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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25~27 아들의 소원대로 2016. 1. 17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천지만물이 누구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까? 자기 자신에게도 물어보시기 보랍니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는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태어났고 이 세상이 왜 만들어졌습니까? 골로새서 1:16절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여기서는 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만물이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 자신이나 모든 피조물들이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든지 세상을 보든지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도 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봐야합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합니까? 기도를 해도 찬송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무언지도 모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면서 다들 자기 영광을 따로 챙기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자기들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5:44). 하나님의 영광은 아들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는 것이라고 하면 또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내가 무언가 믿어주는 행위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설교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자꾸 시간이 걸립니다만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단어개념으로 성경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하신 일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만 보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를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씀은 내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이 우리의 결단과 결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11:2절부터 봐야 합니다. 성령에 의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한 세례 요한조차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의 답변은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내용은 구약에서 메시아가 하실 일로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천국을 침노하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사람들에게 쳐들어와야 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한 것이 11:2~1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16~24절까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천국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금식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합니다. 세례요한이 전한 회개하고 천국을 맞이하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보고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증거 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니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천국잔치를 열고 계시는데 그것을 알아보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지혜는 오직 지혜의 자녀만이 알아보는 것입니다. 자녀는 스스로 될 수가 없고 낳아주셔야 됩니다.

 

지난 금요일 교회 요람과 언약을 따라서 책을 찾으려고 복사 집에 갔습니다. 그곳에 연세가 64세 되신 분이 단편 소설을 두 편 출력하려고 왔습니다. 제목이 빈들과 어메이징 그레이스였습니다. 교회 나가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거듭남과 사후 세계에 대하여 궁금하고 그런 내용을 소설형식으로 전하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언약을 따라서를 한권 드리면서 간단하게 거듭남과 영생이 무엇인지 말씀을 드리니 얼마나 감사하는지 저의 손을 잡고 오늘 선생을 만났다고 하면서 꼭 찾아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연세가 64세가 되어 소설을 쓰고 교회를 다녀도 거듭남이 무엇인지 영생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결국 사람으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들을 귀가 없는 것입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많은 권능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십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천지만물의 창조는 아들을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도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아버지의 뜻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을 아는 것입니다(17:3).

 

오늘 본문 25~2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천국의 복음은 이 세상의 지혜와 슬기로는 결코 알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와 슬기로 알 수 없다면 어린 아이들은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 물론 이 아이들이 문자적인 아이들이 아니라 세상에서 지혜와 슬기가 없다고 여기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에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자들은 율법을 알고 해석하며 율법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어린 아이라면 율법을 지키지도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천국을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을 옳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0:21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으로 기뻐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믿는 것으로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믿는 것은 결코 사람의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과 성령의 일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세상의 지혜와 슬기가 아닙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알게 됩니다. 여기서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기록된 이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게 되면 이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본문 27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전권을 위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참람하다고 신성모독자라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살해한 자가 됩니다. 자기를 지은 창조주를 피조물이 죽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죽임 당한 창조주가 자신을 살해한 자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알고 믿을 수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이 믿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18~25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는 말씀을 사도가 풀어놓은 것입니다. 세상의 두 지혜라는 축이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입니다. 헤브라이즘은 하나님의 표적을 본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메시아 됨을 끊임없이 표적으로 확인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당신의 메시아 됨을 표적으로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메시아 됨의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보고 싶은 표적은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나는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이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일을 있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3일만의 부활이 예수님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그들의 지혜와 슬기를 동원하여 모든 율법을 해석하고 지켜왔다는 것이 무용지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이란 몽학선생으로 왜 인간이 죄인인지를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게 하는 것이 몽학선생인데 이들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지 못함으로 율법지킴이라는 자기들의 의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면 그들이 어려서부터 노력해온 율법지킴의 공로가 다 날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그런 의는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율법으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입니다. 더구나 신명기 법에 의하면 저주 받아 죽는 죽음이 나무에 달려죽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지 않으면 결코 모르게 됩니다.

 

그리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의 지혜란 하나님의 표적과 계시와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지혜를 추구하였지만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이성과 논리로서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 너무나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떻게 죄는 자기가 지었는데 나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를 구원의 주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윤리라는 것으로 도덕이라는 것으로 양심이라는 것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임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들의 소원대로 믿는 자들은 예수님만 자랑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26~31절을 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습을 보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갖추어진 자들은 십자가의 복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택하신 자들이라면 그들도 들리겠지만 십자가의 복음이 들리려면 그들의 소유나 지식이라는 것들이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임을 믿게 되는 것은 결코 사람의 능력과 실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일하심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아들의 소원이 있어야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게 되면 어떤 고백을 하게 됩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로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거룩함과 구원함이 됩니다. 예수님 없으면 나는 어리석고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도 못하고 구원도 없습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이 나온다면 이들이야말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믿게 됩니다.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2:1~5절을 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사도가 그리스 아테네에 복음을 전하고 고린도로 내려갑니다. 그리스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입니다. 그리고 종교성이 많아서 온갖 신전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이 철학을 도구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과 변론도 하고 아테네의 어떤 시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떤 열매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내려와서 복음을 전하면서 이제는 그런 세상의 지혜로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한다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들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임을 바울사도가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6~9절을 봅니다. “6 그러나 우리가 2)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3)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믿음이 장성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겠다고 합니다. 이 지혜란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인데 감추어져 있기에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에게는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계시로만 알게 되는데 그 아들의 계시를 여기서는 성령이 알게 하신다고 합니다. 성령은 아들의 영이기에 성령이 알게 하신다는 것이 곧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전에 미리 정하여 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비한 것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오직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야 압니다.

이어지는 10~12절입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

 

수요일 저녁 욥기를 보면서 11절을 부분적으로 인용을 했습니다. 사람의 일은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도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 외에는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온 영입니다. 성령은 아들의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성령이 임하게 되는 것이며 성령이 임하면 계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이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함을 알고 믿게 됩니다. 이것이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 곧 아들의 영을 받으면 무엇을 알게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세상의 영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인과응보로 풀어갑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런 내용들이 다 이 세상의 영이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둔 것입니다. 이런 속담은 은혜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내용들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는 복을 모르는 속담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적인 죄인이며 오직 값없이 주시는 그 십자가의 공로가 아니면 영원한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이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야만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함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들의 소원대로 되는 것이지 우리의 소원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의 소원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입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령님도 아들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소원이 곧 성령님의 소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영광 받는 것이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성령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설교 제일 처음 찾아본 말씀처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것이 예수님을 위한 창조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라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 이들은 세상의 영광 앞에 무릎을 꿇는 자들이 아니라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 죽기 까지 하신 그 아들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과연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합니까?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짓고 율법을 지키고 얼마나 열심히 제물을 바쳤습니까? 이 모든 것들은 다 사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아들의 소원입니까?

 

요한복음 17:1~7절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요한복음 17장 전체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란 예수님의 소원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이 곧 아버지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버지의 소원 곧 아들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 소원이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아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먼저 기도로 소원을 아뢰고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는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임을 알 뿐 아니라 성경의 모든 약속을 아들이 십자가로 다 이루심을 믿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아들의 소원대로 일어납니다.

 

고린도후서 1:20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신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어내셨습니다. 아멘!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도 아닙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만이 이런 말씀에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