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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31~35 겨자씨와 누룩 2016. 4. 10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토요일 새벽 127분에 교회당이 있는 건물 전체가 상당한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10초 정도로 건물 전체와 책상과 의자도 흔들리는 것이 보이고 몸도 충분히 느낄 정도로 흔들렸습니다. 강한 바람인줄 알았는데 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건물이 흔들린 것입니다. 그래서 지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지진 속보를 검색해 보니 기상청은 16일 오전 125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구마모토 동쪽 9지역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지진으로 인해 제주도와 전남, 경남에서도 지진으로 인한 진동이 감지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흔들리는 나라가 아닌 영원한 아들의 나라입니다. 그 아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나라입니다. 그 아들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히브리서 12:24~29절입니다.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2)은혜를 3)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세상 나라는 흔들려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흔들어 버려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새 언약의 피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를 지금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천국에 대한 내용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루어내신 일들은 다 선지자를 통하여 이미 하신 그 내용들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라는 표현이라든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리라는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겠느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도 선지자들이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루실 그 내용들이 다 구약에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신약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요한복음에서만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표현만 살펴봅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하는 것도 발꿈치를 들었다함을 이루려 함이라는 말씀의 성취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13:18). 이유 없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도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15:25). 그러므로 예수님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지만 다만 멸망의 자식은 버림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도 성경을 응하게 하는 것입니다(17:12,18:19). 나무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이며(18:32), 예수님의 속옷을 제비뽑아 가져가는 일도 성경을 응하게 하는 것이며(19:24),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하신 것도(19:28), 뼈가 꺾어지지 않은 것도(19:36)도 다 말씀의 성취입니다.

 

본문 34~35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은 누가 이렇게 하게 한 것입니까? 지난 금요일 성경공부시간에 드린 말씀을 다시 봅니다. 베드로전서 1:9~111절입니다.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계시는 현장을 우리가 봅니다.

 

본문 35절의 말씀이 각주를 보시면 시편 78:2절의 말씀이지만 1~4절까지 봅니다. “1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예로부터 감추어진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드러낸다는 이 말씀의 전체 문맥을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하시면 이미 시편 78편의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78편은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였는지에 대한 고발의 내용이 가득하기에 78편 전체를 봅니다.

 

5~8절입니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증거를 세우시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전하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망을 하나님께 도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않음으로 그들의 조상처럼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이들이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9~17절입니다. “9 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10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하며 11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 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들에서 기이한 일을 그들의 조상들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13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그들을 지나가게 하셨으며 14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으며 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16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수많은 표적과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계속하여 범죄 하였습니다.

 

18~22절입니다. “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20 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셨으며 야곱에게 불 같이 노하셨고 또한 이스라엘에게 진노가 불타올랐으니 22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로다기브롯 핫다아와 사건입니다. 탐욕의 무덤을 쌓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23~29절입니다. “23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25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26 그가 동풍을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의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27 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비 같이 내리시고 나는 새를 바다의 모래 같이 내리셨도다 28 그가 그것들을 그들의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들의 거처에 두르셨으므로 29 그들이 먹고 심히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그들의 원대로 그들에게 주셨도다하나님의 구원을 믿지도 않는 자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됩니까?

 

30~33절입니다. “30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여 그들의 먹을 것이 아직 그들의 입에 있을 때에 31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염을 나타내사 그들 중 강한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32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 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33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그러나 그들의 욕심을 버리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의 강한 자와 청년들을 죽이시는데도 여전히 범죄 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날들을 헛되게 보내게 하시고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습니다.

 

34~37절입니다. “34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35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36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37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거듭 반역하는 그들을 하나님께 죽이실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고 그들의 반석이며 지존하신 하나님의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지만 돌아서면 그들의 입으로 아첨하고 거짓을 말하며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들을 버리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이런 자들을 어떻게 하십니까?

 

38~42절입니다. “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39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40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41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42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거듭 거듭 반역하는 이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로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들이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여호와의 권능과 대적에게서 구원하여 내신 날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어떻게 하십니까?

 

43~55절입니다. “43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의 표적들을, 소안들에서 그의 징조들을 나타내사 44 그들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그들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45 쇠파리 떼를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46 그들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셨고 그들이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47 그들의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그들의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48 그들의 가축을 우박에, 그들의 양 떼를 번갯불에 넘기셨으며 49 그의 맹렬한 노여움과 진노와 분노와 고난 곧 재앙의 천사들을 그들에게 내려보내셨으며 50 그는 진노로 길을 닦으사 그들의 목숨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생명을 전염병에 붙이셨으며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52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53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54 그들을 그의 성소의 영역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나라를 그들의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 10가지 재앙과 출애굽과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심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동안 이스라엘이 한 일은 반역뿐입니다.

 

56~64절입니다. “56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57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58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 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61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63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64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거듭 거듭 반역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갑자가 분위기가 급반전이 일어납니다.

 

65~69절입니다. “65 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66 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에게 욕되게 하셨도다 67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69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이렇게 긴 본문을 오늘 본문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인용하느냐고 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힘을 이지하기 때문입니다(9,10). 이러한 요셉의 장막 에브라임을 버리시고 유다를 택하십니다.

 

70~72절입니다. “70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에브라임을 택하지 않으시고 유다를 택하셨다는 말씀은 유다 지파에서 다윗을 택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이유는 모두들 힘을 원하는 이스라엘을 책망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합니다. 어떤 왕을 요구합니까? 세상의 힘을 가진 자를 원합니다. 그래서 크고 힘 있는 사울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세워주십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등장하니 사울과 이스라엘 온 백성이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택하신 소년 다윗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이 다윗에게 있습니다. 다윗이 메시아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니 형들과 왕이 어떻게 말합니까? 다윗의 형들은 네가 양이나 돌보고 있을 자가 너무 건방지고 교만하다고 화를 냅니다. 네가 전쟁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하면서 너는 전쟁을 구경이나 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도 너는 소년이고 골리앗은 용사라고 합니다. 누가 봐도 다윗은 어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구원이 젖양을 기르는 이런 소년 다윗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이런 내용이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이해하는 핵심이 됩니다. 그래서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냅니다. 창세로부터라는 말씀은 시편 78:2절에서 예부터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더 넓게는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하나님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비밀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오늘 본문 31~33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두 가지 비유입니다. 하나는 겨자씨 이며 하나는 누룩에 대한 비유입니다. 저는 이 비유를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와 있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 비유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으로 연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가면 갈수록 점점 힘이 있고 대단한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증거 된 2천년의 교회 역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 복음이 대단한 세상의 능력으로 나타났습니까? 초대교회 때에 복음의 흔적들이 지금 어디에 남아있습니까? 교회의 역사와 영광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유적들은 기독교가 가장 타락하였을 때에 나온 흔적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이 역사 속에서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증거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마태복음 설교를 하면서 여러 가지 책을 참고로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 적 관점으로 다시 보는 마태복음이라는 책을 몇 번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장재일목사는 예루살렘대학 성경지리역사학과를 나왔습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신약을 기록한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으로 본분을 이해하기 위하여 히브리인들의 역사과 삶이 녹아져 있는 배경들로 본문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과 연관된 부분을 그대로 인용을 하겠습니다. 제가 인용하는 이유는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가 제가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를 설명하고자 한 맥락과 같은 내용이기에 인용합니다. 겨자씨는 저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참깨의 십분의 일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런 겨자씨를 심는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3월 중순에서 4월 초순까지 이스라엘의 갈릴리 지역을 비록한 낮은 평지 지역을 다니다 보면 노란 꽃들이 무리 지어 많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바로 겨자 꽃이다. 이스라엘, 특히 갈릴리 지역에서는 겨자는 온 산지와 평지 등 도처에 흩어져 피는 다 년생 풀이며 흔하디흔한 들풀이다. 그러므로 예수 시대의 어느 누구도 겨자를 얻기 위하여 자기 밭을 갈거나 씨를 파종하거나 재배하지 않는다. 겨자를 얻고 싶다면 그저 밖에 나가서 훑어서 따기만 하면 되었다. 그만큼 재배하지 않고 얻기 쉬운 것이 바로 겨자였다. 이러한 당시의 배경 속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의 밭을 깨끗하게 하고 거기에 겨자씨 한 알을 심는다고 한다면 그는 분명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한 바보짓이기 때문이다. 도처에 흩어져 있어서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 겨자인데, 바보가 아니면 그런 겨자를 자신의 밭을 갈고 깨끗하게 만들어 재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하신다. 당시 사람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하나님은 전혀 납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 행동을 하시는 분이시다. 왜 그분은 지천에 늘려 있어서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겨자를 자신의 밭에 한 알 갖다 심으신 것일까? 하지만 이런 바보 갓은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겨자씨는 이해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그 밭에 심겨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우리가 그렇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심으신 것은 세상이 볼 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사실 이 땅에는 우리 말고도 하나님 얻으실 수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즉 나가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겨자씨들처럼, 좋은 사람을 얻으려고 한다면 지천에 사람이 널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밭주인은 당신의 밭(하나님 나라)를 깨끗하게 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욕과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에 심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행동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밭(하나님 나라)에 심겨진 겨자씨 한 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하나님의 그 바보 같은 행동이 한없는 은혜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겨자씨가 자라서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가 깃들인다고 하는 내용도 겨자씨의 식물적인 특정을 말하면서 겨자씨 한 알을 밭에 심을 경우에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주 작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 크고 무성한 나무가 된다는 그런 이미지로 말하면 이 겨자씨 비유는 쓸모없어진다는 말을 하면서 전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또 이해되지도 않는 결과를 기대하시는 분, 바로 그 분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심어 놓으신 분이시며,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시는 바보 같은 하나님이시다. 이 비유는 다음의 누룩의 비유와 연결되어 있으며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예수께서 이 비유(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 비유를 듣는 사람들은 모드 예수의 번뜩이는 재치로 인해 즐겁게 웃었을 것이다. 가루 서 말에는 누룩을 넣어도 발효가 될 수 없으므로 아무도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의 누룩이란 일반적으로 빵을 만들어 먹고 난 뒤 그 부스러기들을 햇빛에 잘 말리고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발효 능력은 오늘날의 누룩과는 비교도 되지 못하게 낮았다. 심지어 미쉬나에서는 그 반죽이 발효되는 시간에 대하여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왕복하면 누룩이 발효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3~4일 걸리는 거리였다. 누룩이 발효가 되기까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것이 누룩에 대한 고대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효과적이지 못한 누룩을 서 말이나 되는 가루에 넣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는 여인이 있다면, 주변의 많은 사람과 가족들에게 모욕과 손가락질을 받음과 더불어 혼쭐이 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것도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의 행하심과 그분의 나라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할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며 납득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초점은 간단했다. 가루 서 말에 누룩을 넣으면 발효가 될 수 없는 것을 누구나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시며, 또 그 누룩이 효과를 나타낼 수 있기를 기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겨자씨 비유와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겨자씨를 자신의 밭에 심지 않는 것처럼, 누구도 가루 서 말에 누룩을 넣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행동은 바보 같은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신단다. 도저히 이해되지 못할 행동,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모욕과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을 행동을 하시지만 그 행동의 대상, 곧 겨자씨와 누룩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감사한 분이 되신다.

 

이것은 비유다. 겨자씨와 누룩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바보 같은 일을 한 밭 주인과 한 여인의 은혜로움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신 사람들의 면면을 본다면, 사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이해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것이며, 세상이 볼 때는 그런 하나님의 행동을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름 받은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바보스러운 행동이 너무 감사하고 은혜로울 따름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였다.] 상당한 분량을 인용하면서 다음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고린도전서 1:18~25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지금까지의 말씀들을 통하여 이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세상 사람들의 상식에 비추어조면 조롱받고 모독 받을 모습인지 십자가로 증언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어리석은 모습이 사람보다 지혜롭게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혜와 힘의 우위를 말씀하시는 것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 거리끼는 것이며 미련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됨을 믿게 됩니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가 십자가의 도가 이렇게 통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6~31절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열심과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라는 것들을 믿었기에 미련하고 어리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원의 능력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과 이방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이 세상에서 자랑 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부르신 이유는 30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라면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됨을 믿습니다. 우리에게서는 일체의 지혜나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이 나올 수 없음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