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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8:9~20 한 시간에 2021. 9. 12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11년 전에 이 본문을 설교할 때 아이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내용을 일부 옮깁니다. 아이티의 지진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십만 명이 넘게 지진으로 죽고 수백만 명이 부상한 지옥과 같은 장면을 우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더구나 그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들이 산다는 곳도 무너진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보면서 전 지구적으로 안타까워하고 또 구호팀을 보내고 전 세계가 돕기 위하여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티의 무너짐을 보고서 즐거워하는 자들이 있다면 이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온 세상의 무너짐을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지난주 설교 제목이 하루 동안에입니다. 오늘은 한 시간에입니다. 하루 동안이라는 단어와 한 시간이라는 단어가 다른 단어입니다. 문자대로 사용하면 하루나 특정한 시간을 말하지만, 상징적인 뜻으로 사용할 때는 순식간이라는 뜻으로 같이 사용합니다. 시간에 관하여 잠시 말씀을 드립니다. 현대는 과학이 대세이기에 시간과 공간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온갖 물리학 이론들이 시공간을 해석합니다. 높은 곳의 시간과 낮은 곳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물리학자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어떤 물리학자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 하나의 입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주 설교 후에 어떤 분에게 하루만 기다리면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루가 너무 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다릅니다. 지금 사는 일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겁니다. 그런데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시간이 너무 안 가는 겁니다. 그리고 젊은이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생각하고 늙은이는 시간이 빨리 간다고 생각하는데 뇌 과학자는 그 이유를 젊은이는 뇌 활동이 왕성하여 그렇고 늙은이는 뇌 활동이 느려져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시간과 공간도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창조된 시간과 공간이기에 그 뜻이 완성되면 시 공간이 사라집니다.

 

지난주에 본 계시록 18:8절을 다시 봅니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이 재앙은 십자가로 일어난 영적인 심판임을 지금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까지 모든 불신자를 심판하시는 재앙입니다. 물론 그 악의 배후세력인 옛 뱀 용 마귀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심판도 그 십자가의 하루입니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이라는 시간의 단위보다 사건으로 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 시간에입니다. ‘한 시간이라는 단어를 적절하게 번역하여 그 즉시라고 번역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8:13절입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여기의 그 즉시가 오늘 본문의 한 시간에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병이 들었다고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에 가겠다고 하시자 백부장이 주께서 저의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가 없으니 그저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낫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더 높은 자가 있고 자기에게도 부하가 있기에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한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위한 시공간의 창조입니다.

 

골로새서 1:13~17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자주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것들이 예수님이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면 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심판하여 없애버릴 수 있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원수들을 한 시간에 심판하신 겁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심판이 아니라 영적인 심판이기에 성경은 계시로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이 망한 소식이 즐거운 소리가 됩니다. 그런데 세상 멸망의 소식이 두려우면 아직 세상에 붙들린 겁니다.

 

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의 구원이며 대적들은 심판의 자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아담부터 재림까지 모든 성도를 위한 피 흘리심이 일어난 곳입니다. 이것을 묵시적인 완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의 개념으로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아담부터 재림 때까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그 피로 구원하시는 일을 한 시간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동시에 악한 자의 머리를 깨뜨리고 모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을 심판하시는 겁니다. 짐승의 표를 최초로 받은 자들이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가인입니다. 가인의 표는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표가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광만 위하여 살아간 자들의 심판 자리도 십자가입니다. 이러한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십자가로 즉시 단번에 일어났기에 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9~10절입니다. “봉독 십자가로 심판을 받는 자들의 모습이 어떤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17장부터 음녀가 심판을 받는데 음녀가 곧 바벨론입니다(17:5). 그 음녀를 태우고 다닌 짐승이 용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 용의 머리를 깨뜨리는 심판이기에 그 용이 태워 다닌 음녀를 용이 배신하여 고통을 가합니다. 그런데 이 음녀와 음행하며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음녀의 멸망, 곧 바벨론이라는 세상 영광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가슴을 치며 웁니다. 지금까지 믿어온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는 순간에 무서워서 멀리 서서 화 있다고 합니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줄 알고 살았는데 한 시간에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봉독 바벨론의 무너짐으로 인하여 가슴을 치고 울고 애통하는 자들이 여기서는 땅의 상인들입니다. 땅의 상인들이 바벨론과 무역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무역을 한다는 말은 무역하는 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표를 앞에서 본 대로 짐승의 표가 되는데 666입니다. 이 표란 오늘날 말하는 베리칩이나 백신이 아니라 영적인 표가 되는데 최초로 가인이 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세상의 미움을 받는 이유는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15:18~20).

 

이어지는 12~13절입니다. “봉독 음녀 곧 바벨론, 세상의 모든 영광이 무너짐을 보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자들이 왕들이며 상인들입니다. 이들이 애통하여 통곡한다면 그 왕과 상인들로 인하여 살아가는 모든 땅에 속한 자도 함께 애통하여 통곡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무엇으로 살아갑니까? 무역하는 상품들의 내용은 지금도 무역하는 물품들입니다. 그런데 생필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치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영혼들까지 무역 물품에 들어있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사고팔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번역은 목숨이라고 합니다. 영혼을 사고파는 일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끌이라는 단어는 처음에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영혼을 끌어들여서 아파트를 산다는 말이더군요!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자기 영혼을 쏟아붓는 겁니다. 이런 모습이 영혼을 사고파는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 끌리고 있습니까?

 

이어지는 14절입니다. “봉독바벨론 음녀가 멸망하였습니다.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습니다. 영혼을 팔아서 사둔 부동산과 주식과 비트코인이 하늘과 땅이 무너져 내리는 수간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것들은 오히려 심판을 재촉할 뿐이며 도망하는 일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들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는 말씀을 18: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 멸망이 십자가로 일어난 일이라고 전하는 일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복음이라고 말은 하지만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복음이라면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전하기에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곳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15~19절을 봅니다. “봉독 14절에서 그들의 영혼이 탐하던 것들이 모두 다 없어졌기에 사람들이 결코 다시 이것들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 주 설교는 제목도 나왔습니다. ‘결코 다시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붙들고 산다면 그것들이 무너질 때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으로 인하여 치부한 상인들과 그들로 인하여 먹고 산 모든 자들이 말하기를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17) 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보배로운 상품이라는 것도 한 시간에 망한 것입니다(19). 십자가로 세상의 영광이 이미 멸망하였다고 전하는 내용이 성경입니다.

 

십자가로 심판받아 멸망한 음녀 바벨론은 예수님 당시의 로마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구약에서 무역으로 아주 힘 있고 영광스러웠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멸망하였는지도 이미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26장과 27장을 보면 두로라는 나라가 무역하여 세상 왕들을 풍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멸망하니 왕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얼굴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두로의 무역품과 멸망이 오늘 본문과 거의 같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런 멸망이 실재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만 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이스라엘 나라에 오셔서 새로운 나라를 말씀하시니 그들이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싫었던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로마의 힘을 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입니다. 땅의 짐승으로 표현되는 종교와 바다의 짐승으로 표현되는 정치 권력이 그 배후인 용의 사주를 받아 예수님을 살해하지만, 오히려 그 십자가는 그들의 권세를 깨뜨려 버립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준다고 하는 세상의 모든 영광도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드린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세상을 심판하셨다는 말씀을 믿으신다면 세상의 영광을 구하며 살지를 않을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세상 끝에 오셨습니다(9:26). 세상 끝이란 예수님의 오심과 죽음이 세상의 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십자가가 세상의 끝임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십자가로 단번에 일어난 이 영적인 심판이 물리적으로 일어나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불에 타 사라집니다.

 

베드로후서 3:1~18절을 봅니다. “봉독”. 이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이 말씀이 믿어지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멸망 소식이 즐거운 소식이 됩니다. 제가 설교원고에 성경 구절을 다 쓰고 있는 이유는 나중에 다시 성경을 찾아보시라고 기록하여 둡니다. 정말 말씀이 그러한지를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27장과 28장을 읽지 않았지만, 그 내용과 오늘 본문과 함께 읽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무엇을 다 이루셨는지 역사적인 예언과 묵시적 완성과 장차 이루실 일도 보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입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세상이 멸망하였다는 소식을 기쁘게 여긴다면 미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 끝에 오신 예수님의 영이 임한 성도라면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복음을 전하자 전염병이라고 물리치려고 하였습니다(24:5). 그러나 주님이 강하시기에 묵시적으로 이미 이루어졌고 이 역사 속에서도 이루고 계시기에 오늘도 이 말씀을 믿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런 자들은 십자가로 세상이 심판받았다는 소식이 즐거운 소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