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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21:9-21 어린 양의 아내 2022. 1. 15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 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2)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3)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오늘 본문을 읽어보니 어떤 건물이 상상됩니다. 그러나 건물이 아니라 어린 양의 아내입니다. 오늘 보는 내용은 계시록 21:2절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봉독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보았지만, 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건물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옛 하늘 아래 옛 땅인 지금 이 세상에 세워지는 건물이나 단체는 더더욱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구약과 신약의 성도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숫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숫자입니다.

 

본문 9~10절을 봅니다. “봉독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 섬에 갇혀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에 이끌려 십자가로 일어난 일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일을 보고 기록한 것입니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재앙은 성자와 성령과 성부께서 십자가로 일어난 심판임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일곱 재앙을 시행한 천사 중 하나가 요한에게 이리 오라고 하면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요한을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봅니다. 이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일입니다.

 

에스겔 40:1~2절입니다. “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려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이르러 새로운 성전을 본 것입니다. 이러한 새 성전을 보기 전에 예루살렘에 있던 건물 성전 안에는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전에서 떠나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새로운 성전도 건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 완성된 성전에서 생명수가 나오기 때문입니다(47:1~12).

 

에스겔 48:31~35절입니다. “31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32 동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33 남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34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2)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본 성전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그 완성된 성읍의 사방 문이 오늘 본문의 새 예루살렘성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 결론은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성전은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새롭게 지은 건물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이라는 건물에서 생명수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그 생명수 나오는 성전이 예수님임을 예수님 자신이 증거 합니다. 건물로 된 성전을 헐라고 하시고 사흘 만에 일으키겠다고 합니다(2:19).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7:38).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성전이 예수님이라면 요한이 본 성전도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함께 사는 어린 양의 신부도 성전의 지성소로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봉독 하나님의 영광이 새 예루살렘 성에 가득합니다. 그 성의 빛이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석으로 말씀하는 것이기에 새 예루살렘도 건물이 아니라 어린 양의 아내입니다. 계시록 4:1~4절을 봅니다. “봉독 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으로 들어가 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24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앉은 것은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모든 성도입니다.

 

본문 12~21절입니다. “봉독크고 높은 성곽, 열두 문, 열두 천사, 문들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 동서남북에 각 세문 그러니 열두 문, 열두 기초 석, 그 위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이 건물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모든 성도입니다. 구약의 성도는 십자가로 단번에, 신약의 성도도 묵시적으로는 십자가로 단번에 이루십니다. 그러나 신약의 역사 속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복음을 듣고 믿는 순간에 하늘에 앉혀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방금 본 이십사 장로도 구원받은 모든 자의 대표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5~17절입니다. “봉독 새 예루살렘을 측량합니다. 이 측량을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고 하는 것은, 천사들의 측량을 사람의 수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2, 24, 144, 12,000과 같은 숫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수가 됩니다. 그 성은 네모반듯하고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습니다. 정육면체의 모양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단위를 현대의 자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숫자 자체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표현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구약에서 이런 모형을 미리 말씀하였습니다. 장과 광과 고가 같은 곳이 성전의 지성소입니다.

 

열왕기상 6:19~20절입니다. “6:19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성전 안에 내소를 마련하였는데 20 그 내소의 안은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제단에도 입혔더라다윗이 하나님께 설계도를 받아 솔로몬이 건축한 지성소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습니다.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은 정육면체는 지성소입니다. 이 지성소의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곧 어린 양의 신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2, 24, 144, 12,000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수이며 어린 양의 신부를 말합니다.

 

본문 18~21절입니다. “봉독 새 예루살렘 성 곧 어린 양의 신부를 건물로 표현하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숫자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그 성은 정금 인데 얼마나 맑은지 맑은 유리 같다고 합니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 석은 열두 보배로 되어 있고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지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어린 양의 신부를 표현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열두 문이 하나의 진주로 되어 있다는 말은 양의 문이신(10:7) 예수님의 땀과 눈물과 피로 세워진 문입니다(22:44 5:7).

 

베드로전서 1:18~19절입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과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세상의 금과 은도 결국은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로 대속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흠도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피로 대속함을 받은 자들은 금과 은보다 나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이 보석이기에 그리스도의 신부를 보석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8:8~12절입니다. “8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 9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제사장의 에봇 어깨에 호마노 둘에 열두 지파의 이름 여섯씩 새겨서 붙이게 합니다.

 

출애굽기 28:15~22절입니다. “15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 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제사장의 겉옷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을 두 번이나 달게 하니 합하면 24입니다. 주보의 그림을 보면 구약의 제사장 복장을 간단히 그려놓았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은 내용입니다. 대제사장이 이런 옷을 입고 날마다 들어가는 장소는 성소입니다. 그런데 일 년에 딱 한 번 들어가는 곳이 지성소입니다. 지성소는 넓이와 길이와 높이가 같은 곳입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습니다. 그 언약궤 뚜껑을 속죄소입니다. 그 속죄소에 대제사장이 정결한 짐승의 피를 뿌립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만나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보석에 이름을 새긴 옷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짊어지고 가슴에 품고 들어가는 겁니다. 이런 모형들은 영원한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것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슴에 품고 하늘 성소로 가시는 겁니다(9). 열둘의 이름을 두 번이나 새겼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봉독 이제 이 말씀이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 곧 어린 양의 신부로 보이십니까? 그래서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로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신약의 성도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합니다(벧전1:1). 그런데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 문안한다고 합니다(1:1). 이 당시의 열두 지파란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흩어진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복장에 있는 열둘의 이름을 두 번이나 보석에 새긴 것도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로 대표되는 구원받은 자들의 총수가 24이며 다르게는 144, 144, 12천 등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보면 이런 말씀이 특정 숫자나 건물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의 모든 택함 받은 자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아 어린 양의 신부가 된다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어 새로운 건물에 세워집니다. 유대인들에게도 이방인들에게도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 버림받은 예수님이 기초가 되어 새로운 집을 짓습니다(118:22, 21:42, 12:10, 20:17, 4:11). 이 내용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증거 한 복음입니다. 그 버림받은 모퉁이 돌 그 십자가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갑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성령이 임하여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