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2:18~29 네게 있는 것 2020. 7. 26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본문 18절입니다. “봉독 두아디라는 빌립보에서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였던 루디아의 출신지입니다(16:14). 이곳도 온갖 이방신들의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살펴보십니다(23). 그러므로 성도란 지금 주님의 불꽃같은 눈으로 살핌을 당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다 드러나게 됨으로 회개하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게 됩니다(4:12~14). 그런데 지금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주님 앞에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그 발에 밟히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2:8).

 

19절입니다. “봉독 주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살펴보시기에 교회를 다 아십니다. 그래서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업이란 두아디라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많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는 사람이 만들어 낼 수가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와 같은 내용입니다(살전1:3). 교회가 받은 모든 은혜와 은사는 선물로 주어집니다. 선물로 받았기에 자기를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랑을 한다면 그것은 은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고전4:7). 그러므로 네가 받은 것 곧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그것을 잘 지키라고 합니다(25).

 

20~23절입니다. “봉독책망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가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하였다고 책망합니다. 이세벨은 구약에 나오는 아합의 아내이지만 여기서는 자칭 선지자라고 하면서 주의 종들을 유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 음행을 회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회개가 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그를 침상에 던지고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기에 큰 환난에서 던지고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모든 교회가 주님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인줄 알라고 합니다.

 

그러면 두아디라교회의 사자가 왜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을 용납한 겁니까? 이세벨을 용납함으로 오는 이익이 있었을 겁니다. 이세벨을 따르는 자들이 교회에 많다면 함부로 쫓아내지 못하였을 겁니다. 오늘날도 다수의 교인들이 자기들의 필요를 요구할 경우에 목회자가 성경적이지 않은데도 용납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세벨을 용납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목회자가 이세벨의 가르침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봅니다. 이세벨의 음행이 무엇인지 봅니다.

 

열왕기상 16:30~33절입니다.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북 이스라엘은 반역에 반역이 거듭됩니다. 그런 와중에 오므리가 실권을 쥐고 왕이 됩니다. 오므리가 사마리아 땅을 사서 북 이스라엘의 수도로 만든 사람입니다. 이 오므리의 아들이 아합 왕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 가장 많이 우상을 섬긴 왕이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 이세벨로 인하여 그렇게 됩니다.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입니다. 아합이 시돈의 힘 있는 왕의 딸과 결혼함으로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것 자체가 우상숭배입니다. 이 결혼으로 인하여 이세벨은 온 이스라엘에 바알숭배로 가득 차게 만듭니다.

 

구약에서 이세벨을 심판하신 주님께서 지금 두아디라교회에 이세벨의 음행을 용납함을 인하여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의 음행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게 만드는 모든 것들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사탄이 사는 곳이 무엇인지 말씀드렸습니다. 사탄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인데 그 대적하는 방법이 십자가로 나타난 그 사랑을 버리고 세상 사랑으로 빠지게 하는 내용들이 다 음행입니다.

 

오늘 본문 20~23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을 보면 지금 두아디라교회가 무엇을 용납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로 자처하면서 주의 종들을 꾀는 겁니다. 두아디라 지역에서 온갖 우상의 신전들이 있기에 그런 곳에 참여하는 것이 자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세벨도 나봇을 죽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이세벨을 심판하심으로 사람의 마음과 그 뜻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의 뜻과 마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주께로 돌이키게 됩니다.

 

본문 24~25절을 새 번역을 봅니다. “24 그러나 두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깊은 흉계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인 너희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25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어라많은 사람들이 이세벨의 음행에 넘어갔지만 사탄의 깊은 흉계에 물들지 않는 남은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굳게 붙잡고 있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남은 자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남은 자 사상이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혼자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다고 하소연 할 때에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두셨다고 하십니다(왕상19:18).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에 몇 십 명의 교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들 가운데 남은 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세벨의 꾐에 넘어가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남으려고 해서 남은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자들은 받은 것이 있습니다. 그 받은 것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굳게 지키라고 합니다. 그 받은 것이 무엇일까요?

 

열왕기상 21:1~4절입니다.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이스라엘의 땅은 사람이 사고팔고 할 수가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땅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을 모세와 여호수아와 사사들과 다윗을 통하여 이루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 살아가는 자들은 여호와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땅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땅의 지계표도 옮기지 못하게 율법으로 정하여 두셨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자기 왕궁근처의 나봇의 포도원을 채소밭으로 만들려고 나봇에게 대토를 하든지 돈을 받고 팔던지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봇은 내 조상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신다고 합니다. 왕의 부탁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거절합니다. 이런 율법을 아합도 알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여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밥도 먹지 않습니다. 탐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이어지는 5~15절을 봅니다. “봉독 이세벨은 여호와의 율법을 모르는 바알숭배자의 딸입니다. 자기 나라의 아버지는 전제군주입니다. 그런데 시집을 와서 자기 남편을 보니 이름은 왕인데 여호와의 율법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왕으로 보입니다. 나봇의 포도원 하나 차지 못하는 그런 왕이 왕이냐고 하면서 자기가 처리하여 주겠다고 합니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왕의 도장을 찍어서 나봇이 사는 곳의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냅니다. 불량자 두 사람을 고용하여 거짓 증거를 하게 합니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하면서 돌로 쳐 죽이게 합니다. 이세벨이 이럴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나봇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자기 남편에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라고 합니다. 아합이 나봇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내려갑니다.

 

16~26절입니다. “봉독 엘리야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가는 아합 왕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이 말씀을 전하자 아합 왕은 엘리야를 자신의 대적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기에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다고 하면서 이세벨도 개들이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합이 우상숭배를 누구보다 많이 하게 된 것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27~29절입니다. “봉독 아합이 엘리야의 이 말씀을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누우며 풀이 죽어 다닙니다. 진정한 회개라기보다는 회개의 몸짓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고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합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보았느냐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린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1~22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회개의 기회를 주시는데 회개가 되는 사람이 있고 회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끝까지 회개가 되지 않는 사람은 심판받는 자입니다. 이세벨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예후가 왕이 되어 아합 가문을 칠 때에 이세벨이 예후를 보면서 창가에서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있다가 내시들에 의하여 창에서 던져짐을 당합니다. 개들이 그 시체를 뜯어 먹고 두골과 손과 발만 남았습니다. 이러한 이세벨의 심판을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가진 것과 우리의 음행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9절 다시 봅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두아디라교회에 이세벨의 종이 되지 않은 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입니다. 이런 것들을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만약 사람에게서 나온다면 조작된 것입니다. 그런 것은 자기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는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만 자랑하게 됩니다.

 

본문 25절입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우리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세벨의 음행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죽임당한 나봇을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나봇은 주님께 받은 그 기업,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지킨 겁니다. 아무리 좋은 땅을 주고 바꾸자고 하여도,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하여도,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을 포기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이라도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이 주님께 받은 것을 지키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기업, 하늘에 속한 영원한 기업을 받았습니까?

 

골로새서 3: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1)진노가 임하느니라

 

나봇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지키려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네게 있는 것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위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위에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그 위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면 세상의 유혹인 이세벨의 음행에 흔들리지 말고 그 믿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세벨의 음행위에 떨어지는 겁니다. 율법을 어기면서 남을 모함하고 죽이려고 하나님의 이름도 이용하는 자가 바로 이세벨의 음행입니다. 이것이 음란이며 부정이며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이러한 이세벨의 음행에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주께 받은 기업을 지킨 나봇은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그 피 값을 아합과 이세벨이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회개의 모양이라도 내지만 이세벨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심판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26~27절입니다. “봉독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가 누구입니까? 나봇과 같이 하나님의 기업을 받은 사람입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기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가 아합과 이세벨과 같은 다스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봇과 같이 죽임 당하는 모습이지만 이런 일로 인하여 이세벨과 같은 자들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시편 2:9절입니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이세벨이 이미 철장으로 깨뜨려짐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심판이 십자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 세상에 드러나게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오래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남은 자라면 성령의 책망이 들릴 겁니다. 지금 내가 이세벨의 음행에 물들었는지 아닌지 알아챌 겁니다. 그런데 완전히 이세벨의 음행에 물들어 끝까지 회개가 되지 않는 자라면 처음부터 가짜입니다. 이들은 아무리 책망해도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회개하라는 말씀이 들리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주님께서 오래참고 계십니다. 그러면 회개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겁니다.

 

본문 28~29절입니다. “봉독주님께서 주신 것을 지키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새벽별을 주신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2:16절입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예수님께서 새벽 별입니다. 베드로는 이 샛별이 마음에 떠오를 때 까지 말씀을 주의하라고 합니다(벧후1:19). 그러므로 이기는 자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주님 오실 때까지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3~14절입니다. “봉독주님께 받은 것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 됨과 그 영원한 기업을 받는 것입니다. 묵시 적으로는 완료된 내용이지만 이 역사 속에서는 보증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주하심은 이런 약속을 받은 것을 알고 믿게 하시고 보증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네게 있는 것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지키라고 하는 것은 받은 자만 압니다. 교회란 주님께 받은 것이 있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압니다(고전2:12). 세상의 영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만이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받은 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성령의 보증이 있기에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됩니다(3:4). (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