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6~15 누구를 원하느냐? 2020. 3. 22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번 주 주보에 올릴 이미지를 찾느라고 구글에서 바라바냐 예수냐 이미지를 클릭하니 여러 이미지가 나오는데 그 중에 2011년 마태복음 설교제목 바라바냐 예수냐와 함께 제 사진이 나오는데 그 사진을 클릭하니 우리교회 홈페이지로 연결되어 설교가 나옵니다. 저는 편리함 보다는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보았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월간지와 상품들과 티브이 채널도 있습니다. 티브이 채널에서 지구 종말의 가상 시나리오로 열 가지가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랍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을 지배함으로 지구상의 가장 악랄한 바이러스 인간을 없애버린다는 것이 공상영화 같은 곳에서 나옵니다. 이 외에 종말 프로그램에 소개된 내용들이 여러 가지들이 있습니다.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종말도 있습니다만 그런 것으로 종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종말은 구약에서 메시아 오심이 종말이며 신약은 재림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본 내용은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가 언제 오실지 오셔서 무엇을 하실 지를 부지런히 상고하여 기록하여 놓은 것이 구약성경입니다(요엘2:28~32, 16:16~21, 벧전1:10~11).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도들의 복음 선포가 세상의 종말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다 찾아내시면  세상의 끝이 옵니다. 이 세상의 끝은 자기 백성을 다 찾아내셨기에 재림 직전에 세상에 대 환난을 내릴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전염병과 같은 이런 일들이 세상 종말의 징조가 아닙니다. 이런 일들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일입니다. 이런 세상은 영원히 살 곳이 못 됨을 알라는 사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세상에 들어붙어 살려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별세를 시키시는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어느 정도로 싫어하는지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6~8절입니다. “봉독 명절의 전례가 있습니다. 이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없지만 유대인들의 풍습으로 자리 잡은 전례가 유월절에 백성들이 원하는 죄수 한 사람을 특별사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바라바가 있습니다. 여기서 민란을 일으킨 이유는 로마를 물리치고 유대의 독립운동을 한 일입니다. 유대백성들에게는 영웅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제사장이나 사두개인들과는 서로 상극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사두개인들은 로마의 식민통치아래서라도 안정적인 나라를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친일파들이 일본의 그늘 안에 있어야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대제사장과 정치적인 실세들인 사두개파들은 그런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바라바를 석방하여 달라고 한 이유는 공동의 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9~10절입니다. “봉독 무리들이 특별 사면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아직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기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묻기를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합니다. 만약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을 빌라도가 인정한다면 결코 놓아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주에 본 대로 빌라도의 눈에는 예수라는 자가 전혀 유대인의 정치적인 왕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는 그런 자가 정치적인 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 예수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은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긴 이유는 이미 앞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살려두면 자신들이 지킨다는 율법체계와 성전의 제도까지 다 흔들릴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들의 이해득실 관계가 항상 자리 잡고 있기에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11절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빌라도는 유월절 특사로 예수를 풀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대제사장들은 열심당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제거하기 위하여 무리들을 충동합니다. 여기서 무리들은 대제사장을 따르는 무리들입니다. 대제사장이 재판하는 곳에서부터 몰려온 무리들이 빌라도의 법정까지 따라왔는데 이들을 충동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돈을 풀어 여론을 조작하고 곳곳에 선동하는 자들을 심어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론은 결코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군중심리는 돌변하기 마련입니다.

 

12~14절입니다.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바라바를 석방하여 달라는 그들에게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묻습니다.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로마의 반역자로 처형하는 방식이기에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고 합니다. 이 말은 로마의 법으로 사형할 만한 정치적인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무리들이 더욱 소리 지르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합니다.

 

15절입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죄가 없으면 석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리에게 만족을 주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줍니다. 이것이 정치가들인 하는 짓입니다. 진리냐 비 진리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리들이 만족한다면 죄 없는 자도 죽이도록 넘겨주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간에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종교라는 권력집단들이 진리를 추구합니까? 아니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진리를 원하십니까? 나의 만족과 유익을 원하십니까?

 

마태복음 27:16~17절입니다.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1)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각주 1)을 보면 어떤 사본에, 바라바라 하는 예수냐로 되어 있습니다.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한 자가 바라바라고 하는 예수입니다. ‘빌라도는 바라바라고 하는 예수냐?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냐?’라고 제안입니다. 무리들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면서 아무른 힘없이 무력하게 재판받는 예수가 아니라 무력으로라도 로마를 물리치고 민족의 독립을 가져오려는 바라바 같은 예수를 원합니다. 세상의 힘을 동원하여 적을 죽여서라도 유대의 독립을 원하는 자를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이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죽음으로 원수를 살려내시는 일을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원하십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라고 교회에서 배워왔습니까?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배웠습니다. 그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배웠습니다. 그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의 생명 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 자체가 지옥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해함과 상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난 이후의 인간은 모든 선악판단을 자기중심으로 하며 살기에 세상이 지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아내도 자식도 자연도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는 극단의 이기심만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고 하십니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이 자랑이 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죽자고 하시는 예수님을 원하십니까?

 

요한복음 19:9~16절입니다.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1)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좀 더 상세하게 나오는 재판 장면입니다. 빌라도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자를 풀어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겠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하는 말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의 왕이 없다고 합니다. 대제사장의 이 말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버리는 말입니다. 로마의 황제가 자신의 왕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을 싫어하는 열심당원인 바라바보다 더 싫은 자가 예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들이나 유대인들이 원한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입니까? 유대 나라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독립과 부강함을 추구하는 메시아사상이었습니다. 이런 사상은 예수님을 증거 한 세례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11:2~6절입니다.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을 성령의 역사로 증언한 요한조차 실족할만한 모습이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분명하게 메시아의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자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으로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되는 일이 메시아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을 또 문자대로 병고치고 기적행하는 일로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의 일입니다. 이 내용은 율법으로 이스라엘의 총회에 합당하지 않는 장애인들과 나병과 같이 부정하고 가난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을 율법을 지키며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싫어합니다.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자들이 이런 예수님을 싫어합니다. 세상의 성공과 영광과 복을 바라는 자들이 다 싫어합니다.

 

바라바와 같은 자의 모습이 모세의 40세의 모습과 같다고 봅니다. 모세가 40세가 되어서 자기 민족의 학대를 보고 애굽의 관원을 쳐 죽입니다. 그것이 발각이 되어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80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내 백성을 구하여 내라고 합니다. 모세가 몇 번이나 거절하다가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떠밀려 애굽으로 갑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여 내려고 할 때에 고난이 가중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낼 때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끌어 냅니다. 창과 활과 병거와 같은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 방식은 모세의 40세 때에 생각입니다. 자기 힘과 뜻이 부인된 80세 때의 모세는 유월절로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11:28).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를 원하십니까? 바라바 같은 예수입니까? 십자가 지시는 예수입니까? 바라바 같은 예수는 세상의 힘으로 메시아 왕국을 이루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지시는 예수는 세상의 힘에 의하여 죽임당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상의 힘에 죽임 당하는 이 분이 참으로 세상의 죄악을 고치고 살려내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아직까지 영적인 맹인이며 듣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말하는 예수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11:1~4절입니다. “1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1)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바울사도가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자기가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심히 일하신 결과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한 복음 전함은 중매쟁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지역처럼 타락한 도시라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정결한 신부가 되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가리는 자들이 오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따라갑니다. 이들은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추천서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세상의 보암직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자기들의 바른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용납합니다(20). 이런 자들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옵니다(14).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질문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원합니까? 바라바라는 예수입니까? 십자가를 지신 예수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그것도 잘 믿으면, 잘 믿는다는 것은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성공하고 천국에 가서도 상이 클 것이라는 말이 마치 성경의 진리인양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번에 은혜의 강인가 하는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습니다. 신유를 하는 그런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 교회의 목사가 말한 것을 집사람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 목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답니다. 자신은 그렇게 열심히 모이면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집단감염이 일어남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다시 생각하여 바른 복음의 길로 들어선다면 이번 사태는 오히려 그 목사에게 복된 일이 됩니다.

 

제가 각 구역장과 권찰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이번 기회로 예배가 무언지, 교회가 무언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무언지 말씀을 보시고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왜 생각해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일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자기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 하면서 고착화 하는 것이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다는 것이 정말로 성경에 있는 믿음의 내용인지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고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신천지의 신도들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상고하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렇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고 헬라인들에게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임을 밝히 볼 수 있는 이번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18~25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은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로만 믿게 됩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을 봅니다.

 

이어지는 26~31절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를 부르십니다. 그리하여 예수님만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됨을 인하여 기뻐하는 자들이 마음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영광을 주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라 그 십자가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자족하며 감사하며 그 길로 이끌려 가는 자들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