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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22:1~5 다시 저주가 없으며 2022. 2. 13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지난주에 1~2절을 중심으로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생명수가 무언지 살펴보았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생명수를 마시는 자들은 지금 여기서부터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과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5:26). 예수님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십니다(14:6).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습니다(20:31). 그 생명을 맛본 자들은 영원한 생명수가 한량없이 흐르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지금 이 역사 속에서 그 생명수를 마시지 못하는 자들은 생존에만 몰두합니다. 지난주에 본 예레미야 2:13 절의 말씀처럼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라서 아무리 채워도 자족이 안 됩니다. 그런 상태를 자기 배만 섬긴다고 합니다. 배란 욕망을 상징합니다(16:18, 3:19, 1:12).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모든 자들이 자기 배 곧 자기 욕망이라는 신을 섬기며 살기에 세상이 지옥과 같습니다.

 

약 한 달 전에 장 지글러라는 사람이 교육 방송에서 보았는데 많이 늙어 보였습니다. 오래전에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를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람은 약 20년 전에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 특별조사관으로 8년간 일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발언하고 책으로 내기도 하였습니다.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하는 부제가 붙은 책인데 한 가지만 말하면 2006년 유엔개발계획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연간 850억 달러를 10년간만 투자하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기초적인 교육과 기초적인 의료, 적절한 영양, 식수, 기본적인 위생 시스템을 보장받고 여성들은 적절한 산부인과 치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일 년 세계 군비 지출이 7,800억 달러입니다. 약 십 분의 일만 군비 지출을 줄여도 전 세계의 가난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계는 바뀌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자기 웅덩이만 채우려는 탐욕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18~19절입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바울 사도는 사람들의 신을 배라고 합니다. 배는 욕망을 말합니다. 욕망을 신으로 섬기고 사는 세상이 지옥과 같습니다. 이들은 땅의 일만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들의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이들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믿음이 주어가 되어 자기 욕망이 죄 임을 알고 그 욕망으로 인한 저주에서 벗어나도록 이끌림을 받기에 고난이지만 그 이끌림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어지는 20~21절입니다.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묵시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의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봅니다. “봉독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곳인지 1~2절과 대비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은 생명수로 말씀하지만 여기서는 다시 저주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저주가 없는 이유는 자기 욕망이라는 배를 섬기는 우상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함이 죄의 뿌리가 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것은 하나님조차도 자기 앞에서 치워버리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그 저주의 근원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3:14 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을 뱀이 왜곡하여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나서 부끄럽고 두려워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가리고 나무 그늘에 숨어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과를 왜 따 먹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댑니다. 하나님은 뱀에게는 묻지도 않으시고 바로 저주를 선언하시는데 배로 기어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으라고 합니다. 땅에만 들러붙어 사는 것이 저주입니다.

 

창세기 3:15~16절입니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하나님께서 뱀에게는 저주만 하셨지만, 사람에게는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약속입니다. 성경의 큰 흐름은 이 전쟁의 역사입니다. 이 전쟁을 예수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2:16, 2:15).

 

창세기 3:17~19절입니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땅이 자주 받았습니다. 그 결과 평생 수고하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이어지는 20~21절입니다.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1)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저주 속에 놀라운 말씀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산자의 어머니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창세기 3:15 절의 약속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가죽옷이 마련되기 위하여 짐승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1:29) 창세기 3장에서부터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저주란 땅에 속하여 땅의 것들만 취하다가 땅으로 돌아가는 일이 저주입니다. 이런 저주를 몇 곳 더 봅니다.

 

창세기 4:11~14절입니다.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아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아주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미 타락한 인간에게서 하나님은 제물을 받지 않으심이 공의입니다. 그러나 아벨을 제사를 받아주심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화가 나서 살인함이 선악과 따 먹은 인간의 죄악 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아주신 아벨의 피를 흘렸기에 땅이 저주를 받아 효력을 내지 않게 되며 가인은 땅에서 떠돌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 가인이 죄벌이 너무 무겁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께서 쫓아내시니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한다고 합니다. 주의 얼굴을 뵙지 못하는 것이 근원적인 저주이기에 주의 얼굴을 뵙는 것이 복입니다. 이 내용은 다음 주에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주받은 가인은 땅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악기를 만들고 문명을 건설하며 살아갑니다. 타락한 인간의 자아상이 가인과 그 후손들에게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의 모든 나라가 다 부국강병을 원하기에 세상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요란합니다.

 

창세기 5:28~29절입니다.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1)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됨으로 온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옵니다. 더구나 아벨의 피도 흘린 땅이라 제 효력을 내지 못함으로 땅을 갈아먹고 사는 일이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라멕은 아들의 이름을 노아로 짓습니다. 노아의 뜻은 안위 곧 안식입니다.

 

창세기 6장 이하를 보면 이 당시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마음의 계획이 항상 악하였기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할 수 없어서 떠나십니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어 방주를 예비하여 방주에 탐으로 온 세상이 물로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도 은혜를 입은 자는 세상의 심판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방주에서 내린 후에 최초의 저주를 받는 자가 함입니다. 자신들이 홍수 심판에서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방주에 탄 것입니다. 방주는 하나님의 덮어주심의 은혜입니다. 홍수 이후에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고 자는 모습을 함이 덮어주지 않음으로 저주를 받습니다(9:25).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입니다(17:9).

 

창세기 12:1~3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셈의 후손 중에서 아브람을 불러 약속을 주십니다. 아브람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아브람을 저주하면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논리조차 죄라고 말씀합니다(고후4~5). 결국 이런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과 영생의 복을 받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저주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이 저주입니다(9:3).

 

갈라디아서 3:6~9절입니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3)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ㄴ)모든 3)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아브라함의 복은 믿음으로 의롭다고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복은 예수님을 믿는 복입니다.

 

이어지는 10~14절입니다.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ㄷ)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ㄹ)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ㅁ)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ㅂ)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저주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행위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이방인들은 윤리나 도덕이나 세상의 힘을 믿고 살면 이것이 저주입니다. 그런데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저주받아 죽은 죽음임을(21:23) 너무나 잘 아는 유대인들이 볼 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을 결코 그들의 메시아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신 저주임을 알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에 정죄가 없습니다(8:1~2).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저주,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하는 그 저주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해결하셨기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그 얼굴을 뵙는 것은 다음 주에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저주의 결과로 인한 모든 죄와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죽음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약속의 말씀이 은혜로 믿어지는 자들은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보혈(寶血)을 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