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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21:1~4 다 지나갔음이라! 2021. 12. 19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1)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지난주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또 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 내려오는데 그것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새 예루살렘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은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성도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3절과 4절을 봅니다. 요한은 보좌에서 나오는 큰 음성을 듣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일이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함께하시면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해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픔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 것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에서 있었던 것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위로 삼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눈물, 사망, 애통, 곡함, 아픔이 있을 때 이런 것들이 결국은 지나갈 거라는 말로 위로를 삼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지나간다고 하여도 이 역사 속에서는 지나간 것들이 다시 다가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다고 완료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눈물, 애통, 사망, 아픔이 없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목표로 옛 하늘과 옛 땅과 옛 예루살렘을 만드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9:45~46절입니다. “45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 약속의 구체화를 출애굽과 율법과 성막과 제사 제도를 통하여 어떻게 함께 하실지 모형 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

 

레위기 26:11~12절입니다. “11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제사와 성막 제도를 주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에스겔 48:30~35절입니다. “30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쪽의 너비가 사천오백 척이라31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32 동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33 남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34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2)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창세기와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을 간략히 보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려면 죄의 문제가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속죄의 제도와 성막의 제도를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안에도 온갖 우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에 가득한 우상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상 성전이 아니라 새로운 성전을 보게 됩니다. 그 성전이 완성되니 성전 동쪽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서 그 생명수가 가는 곳마다 죽은 것들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이런 건물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생명이 살아남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살아난 자들이 요한계시록에서 구약의 열두 지파 이름으로 신약의 열두 사도의 이름으로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1:9~14절입니다.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오늘 본문과 연결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막을 두시는 곳,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는 곳, ‘ 여호와 삼마가 일어나는 곳이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입니다.

 

이사야 25:7~8절입니다.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구원을 이렇게 내다보고 있습니다. 모든 가린 것이 다 제거되는 날에 여호와의 뜻이 온 세상이 드러날 것이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십니다.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심이 묵시적으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사야 35:9~10절입니다.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여호와의 구원이 일어나면 이렇게 된다고 합니다. 그 구원 역시 십자가로 묵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묵시적 완료인 십자가의 복음을 받은 자들은 이 역사 속에서 눈물, 애통, 사망, 곡함, 슬픔, 아픔을 겪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없습니다.

 

이사야 65:16~17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6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3)진리이신 하나님을 두고 빌며,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도 진리이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지난날의 괴로운 일들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않고, 지나간 과거를, 내가 다시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17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 것들이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기억들이 생각나지 않을까요? 죄의 결과로 인한 수치와 고통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 기쁨과 안식과 자유와 같은 것은 여기서부터 계속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26절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도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은 얻습니다. 그 차례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다음은 그가 강림하실 때 곧 재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신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 또한 재림 시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살아있는 자들은 홀연히 변화하여 생명의 부활로 영광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마지막은 최후의 심판으로 책들에 기록된 자들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기에 마지막 멸망은 사망입니다.

 

고린도후서 5:17~21절입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예수님께 죄를 돌리시고 우리는 그 안에서 의로움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의가 가득한 곳입니다(벧후 3:13).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이 역사 속에서는 여전히 눈물, 애통, 사망, 곡함, 슬픔, 아픔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지난주에 본 내용을 다시 봅니다.

 

고린도후서 5:1~10절입니다. “봉독 땅에 있는 장막 집이 우리의 몸입니다. 이 몸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그 몸 그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이렇게 사모하는 자들은 성령이 임하여 보증하여 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몸으로 있을 때 주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성령의 임함과 몸의 부활이 다릅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은 몸의 부활을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고 합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쓴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옛 하늘과 옛 땅이 십자가로 다 지나간 것임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20~24절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옛 하늘과 옛 땅과 옛 예루살렘이 십자가로 묵시적으로 다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몸으로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내 안에 사는 분이 그리스도이기에 죽는 일도 유익하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고백이 나옵니까? 내 안에 정말로 그리스도가 사십니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신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 곧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기를 사모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직 몸으로 옛 하늘과 옛 땅에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는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좋지만 몸으로 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살아간다는 겁니다. 바울이 몸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너희를 위하여 유익하다고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에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우리가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본심은 몸을 떠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겁니다. 둘 사이! 옛 하늘과 옛 땅과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끼인 세대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의 일들이 십자가로 지나간 것임을 믿는 자라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그 둘 사이에 끼인 자들의 삶의 특징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구합니다. 이 사랑이 가득한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이기에 지금 여기서부터 그 사랑을 누리며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