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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2:19~22 하나님의 처소 2012. 12. 2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은 터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터의 모퉁잇돌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지난주에 찾아서 확인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터와 모퉁잇돌에 성도가 성령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것을 보려고 합니다. 이 처소의 머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1~22절을 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고 합니다. 여기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이 된다고 한 것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건물이라는 것이 한 성전을 말하며 그 성전의 재료들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에 이방인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갑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가 다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퉁잇돌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돌에 붙는 자들도 버림을 받은 자들이 이 돌에 붙게 됩니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경험과 흔적들이 있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집니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실패하여 세상에 대하여 복수를 꿈꾸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22:1~2절입니다.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남으로 악신이 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이 머리 둘 곳이 없이 정처 없이 피하여 다닙니다. 이런 다윗에게 누가 옵니까? 사울의 체제하에 견딜 수 없는 자들이 옵니다. 이들이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9:57~62절입니다.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상을 죽은 세상으로 보셨기에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머리두실 곳이 어디입니까?

 

요한복음 1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김성수 목사님 설교 중에 이 본문을 듣고서 헬라어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머리를 숙였다는 말이 머리를 두었다는 말로도 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머리를 숙였다는 동일한 단어가 누가복음 9:58절과 평행구절인 마태복음 8:20절의 머리 둘 곳 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은 이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으신 예수님이 교회에 머리를 두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입니다.

 

에베소서 1:22절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에베소서 5:23절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골로새서 1:18절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말씀은 세상에 거처할 집을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이 자라나신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배와 그물을 가진 어부라면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머리 둘 곳이 없으셨다는 말은 이 땅에 하나님의 성전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건물로 된 성전은 이미 도적의 소굴이 되어있었기에 성전의 주인이 머리를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떠나셨다는 말씀의 떠나셨다는 말도 어디에 넘겨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을 어디에 넘겨두시는 것입니까? 영혼이라는 헬라어의 ‘프뉴마’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여러 가지 번역이 있습니다. 성령, 심령, 귀신, 마음, 영혼, 중심, 하나님의 말씀, 영, 바람, 생기 등으로 번역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혼 즉 예수님의 영도 어디에 넘겨두신 것입니다. 그 넘겨두신 곳이 어디입니까? 역시 교회입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거처를 만들기 위하여 가셨다고 합니다. 이 거처가 무엇입니까? 황금보석으로 꾸민 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가신 것이 아닙니다. 이 거처란 성령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서 하늘로 가신 것은 영원히 가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내심으로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아들이 성령을 부어주는 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는 예수님께 성령이 한량이 부어짐으로(요3:34)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였습니다(요10:30).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통하여 이제 성령을 부어주시면 예수님과 성령 받은 자가 하나가 됩니다. 이 하나는 또한 아버지와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보내셔서 아버지께서 거하실 처소를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17~18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내신 이유는 하나님의 처소를 삼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 여러 가지 모형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성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한 것(출40:34~35)과 솔로몬의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역대하7:1~3). 이러한 성전의 완성을 에스겔서에서 보여줍니다. 이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지난 수요일저녁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성전을 완성하시고 새로운 땅을 정비하신 이유는 여호와가 거기 계시기 위한 것입니다. 에스겔 마지막 절이 이러합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구약전체를 관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에베소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사람의 숫자와 힘과 건물의 규모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시고 또한 성령을 보내심으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가 성전입니다(고전3:16,6:19). 이런 성전이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어떤 과정이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6:7절입니다.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다듬어 가지고 왔기에 성전 안에서는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돌을 뜬다는 것은 거대한 바위에서 정으로 깨어내어서 다듬어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라는 바위에 들어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깨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듬어야합니다.

 

이사야 51:1절입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우리가 어느 정도로 단단히 이 세상에 들어붙어 있었는지 너희를 떠낸 반석의 우묵한 구덩이를 보라고합니다. 이런 돌들을 떠내어 다듬어서 성전의 돌들로 삼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붙어지는 것은 세상에서 떠냄을 받아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들어붙고 싶은데 어느 날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듯이 세상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많이는 만나보지 못하였지만 복음에 관심을 가지고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이라는 곳에서 환난을 당한 자들입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세상에서 여러 가지 낭패와 실망을 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버려진 모퉁잇돌에 관심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크게 깨어지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다듬어져야 하는데 어느 정도로 다듬어져야 하는가 하면 에베소서 5:27절에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운다고 합니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란 어떤 것입니까?

 

솔로몬 성전의 돌이 뜨인 곳에서 다듬어져서 성전 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금요일 성경 공부한 내용과 연결하여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자신을 티끌과 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추격할 때에 자신은 죽은 개와 같고 벼룩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가 티끌과 재가 되고 죽은 개와 같이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땅의 티끌을 끌어다가 영광스러운 교회의 재료로 사용하신다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돌로 건축을 하고 담을 쌓을 때는 여러 모양의 돌들이 다 필요합니다. 건축자가 담을 쌓아가면서 돌의 모양을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를 합니다. 어떤 돌은 귀퉁이를 자르기도 하고, 어떤 돌은 가운데를 파내기도 합니다. 어떤 돌은 받침돌로 씁니다. 어떤 돌은 아예 부수어서 여러 구석에 끼워 넣기도 합니다. 먼저 놓아진 돌을 깨기도 하고 나중에 놓아질 돌을 깨기도 합니다. 이 돌들이 다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세상에서 크게 깨어져서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하여 성령 안에서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이것은 성화가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못난 자였는지를 확인하여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수 없는 자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난 사람들끼리 이렇게 붙여놓은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거의 다 만들어져 갑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자들은 성령을 보내셔서 땅 끝까지 다 찾아내시면 하나님의 처소가 완성되기에 예수님께서 재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완성되었기에 에스겔 47장에 본 대로 생명수가 흐르고 에스겔 48장의 말씀대로 여호와 삼마입니다.

 

요한계시록 21:1~4절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2:1~5절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의 처소가 완성된 모습입니다. 이 하늘에서는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이 임하기를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처소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잘 깨어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