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7:15~18 음녀의 멸망 2021. 8. 8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지난주에 본 14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짐승과 열 뿔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 하지만 어린양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양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호칭을 십자가에서 달려 죽은 예수님께 그대로 붙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기에 그 안에서 성도도 함께 승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음녀의 멸망입니다. 계시록 17:1~14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는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7장이 음녀의 심판인데 그 음녀의 심판이 18장까지 계속됩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봅니다. 요한이 본 음녀가 앉아 있는 물(17:1)을 설명합니다. 음녀가 앉은 물은 일반적인 물이 아니라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에 음녀가 올라앉아 있다는 말은 온 세상이 음행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는 음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바람을 피운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은 더욱 음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행동이 아니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아도 간음한 자라고 합니다(5:28). 그런데 어떤 남자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남자는 여자보다 다른 것들을 좋아하는 겁니다. 야고보서 4:4절에서 간음하는 여자들이란 세상과 벗 되려고 하는 자들이며 이들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레위기 21:9절입니다.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제사장은 하나님의 역할이며 딸은 이스라엘의 역할입니다. 이스라엘이 음행하면 불에 살라 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가까이하는 자들에게서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신다고 하셨기에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임당합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음행이 심판을 받으면 구원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입니다.

 

에스겔 16:1~41절까지 봅니다. “봉독본문이 길지만 읽어본 이유는 음녀가 무엇인지 보기 위함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여자아이를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공주로 왕비로 키웠더니 하는 짓은 음행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바람을 피우는데 이집트와 음행하기에 블레셋으로 그들을 심판합니다. 그런데도 음욕이 차지 않아서 앗수르와 음행하고 바벨론과 음행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일이 음행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에스겔 16:42~43절입니다. “42 그리한즉 나는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질투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43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분노하게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하나님의 분노와 질투로 음행을 심판하심으로 다시는 가증한 일을 행하지 않게 하심이 언약을 따른 사랑입니다.

 

에스겔 16:60~63절입니다. “60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61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63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어렸을 때 하신 언약이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버려진 아이,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강보로 싸지도 아니한 채로 버려진 아이가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우리도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태어남이 이런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이 구원받아 나오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을 위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인 십자가가 무엇인지 보여 주기 위한 구원입니다.

 

고린도전서 5:1~5절입니다.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1)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에스겔 16장을 신약에서 압축한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고린도 교회 안에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음행이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이러한 일을 통한이 여기고 책망하여 쫓아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바울 사도가 책망합니다. 이런 자를 이미 판단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자를 주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출교로 보기도 하고 실제적인 죽음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음행보다 언약을 따른 사랑이 더 큼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음행이 죽임당하는 모습으로 말씀과 성령이 인도합니다.

 

고린도전서 11:31~32절입니다.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 교회가 주의 만찬을 나눌 때 잘못한 일로 인하여 병든 자와 잠자는 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주의 만찬을 나누면서 자신을 살피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자가 음식을 가져와서는 먼저 먹음으로 취할 정도가 되었는데 가난한 자가 일하다가 늦게 오니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징계하시는 일이 일어났지만 이런 징계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시는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는 일은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겁니다.

 

계시록 2:20~23절입니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 교회에 관한 책망은 이미 앞에서 본 내용입니다만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보면 음행을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세벨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로서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가득 차게 만든 여인입니다. 이런 음녀의 유혹이 고린도 교회에도 두아디라 교회도 있습니다. 이런 음행은 실제적인 음행도 있지만,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것도 음행입니다. 이런 음행이 우리에게도 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라면 이런 음행, 곧 세상 사랑이 죄임을 알게 하시고 이 역사 속에서 심판하십니다.

 

요한복음 15:18~20절입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면 반드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세상은 자기의 것을 사랑하기에 자기 편을 도와줍니다. 이것을 음녀가 합니다. 그래서 음녀 곧 바벨론과 음행하면 세상의 영광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유혹한 사탄도 자기에게 경배하면 세상 영광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만한 세상 영광을 구한다면 이런 곳은 교회라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은 사탄의 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자는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이런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봅니다. 요한이 본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합니다. 음녀에 사로잡혀 있는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이라는 온 세상은 음녀가 주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자들입니다(17:1~2). 음녀라고 해서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옵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되는 모습으로 옵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음행하면 역사 속에서 심판을 받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음녀가 주는 포도주에 취하여도 심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음녀가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 곧 사탄의 권세가 음녀의 일을 합니다(17:7).

 

본문 16절입니다.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합니다. 지금까지는 음녀를 지지하여 줍니다. 등에 태워 다닙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심판을 받을 때는 열 뿔과 짐승으로 표현되는 사탄이 그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살라 버립니다. 짐승이 음녀를 배신하는 겁니다. 배신을 당해본 사람은 배신의 쓰라림을 알 것입니다. 세상의 사기꾼은 재산만 가로채지만, 음녀의 미혹을 받은 자들이나 음녀는 짐승에게 배신을 받는 순간 지옥행입니다.

 

요한복음 10: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도둑을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보면 열 뿔과 일곱 머리로 표현되는 짐승 곧 사탄입니다. 이들이 사람들을 미혹하여 결국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십니다. 십자가는 자기 양에게는 생명을 주시지만, 원수는 심판의 자리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음녀를 심판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지 않으시고 짐승에게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사탄도 주의 일에 도구로 사용되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탄이 일시 동안 세상 나라를 차지하게 되는 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모든 언행을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의 배신도 말씀이 응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13:18). 그러므로 십자가로 구약을 완성합니다. 구약의 성도를 그 피로 구원하시고 원수들은 십자가로 심판하십니다. 그 십자가로 완성된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요한이 본 그 여자 곧 음녀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합니다. 큰 성이 다음 주에 볼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음녀는 세상의 모든 권력과 영광을 말합니다. 그런 세상의 권력과 영광이 이미 무너진 것을 아는 자들이 성령이 임한 성도입니다. 이들은 이미 무너진 제상을 소망하며 살지 않도록 징계하십니다. 징계를 통하여 세상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결국은 세상 자체를 불살라 버립니다(벧후3:10,12).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도 자기 백성을 거룩한 신부로 단장시켜 자신의 처소로 삼으시기 위하여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골로새서 1:13~17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흑암의 권세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있는 일입니다. 왕권, 주권, 통치자, 권세란 용과 짐승과 음녀들을 다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다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들입니다. 그리고 모두 완료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이루어진 묵시의 세계를 본 사도들의 증거는 한 성령의 감동이었기에 같은 내용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완성된 복음을 믿는 자들은 세상의 요란함에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안식과 감사와 소망으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