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마태복음 14:1~12 세례 요한의 죽음 2016. 5. 22

 

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지난주의 설교 제목이 생각이 나십니까? 이 질문을 하면 혹 여러분들은 이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 바쁜 세상에 그런 것까지 내가 기억해야 하느냐? 내가 교회 나온 것은 거저 내 마음의 위로나 받고 나중에 천국이나 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와 있는데 어려운 이야기 하지 말고 듣기 좋은 말이나 좀 해달라는 마음은 없습니까? 이런 마음이 혹 있다면 제가 한 곳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바로 이 위에 언양 어느 절의 포교원이 들어섰습니다. 이곳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왔는지 관리소장이 승강기의 라인에 삼겹살이나 오징어를 구워도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첫날은 각 티슈 3개짜리 주더니 둘째 날은 계란 두 판씩 주었습니다. 이들이 몰려온 이유는 무엇을 받기 위하여 오는데 나누어 주는 쪽에서는 법회안내 시간표 나누어줍니다. 이것 얻어먹고 나중에 소원 빌러 오라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합니다. 지난주의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를 배척한지라입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배척합니까?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는데 왜 사람들이 배척을 하였습니까? 더구나 자기 소유라고 하는 이스라엘에 오셨는데 왜 배척을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은 내가 원하는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서도 좋은데 가고 싶은데 예수님은 전혀 그런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을 따라 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가도 자기들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향 사람도 배척하고 종교 지도자들도 배척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분봉 왕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이는 장면입니다. 세례요한을 죽였다는 것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한 선지자이기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런 본문을 볼 때에 우리는 자신을 어디에 대입시켜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소설을 보든지 영화를 보든지 성경을 보든지 간에 언제나 자신을 주인공자리에 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성경을 보려면 항상 성경의 모든 악한 자에게 자신을 대입하여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을 죽이는 헤롯이 자기 자신이라고 봐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도 선지자들의 말이 싫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하는 말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인지 아닌지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로 구별이 됩니다.

 

마태복음 3:1~6절입니다.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앞에서 본 내용이라 간단히 봅니다. 요한이 회개를 외친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의 성취가 일어나는 현장이 됩니다. 세례요한의 회개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7~10절입니다.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의 의로 흠이 없이 산다는 자들이기에 회개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하여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여기지말라고 합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않으면 찍혀 불에 던져진다고 합니다.

 

11~12절입니다.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세례요한의 세례는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세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말입니다.

 

13~17절입니다. “13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세례요한이 메시아를 보고 증언하였기에 이제 더욱 거침없이 회개하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1:2~3절입니다.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요한이 옥에 갇혔다는 보도만 하고 있습니다. 왜 옥에 갇혔는지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서 나옵니다. 헤롯의 죄를 책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를 증거하고 목격하였기에 더욱 과감하게 분봉 왕인 헤롯의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하여 책망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옥에 갇혔습니다. 옥에 갇혀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자기 제자들을 통하여 듣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우리가 기다린 메시아가 당신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는지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자신을 인하여 실족하지 않으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조차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아 상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요한이 헤롯의 무슨 죄를 책망하였는지 봅니다.

 

오늘본문 1~4절입니다. “봉독 분봉 왕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활동을 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 헤롯은 헤롯대왕의 아들들 중에 헤롯 안티파스를 말합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서부 지역과 베레아 지역을 통치하였습니다. 다른 지역은 헤롯의 다른 두 아들이 통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헤로디아는 헤롯 안티파스의 배다른 동생 빌립보다는 더 능력 있는 헤롯에게 온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아무리 에돔인의 후손이라고 하여도 이스라엘의 한 지역을 통치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책망을 한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계속하여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앞에서 보았듯이 메시아를 증거 하였습니다. 이제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들 큰일 난다고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곧 임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나라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마저 예수님을 오해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세례요한이 살아난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헤롯이 요한을 옥에 가두고 죽이려고 하였지만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김으로 그들을 두려워하여 죽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행구절인 마가복음을 보면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려고 하지만 죽이지 못한 이유는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헤롯이 죽이려고 하였지만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를 알고 있기에 죽이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헤롯이나 헤로디아나 간에 세례요한을 죽이려고 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책망하는 선지자를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요한을 죽이면 소요사태가 일어날 것입니다. 민심이 요한에게 쏠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요가 일어나면 헤롯은 자신의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본문 6~8절입니다. “봉독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이 당시의 로마 문화라는 것인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역사가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로 알려진 딸이 춤을 얼마나 요염하게 추었는지 헤롯이 반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가서 헤롯이 선물을 준다고 하니 무슨 선물을 말할지 묻습니다. 그러자 헤로디아의 말을 듣고 딸이 말하기를 바로 여기서 세례요한의 머리를 베어 소반에 담아 달라고 합니다.

 

본문 9~11절입니다. “봉독왕이 근심을 합니다. 근심하는 이유는 요한이 하나님의 선지자인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기에 함부로 죽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사건이 일어나고 맙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자 헤롯이 현혹이 되어서 무슨 소원이라도 다 들어주겠다고 헤롯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였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다들 높은 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앞에서 맹세로 약속하였기에 만약 취소를 하게 되면 헤롯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 소반에 담아오게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고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건에 대하여 아무른 반응이 없습니다. 13절이 이 사건과 바로 연결이 된다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셔서 따로 빈들에 가십니다. 다음 주에 이 말씀을 보겠습니다만 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죽음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도 아무 말씀이 없는 것입니까?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왔기에 헤롯까지 회개하라고 외치다가 옥에 갇히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랑 곳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결국 십자가를 지십니다. 유대인들의 손에 잡히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십니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선지자의 죽음입니다.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선지자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7:51~52절입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스데반 집사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에 박해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마저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들이 예고한 그 의인 곧 예수님을 잡아 주고 살인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하나님을 살해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스데반 집사를 어떻게 합니까? 이를 갈며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사도들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다 헤롯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나의 죄를 책망 받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자존심 상하면 얼마나 화를 내는지 우리가 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교회에서 여자들에게 자존심이 상했다고 다른 곳에서 일하면서 묻지 마 살해를 한 것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선지자이든 예수든 죽이겠다고 나서는 자들이 타락한 모든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들 중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책망을 받을 때에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다시 본문 1~2절을 봅니다. “봉독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온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것은 세례 요한의 행한 능력이 예수님에게 역사한다고 본 것입니다. 헤롯은 세례요한을 자신이 죽였기에 예수님의 행적을 듣고서는 이런 공포심이 들었습니다. 세례요한을 가두고 죽인 것은 자신의 죄를 책망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감히 나의 행위를 책망하느냐는 분노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아내도 세례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선지자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책망하는 것을 계속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을 가두고 결국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보고자 한 그 메시아를 친히 목격하고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성경이 세례요한의 손가락으로 모아져서 증언하였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세례요한을 배척하고 죽여 버린 것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여 버린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를 증언하였기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증언한 그리스도도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왜 죽임을 당하였습니까?

 

요한복음 7:7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도 세상을 악하다고 하였기에 미움을 받고 옥에 갇힌 것입니다. 헤롯왕의 행사를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왕의 심사를 건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다 악하다고 여기십니까? 나 행한 것이 죄 뿐이라고 고백이 나오십니까? 아니면 내가 행한 일을 남과 비교하면서 그래도 나는 이만하면 잘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이런 비교 자체가 이미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죽임을 당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죽으심이 보이고 사도들의 죽음이 보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23~27절입니다.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와서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가르치느냐고 따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한 가지 묻겠다고 하시면서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묻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답을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면 세례요한이 증언한 분이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것이고 만약 사람에게서 라고 하면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기에 무섭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헤롯왕과 같습니다.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기에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백성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것이기에 두렵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28~31절입니다.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큰 아들과 같이 말로는 순종한다고 하고서는 끝내 순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이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처음에 불순종 하였지만 결국 뉘우치고 포도원에 일하러 간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한 둘 째 아들이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나 백성의 장로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는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다고 합니다. 요한이 전한 의의 도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기 의로 가득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자신들의 율법적인 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리와 죄인들이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의라는 것이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은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들도 그들의 양심과 윤리도덕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입으면 비로소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를 배척하고 죽인 사람이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살해한 자가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러한 죄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를 배척하고 죽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 죽음으로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죽음과 함께 할 수 없는 그 자리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존재라는 것은 죽음으로 더 이상 누구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사랑하여 한 사람이 죽으면 같이 따라 죽는다고 하여도 그것이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의 한계 안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동일하게 죽음에 있는 자들과 함께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수 있는 분은 죄 없이 우리의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죽음과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있기 전에도 계셨습니다. 우리가 이 역사 속에서 죽고 사라져도 그 분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영원하신 분이 유한한 피조물의 죽음의 자리에 함께 하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를 배척하고 죽였으나 그는 오히려 그 사건으로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를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5:8). 이 놀라운 사랑에 눈 뜨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