겨준 것을 압니다. 그래서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한 바라바와 예수 중에 누구를 풀어주겠느냐고 제안을 합니다. 빌라도가 착각한 것은 바라바보다는 예수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했기에 예수를 풀어주라고 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살인강도인 바라바보다도 더 싫었던 것입니다. 어느 파당도 예수님의 말씀을 환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목숨마저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이런 메시아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전부 예수를 배척합니다.

 

17절에 각주가 있습니다. 바라바 앞에 있는 각주를 보면 어떤 사본에 바라바라 하는 예수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라바도 이름이 예수였기에 빌라도 총독이 물은 것은 바라바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가 다 같은 예수가 아닙니다. 민란을 일으켜서라도 로마를 물리치고 유다가 다윗 시대와 같은 힘 있는 메시아 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예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는 예수입니다. 백성들이 어떤 예수를 원할까요?

 

오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어떤 예수입니까? 병자를 고쳐주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는 그런 표적과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입니까? 아니면 무력하게 잡혀서 온갖 조롱과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죽는 예수입니까? 그뿐 아니라 나와 함께 죽자고 찾아오시는 그 예수를 우리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를 원하십니까? 바라바라는 예수 입니까? 그리스도라는 예수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원합니까? 세상의 영광을 위한 예수입니까?

 

19절입니다. 총독이 재판 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라는 예수를 배척하는데 이방인 빌라도의 아내가 재판 받고 있는 예수가 옳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꿈에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다고 합니다. 이방인들 중에도 유대교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도 총독의 아내로 권력과 부와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자리였지만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저 옳은 사람에게 상관 말라고 합니다.

 

20절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하고 예수를 죽이자고 충동을 합니다. 이방 여인은 예수님이 옳은 분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모의하고 무리들을 충동질하여 예수를 죽이라고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바라바보다 예수가 더 싫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동안 행하신 언행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가만히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근간을 흔들어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너희가 믿는 그 하나님 아버지가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예수를 가만히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1~23절입니다. 총독이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군중들이 한 목소리로 바라바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총독 빌라도가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다 말하기를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그리스도라는 예수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기에 그렇게 말하느냐고 묻자 이제는 더욱 소리 지르며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던 자들이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누가복음 23:22~23절입니다.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고 세 번이나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으니 때려서 놓겠다고 합니다. 재판장이 죄가 없으면 무죄선언을 하고 풀어주어야 하는데 매를 때려서 놓겠다고 하는 것은 성난 군중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의 소리가 이긴 것입니다.

 

요한복음 19:14~16절입니다.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에 빌라도가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하겠냐고 하니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합니다. 대세자장이라는 자들의 입에서 그들이 원하는 왕은 그리스도라는 예수가 아닌 것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2)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합니다. 빌라도의 죄가 무엇입니까? 죄 없는 자를 사형에 넘긴 것입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민란이 일어나고 그 민란을 진압하지 못하면 총독의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옳은 자인 줄 알지만 무리들에게 넘겨주면서 자신은 이 피에 대하여 상관이 없으니 너희가 당하라고 하면서 손을 씻습니다. 그런다고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25절입니다. 빌라도가 이 피 값에 대하여 너희가 당하라고 하는 말에 백성이 다 대답합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바라바를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준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대답이 예수님의 피 값을 자신과 자신들의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결과는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마에 의하여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는데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전쟁의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3:28~36절입니다. “봉독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면서 자신들이 조상 때에 있었다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한다고 하시면서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 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하시면서 이것이 이 세대에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그 선지자들이 흘린 피의 최종점이 예수님의 피 흘리심입니다.

 

이렇게 죽임당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십니다. 스스로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서 그 영을 넘겨주십니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니 사도들이 무엇을 전합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고 증거 합니다. 이것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오늘도 이 복음이 증거 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예수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그 예수라면 우리도 죽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가 정말 성경이 증거 하는 그 예수가 맞습니까?

 

고린도후서 11:1~4절입니다.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1)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바울사도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과 똑 같이 생각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될 수는 결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단의 괴수를 따르는 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자를 잡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성경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임을 알고 성경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자신의 지식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지역으로 가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사람의 지식이 아닌 성령의 나타남으로 증거 하였습니다. 그렇게 증거 한 내용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거리끼는 실패와 저주의 죽음인 십자가이며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그 십자가의 도를 전하였는데도 놀랍게도 믿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고린도 지역에 다른 복음 전하는 자들이 나타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중매쟁이로서 일한 것은 하나님의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에게 중매하였는데 뱀이 하와를 유혹하듯이 고린도 교회에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이 들어온 것입니다. 분명히 복음, 예수, 영이라고 하는데도 다른 것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왜 배척하였습니까? 바라바라는 예수를 달라고 하고 그리스도라는 예수를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구원자는 세상의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을 제공하는 예수였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들은 자들이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른 복음 전하는 자들이 어떻게 교인들을 대하였습니까?

 

고린도후서 11:20절을 봅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다른 복음 전하는 자들이 바울이 복음 전하여 믿는 자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빼앗고 스스로 높이면서 뺨을 쳐도 용납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단에 빠지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헌신 충성하는 이유는 그들만이 영생을 주고 그들만이 복은 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로 세뇌를 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혹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하듯이 그런 유혹들에 넘어간 것입니다.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교회에서도 충성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충성을 하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사랑에 감격하여 참으로 헌신하는 자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복음이 주는 그 유혹에 빠져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복음이란 예수님의 말씀처럼 교묘하게 포장하여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것을 이루기 위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종이 되고 잡아먹히고 빼앗기며 뺨을 맞아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소원을 이루어준다면 고진감래로 생각하면서 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복이든 하늘의 상급이든 자기중심적으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 그 내용들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들이 원하는 예수가 과연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일까요?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습니까? 내가 정성을 바치면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예수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나의 소원이 다 무너지고 예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본성은 전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에게 오늘도 복음이 들리게 하시고, 믿게 하셔서, 이 좁은 문 좁을 길로 걸어가게 되는 자들이 주의 백성들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아시고 찾아오신 분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