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31~35 목자를 치리니 2017. 9. 24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2)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3)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4)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지난 한 주간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며 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실 때 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 새 나라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 새 나라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는 자들입니다. 이런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입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 때라고 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찬양하면서 감람산으로 향하는 그 때입니다. 이 때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하여 대제사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머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십니다. 나를 버린다는 말씀의 각주를 보면 나를 인하여 실족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여 실족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다들 배신할 것이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배신해야 하는 것도 기록된 말씀대로 된다고 하십니다. 그 말씀은 스가랴서의 말씀인데 나중에 보겠습니다.

 

32절입니다. 제자들은 다 배신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곧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1).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도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것입니다(벧전1:11).

 

33절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주를 버려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31절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 있게 말하기를 모두 다 버려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버린다는 말이 실족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실족하여도 자신은 실족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이 말은 허투루 한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자기의 결단과 결심과 충성으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필요 없는 자가 됩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실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리고 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하셨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는 책망을 들었지만 아직도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잘 모릅니다. 자신이 결단하고 결심하면 예수님을 따라서 죽음의 자리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아직 자신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34절입니다. 다들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여도 자신은 결단코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베드로가 세 번이나 부인하고 나니 닭이 울었습니다. 히브리적 관점으로 보는 마태복음에 보면 유대인들의 찬양에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닭에게 밝음과 어둠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우리 주 하나님, 우주의 왕이신 여호와여 찬양을 받으소서닭이 운다는 것은 밤이 끝나고 새로운 날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의 부인은 밤이 끝나는 지점입니다. 그 부인 후에 새로운 날이 시작됩니다.

 

35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들 나를 버릴 것이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시는데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분명히 베드로의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진심이라는 것도 십자가 앞에서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진심이나 맹세가 얼마나 허무한 지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이 다 자신을 버릴 것을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스가랴 13:7절을 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예수님은 베드로와 다른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로 이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 자신의 짝 된 자를 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양이 흩어질 것인데 작은 자들 위에는 내 손을 드리울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서의 이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나오는 말씀인지를 알 수 있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스가랴서 11:4~5절입니다.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스가랴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기록된 선지서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잘 못하여 나라가 망하고 목자와 양들이 다 포로로 잡혀갔다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목자의 역할을 하라고 합니다. 목자로서 양을 먹여야 하는데 어떤 양인가 하면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양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을 사는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고 하고, 파는 자들은 내가 부요케 되었으니 여호와를 찬송한다고 합니다.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타락한 모습인지 양을 팔아먹고서는 부자가 되었다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1:6~11절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결과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심판이 선고되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통하여 잡힐 양떼를 먹이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잡힐 양떼이지만 목자를 보내셔서 먹이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가련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련한 양들을 위하여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고, 하나는 연합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은총과 연합으로 양들을 돌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에 세 목자를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지도자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입니다.

 

미가 3:9-12절을 봅니다. “9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찌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두령, 제사장, 선지자가 다 타락하였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이나 간에 여호와께서 보내신 목자, 은총과 연합으로 기르시고자 하는 목자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도 그들을 싫어하고 그들의 마음에도 목자를 미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내 버려두신 것입니다. 양을 먹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라버립니다.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 은총의 막대기가 꺾어지는 그 날에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알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 11:10절에서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꺾어 버리는 것은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폐하여진다는 것은 언약의 갱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옛 언약대로 하면 어느 한 사람도 의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지금 제자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삼년을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온갖 표적과 기적을 다 보았고 친히 말씀을 들었지만 다 주님을 버렸습니다. 언약을 배반한 것입니다.

 

스가랴 13:7~9절을 봅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자들 위에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리운다고 하십니다. 목자를 친다는 것은 앞에서 본 대로 은총의 막대기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땅의 삼분의 이가 멸망하고 삼분의 일이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삼분의 일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 주께서 들으시고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며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라는 언약이 성취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스가랴 13:7절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한 절의 배경이 이런 내용들입니다. 은총의 막대기를 꺾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깨어집니다. 이것은 언약을 배반한 자들이 받을 저주를 자신이 대신 저주를 받는 자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옛 언약을 어김으로 오는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 홀로 이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그 다 이루심을 성령으로 부어주시면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스가랴 12:10절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1)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은총의 막대기가 꺾어지고 언약이 파기 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파기가 되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주어진 옛 언약의 저주를 하나님이 친히 담당하심으로 자신이 찔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 부어지면 그들의 그 찌른바 그를 보고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영을 넘겨주시는 것입니다(19:30).

 

사도행전 2:36~39절입니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4)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5)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 맹세하면서 부인하였던 베드로가 성령이 임하고 나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스가랴서의 배경을 알고 나면 이 말씀이 선명하여 집니다. 우리는 그를 배반하고 그를 찔러 죽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분은 우리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찌른 자를 보고 애통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들은 자들이 애통할 때에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선물로 받는 길입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먼데 사람까지 곧 이방인인 우리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있었던 사람들입니까? 하나님도 모르고 언약도 모르고 율법도 몰랐던 자들입니다. 이렇게 멀리 있는 이방인 지역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목자가 침을 당하고 그 양들이 흩어졌다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도 현실이 됩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아주 사소한 이익 앞에서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 번 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그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시고 베드로를 찾아오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실 때에 주님께서 아신다고 대답을 합니다. 사랑하기는 하지만 옛날처럼 장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이 임한 베드로와 사도들이 어떤 복음을 전했습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남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고 하면서(벧후3:15)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영광이 이제와 영원까지 그에게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벧후3:18). 우리는 늘 주님을 배반하지만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께서 그 십자가로 확증한 그 사랑을 넘겨주심으로 믿는 자들이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