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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51~52 새것과 옛것 2016. 5. 8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오늘 본문이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5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이 깨달았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천국비유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말씀이 많지만 여기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이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 자들을 말씀하십니다.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깨닫게 된 자들이 천국을 전하고 가르치기에 서기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천국의 비유를 스스로 알 수가 없었기에 예수님께서 따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깨닫게 되었다면 이제 새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아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비유의 말씀들을 다 깨달았습니까? 이 비유를 깨달았다는 것은 천국이 어떠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3:10~17절을 봅니다. “봉독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 하게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천국의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비유를 알게 하여 주시면 알게 됩니다. 이렇게 알게 된 자들이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 되어 천국을 증거 할 수 있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이란 사람이 깨달아서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비밀을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주시지 않으시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누가 알려주시는 것입니까? 천국의 제자 된 사도들이 신약까지 기록하여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오늘날 복음을 전한다는 자들이 복음을 전하지만 그 복음을 알아듣고 믿게 되는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성령께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고 믿게 하셔야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나 복음을 듣고 믿은 자나 간에 성령이 임하여 증거하고 믿게 되었다면 분명히 자기 부인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가 잘 가르쳐 주어서 믿게 되었다거나 나는 똑똑해서 알아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부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비유를 다시 요약하여 봅니다. 첫째,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밭은 세상 곧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열매를 맺어낼 사람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과 핍박을 견디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내일의 염려를 하지 않고 재물의 유혹을 이길 자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씨가 하나님의 말씀이듯이 좋은 밭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로 가라지 비유입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린 것입니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소속이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현재의 세상은 이 둘이 함께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추수 때에 반드시 분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분리를 제자들이 하려고 하자 추수 때 까지 그냥 두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걱정하지만 주인은 이미 알고 느긋합니다. 이 둘이 결코 섞이지 않게 반드시 분리해 내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가라지가 넘쳐날지라도 천국의 아들들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분리하여 천국 창고에 들여놓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에서는 천국의 은닉성에 대하여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보잘 것 없고 미미한 모습이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였습니다. 사람들이 환호할만한 천국을 세상에서 보여주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천국을 보여주었다면 사람들이 서로 들어가기 위하여 줄을 설 것입니다. 새로운 아파트나 돈이 되는 오피스텔을 분양한다고 하면 밤을 새워 줄을 서는 것 같은 그런 천국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시해도 아무른 일이 없어 보이는 그런 천국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넷째로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진주를 찾는 장사와 같습니다. 이 말씀은 우발성과 지속성이라는 말로 살펴보았습니다. 천국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듯이 임하는 것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천국이 침노하여 들어온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진주장사처럼 지속성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찾는 사람이 혹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일이 아니라 그렇게 찾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진주장사와 같이 끝까지 진주를 찾아내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전에, 영원 전에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대로 택한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찾아내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섯째로, 지난주에 본 그물비유입니다.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 잡혔지만 어부는 그 물고기를 끌어내어 좋은 물고기는 골라 담고 못된 물고기를 내 버립니다. 여기서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의 기준이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좋은 것이란 돈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람을 담아낼 수 있어야 좋은 물고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하늘나라 에서도 자랑스러운 상을 받기 위하여 스스로 채찍질을 하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그 아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며 자신들이 세리와 죄인과 창기와 같은 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다 깨달았습니까? 천국은 사람하기 나름이 결코 아닙니다.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나라입니다. 이 천국의 비유만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듣고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심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다 이루어내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세상에 볼 때에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입니까? 자신도 구원하지 못한 주제에 어떻게 남을 구원하느냐는 조롱 받은 그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의 속성이 어떠한지를 깨달은 자들은 이제 천국의 제자들이 되어 천국을 증거 하는데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것과 옛것이 무엇인지 말씀으로 보면서 천국비유를 마무리 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논어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 가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다가 이 말이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논어의 이 말과 차이가 있습니다. 순서상 옛것과 새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새것과 옛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새것으로 옛것을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옛것이란 구약을 말하며 새것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고, 이루고 계시고, 이루실 것을 다 포함한 말이 새것입니다.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다는 이 말씀도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면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새것으로 옛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새것이란 예수님 자신이 새것일 뿐 아니라 이 말씀은 새 언약과 연결됩니다. 옛 언약이 아닌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을 보고 신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약으로 구약을 본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9:17절에서 새 술을 새 부두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술인 예수님을 옛 부대에 담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새것과 옛것을 구별하여 잘 사용하는 자가 천국의 제자입니다.

 

요한복음 5:39~42절입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여기서 성경이란 구약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할 뿐 아니라 부지런히 지킨 자들이 예수님께 오지 않습니다. 이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함에도 예수님께 오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귀가 막히고 눈이 가려져서 그런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옛것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옛것을 통하여 새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새 언약으로 인하여 성령이 임하여야 옛것과 새것이 보입니다.

 

요한복음 1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다 이룬 것입니다. 무엇을 다 이룬 것입니다. 옛것을 다 이룬 것입니다. 옛 언약을 자기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그 영혼 곧 그 영을 넘겨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새 언약을 성령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넘겨주십니다. 이렇게 새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부어주시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새것을 증거 하는지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십니다.

 

누가복음 24:25~27절입니다.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십자가 이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실망하여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약으로 자기에 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나중에 식사 시간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는 순간 예수님은 사라집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뜨겁더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옛것으로 새 것을 증거 하게 됩니다. 이러한 증거들이 곧 복음서이며 신약의 서신들입니다.

 

사도행전 2:29~36절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오순절 성령이 임합니다. 베드로가 구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요엘서의 예언대로 종말에 성령이 부어졌음을 말하면서 방금 읽은 말씀은 다윗의 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다윗이 미리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았기에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여 달라는 그 말이(16:10)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른 것도(110:1)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기도(22:44)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새것인 예수 그리스도로 구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이 선포 앞에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선포에 반대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7:51~53절을 봅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스데반 집사도 동일하게 성령이 임하여 구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 분노하고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옛것과 새것을 이렇게 구별하여 드러내는 말씀 앞에 회개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돌로 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옛것이 새것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성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입니다. 새것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약성경으로 증거 하니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으로 새것과 옛것을 구별하여 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뒤섞여 있으면 사람들마다 자기 좋은 대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설교를 들으면 정말 새것으로 들리는데 어떤 설교는 다시 옛것을 전합니다. 이것은 아직 새것으로 옛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24~28절입니다.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유대인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 당시 세계 최고의 학문의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수사학도 배운 사람이라서 언변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성경에도 능통합니다. 이 사람이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는데 아직 요한의 세례만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알려줍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사도와 함께 사역한 사람입니다. 대단한 학문을 한 사람이 아니지만 아볼로가 아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분명하지 못한 것을 보고 정확하게 풀어줍니다. 그러자 아볼로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데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고 합니다. 아볼로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바울사도가 자기는 심고 아볼로를 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3:1~5절입니다.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새 언약으로 성도된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영으로 성도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기록하는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앞장선 자 입니다.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주의 일꾼이 됩니다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눈이 멀었다가 아나니아가 안수함으로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구약의 수건이 벗겨지고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밝히 보게 된 것입니다.

6~11절입니다.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여기서 두 직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정죄의 직분인 율법 조문은 죽이는 직분이지만 의의 직분인 새 언약의 일꾼은 살리는 직분입니다.

 

12~15절입니다. “12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예수님께서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 주인과 같은 자가 천국의 비밀을 깨달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새것과 옛것이란 예수님의 새 언약과 율법인 옛 언약으로 대비하여 보아도 됩니다. 옛 언약은 정죄하고 죽이는 직분이었지만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그러나 살리는 직분인 새 언약의 일꾼은 더욱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옛 언약은 장차 사라질 것임을 모세가 보이지 않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가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세의 수건이 가려져 있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옛것을 새 언약의 성취로 보지 못하면 아직도 율법조문의 직분처럼 정죄하고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것과 새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6~18절입니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모세의 수건이 벗겨진다고 합니다. 주는 영이십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옛것과 새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자유가 있습니다. 옛 것의 역할이 정죄하고 죽이는 직분인데 그 옛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정죄하고 죽이는 일이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런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모세의 수건이 벗겨지고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 거울이란 청동거울이기에 아직 희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완성이신 주의 영광은 성도도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주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율법 조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주의 영으로 된다고 말하는 것이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