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1~20 누가 귀신 들렸나? 2019. 1. 6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지난주에 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곧 순종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은 구원의 주님이시며 심판의 주님이시며 재림의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통하여(5:39)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며(17:3),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기에(6:29) 예수님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전부임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지난주의 말씀은 바다를 건너는 중에 일어난 내용입니다. 오늘은 그 바다를 건너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주로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나오시자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란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그 사람이 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이 예수님 앞에 달려와 절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그 귀신에 대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7).

 

3~5절입니다.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더러운 귀신이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형편이 이렇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혀서 사람이 무덤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여러 번 쇠사슬에 묶고 쇠고랑을 채워도 그것을 끊어버리고 깨어버림으로 이제는 아무도 그 사람을 제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밤낮 무덤과 산에서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자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오늘날도 이 정도가 되면 병원에 감금하여 줄로 묶어두고 약을 먹일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던 환자가 의사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식의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람들만 귀신에 사로잡혔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러한 자들을 병원이나 감옥에 가두어 격리시켜두고 자신들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역사를 미셀 푸코라는 사람은 광기의 역사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격리되지 않았으니 정상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을 살리려고 하는 일들이 오히려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10:39). 온 세상이 그러합니다.

 

에베소서 2:1~3절입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1)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을 자를 따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은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신에 사로잡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당에 와서도 세상의 영광을 구하고 산다면 아직도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이러한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2:4~6).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에 자기 백성도 참여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자들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땅에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위엣 것을 찾으며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갑니다.

 

빌립보서 3:17~21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구원받은 자의 삶의 방향성이 이렇게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모든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땅의 것에 사로잡혀 있다면 자신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3:4~5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1)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바울의 외모를 보고서 사도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 약함에 머물러 있고 그 약함을 자랑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의 강함과 능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그들이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고 확증하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으면 방금 본 빌립보서 3:17~21절과 같은 삶의 방향성이 나올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본문 6~9절입니다.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1)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자 귀신 들린 자가 달려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합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이 그들의 멸망임을 압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에게 명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귀신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그 귀신이 자기 이름이 군대라고 말합니다. 군대라는 말은 헬라어로 레기온인데 로마의 군대단위로 약 6천명의 군대입니다. 이러한 군대귀신이 들렸으니 그 귀신 들린 자의 형편이 어떠한지 앞에서 보았습니다.

 

본문 10~13절입니다.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귀신이 자기 이름을 군대라고 말하면서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합니다. 마침 그곳에 약 2천 마리의 돼지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습니다. 귀신이 간구하여 자기들을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귀신들이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돼지 때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달려가서 바다에서 몰사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멸하시면 되는데 왜 귀신의 말을 들어주십니까? 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계시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돼지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예수님이 한 일입니까? 귀신들이 한 일입니까? 귀신들이 한 일입니다. 귀신들이 그렇게 해서 손해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도록 만듭니다.

 

본문 14~17절입니다.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돼지를 치던 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 읍내로 들어가서 여러 마을에 말합니다. 2천 마리 정도의 돼지 떼를 쳤으니 여러 사람들이 쳤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가 부정한 짐승이기에 기르지도 먹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이곳이 이방인 지역입니다. 이곳에 예수님이 오신 것 자체가 귀신의 세계에 난리가 일어난 것입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읍내로 가서 말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보려고 왔습니다. 돼지 주인들도 당연히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신들려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이 온전한 정신으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봐야 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표적과 기적을 보고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마을에서 추방하여 쇠사슬로 묶어 두었습니다. 귀신도 군대귀신이 들려서 여러 번 쇠사슬도 끊어버리고 쇠고랑도 깨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그 사람을 온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하여 재산상의 손해가 일어나니 평소에 정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그 지방에서 떠나 달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마을에 재산상의 이익을 주었다면 예수님께서 떠나려고 할 때에 적극적으로 말렸을 것입니다. 누가 귀신 들린 사람입니까? 군대귀신 들린 자는 당연히 귀신 들린 자 맞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신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라고 한 것은 그들도 귀신 들린 자들이기에 예수님을 떠나달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렇게 교회당에도 다니며 예배도 드리고 연보도 한다고 하는데 늘 재산상의 손해만 오고 몸은 병들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교회를 옮겼기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까봐 겁도 좀 났다고 솔직히 말씀하신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복음 듣는다고 이곳까지 왔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주변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립니다. 어느 지역의 모임에 왔던 분이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에 중앙선 침범한 차에 정면으로 부딪혀 오랫동안 입원을 했습니다. 또 다른 지역은 남편이 일하다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심각한 병이 든 자들이 많습니다. 몇 주 전에 등록한 삼천포에서 오신 분은 등록하고 그 다음 주에도 오토바이 타고 시장에 전도하러 가다가 사고가 나서 입원 중에 있습니다. 제가 삼천포 병원에 심방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전하고 왔습니다.

 

본문 18~20절입니다. “봉독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하였기에 예수님은 떠나시려고 배에 오르십니다. 그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합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고침을 받고서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3:14). 그리고 전도도 하게 하셨는데 이 사람에게는 함께 있으려고 하는데 거절하시면서 집으로 돌아가서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 알리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긴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누가 귀신들린 사람입니까? 군대귀신 들린 자가 귀신 들린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나니 예수님과 함께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게 하셔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긍휼과 그 큰일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대로 합니다. 그런데 본인들은 정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달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진짜 귀신 들린 자들입니까? 군대 귀신 들렸던 자는 고침을 받았는데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자는 예수님을 떠나라고 합니다. 이들이 귀신 들린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14:25~27절입니다.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이런 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지는 말씀을 무슨 일을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면 조롱을 받을 것이기에 미리 예측해 보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뜻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그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원하십니까? 함께 십자가에서 죽자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고 그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그런 예수는 제발 떠나달라고 합니까? 우리 안에 있는 우상숭배라는 탐심을 주께서 물리쳐 주시고 주님을 더욱 알아가고 그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기를 소원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