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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2:19~22 하나님의 권속 2012. 11. 18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어떤 드라마인데 중간에 잠깐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모르지만 어느 아버지가 무능하였습니다. 아내는 일찍 죽은 모양이고 딸과 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들은 그렇지 않은데 딸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무능하기에 부끄러워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술이나 먹고 행패부리는 그런 아버지는 아닙니다. 거저 평범한 서민의 모습입니다. 딸이 예쁘고 공부도 잘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어느 재벌 집 아들이 이 딸을 좋아합니다. 그 재벌 집에 자기 아버지와 가정을 소개하기가 부끄러워서 고아로 속이고 결혼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권속(眷屬)이란 가족전체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에 감사가 나옵니까? 아니면 부끄럽습니까?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권속이 된 것을 숨기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바울사도는 로마서 1:16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구원이란 하나님의 권속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신 분을 우리가 동일하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공중권세 잡은 자 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육신의 아버지는 보이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면 좋은 국민이 되는 것으로 교육받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서부터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아왔습니까? 마음의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교육과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평소에 알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아버지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버지를 분명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31~59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에 아버지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합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사는 것이 제자며 자유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짓는 자 마다 죄의 종이라고 합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지만 아들은 영원히 거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인 우리나 간에 죄의 종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죄의 종이 되어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영원히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36절에서 아들이 죄의 종을 자유롭게 하면 자유를 얻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너희가 정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다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이유는 그들의 아버지가 마귀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의 말씀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그들이 평소에 개처럼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지금 아버지를 공경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 귀신 들린 자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자 더욱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네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하니 네가 아브라함 보다 크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네가 나이 오십도 안 되어 보이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시자 사람들이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믿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아버지가 진짜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 참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속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유대인들의 실상이 이러하다면 이방인인 우리의 실상은 어떠하였겠습니까? 평생을 이 땅에서 살면서 마귀를 아버지로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영광이라는 로열패밀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가 부끄럽다고 자신을 고아라하며 재벌 집에 시집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 권속으로 만들어내십니까? 에베소서 2:11~18절을 봅니다. “봉독” 육체적으로 보아도 이방인인 우리들은 할례 받은 자들에게 할례도 받지 않은 자라는 칭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며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런 우리들이 무엇으로 하나님아버지께 나아가서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까?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적대감을 무너뜨렸습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적대적인 담도 무너뜨렸습니다. 자기의 육체로 법조문으로 된 계명도 폐하셨습니다. 자기 피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오늘본문 19절을 봅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되면 이제부터 외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길을 가다보면 ‘외인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종종 보게 됩니다. 외인은 그곳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공로가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외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한 나그네가 아니라고 합니다. 나그네란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가족이 있기에 하나님의 가족에 관심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합니다. 성도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라고 합니다. 성도란 예수님의 피로 새 사람이 되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하나님의 권속들이 성도입니다. 이들의 다른 이름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다고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정말로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식구가 되었습니까? 식구(食口)는 한 집에 살면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6:53~58절입니다.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세상에서 한 가족 한 식구라면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족도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세상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임금이 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기에 그들을 피하여 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신의 몸을 자기 백성들의 영원한 양식으로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것은 썩는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권속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만 됩니다. 물론 이것을 믿는 자는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작정된 일이며 이일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에서 그리스도의 피, 그의 육체, 십자가를 통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한 새사람을 지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도라면 하나님의 권속이라면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됩니다.

 

오늘 성찬식을 통하여 그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찬식 때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서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요한복음 6:57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루만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것을 하지 않아도 아무른 증세가 없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권속이 아니든지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권속이기는 하지만 중병이 걸려서 도저히 말씀에 대한 입맛이 없는 경우입니다.

 

이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이 맞습니까? 성도가 서로 모이는 것이 가족처럼, 아니 가족보다 더 반갑고 평안하고 좋습니까? 이 세상의 가족은 죽으면 끝입니다. 제가 너무 냉정하게 말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성경대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영원한 가족은 세상의 혈과 육정과 사람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왜 날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날마다 성찬식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 진리의 영으로 임하셔서 그와 함께 동행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입니까? 어떻게 점검해 볼 수 있습니까?

 

빌립보서 3:18~21절입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바울이 지금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오늘 늘푸른교회에도 동일하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불러도 자기 욕망이 신이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이라는 것이 땅의 것들이기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권속이 된 자들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 분이 다시 오시면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성찬식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이 소망으로 살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