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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13~21 빈들에 가시니 2016. 5. 29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2)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13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셔서 빈들에 가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신 이야기는 세례요한의 죽음과 그의 장례에 대한 소식입니다. 세례요한은 성령의 인도로 물로 세례를 주고 있었기에 거침없이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물로 세례를 주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기 위하여 요한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죄인들과 함께 연합되시기 위한 세례입니다. 예수님이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심은 세상의 심판과 자기백성의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백성들에게만 회개를 외친 것이 아니라 분봉 왕 헤롯에게도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위하여 아무른 일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이 죽고 장자 지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아무른 일도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곳을 피하듯이 배를 타고 빈들도 가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죽인 그 도시를 향하여 어떤 책망도 어떤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고 빈들로 가십니다. 그러자 무리들이 여러 고을에서 예수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고 건너셨기에 호수를 돌아서 예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빈들로 가신 것입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고향사람들도 배척하였습니다. 율법의 의로 의롭다고 여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두개인들도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라는 장로들과 제사장들도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피하여 예수님은 빈들로 나가십니다.

 

14~15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라온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 무리들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하고 회개하라고 외친 세례요한을 죽여버린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라 나온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중에 벌써 저녁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많은 무리들의 저녁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이곳이 빈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마을에 보내서 먹을 것을 사 먹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1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다. 지금 이곳은 빈들입니다. 빈들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들판입니다.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을에 갈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자말자 머리에 계산기가 돌아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에 다 나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정도의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떡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이 말을 한 사람이 빌립입니다. 각 사람이 떡을 조금씩 먹게 하려고 하여도 이백 데나리온이 부족할 것이라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입니다.

 

이때 안드레가 한 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무엇을 하겠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하면 한 어린아이가 자기의 먹을 것을 주님께 바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한 사람들은 자기 먹을 것을 다 감추고 있었는데 어린 아이가 내어 놓으니 양심에 찔려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왜 빈들로 가셨는지 말씀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빈들이란 두 곳의 빈들이 생각나게 됩니다. 첫째는 출애굽 하여 광야 40년을 지난 것입니다.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심을 따라 때가 되어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시키십니다. 출애굽의 정점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섭니다.

 

히브리서 1128절에서 모세가 이렇게 한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유월절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한 것은 장자를 멸할 때에 그 피로 인하여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린 양의 피를 뿌려서 살아남은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7:34~36절입니다.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 집사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복음을 전한 내용입니다. 모세에 대한 내용이 가장 길게 나옵니다. 모세의 출생과 바로의 아들로 자라게 되는 과정과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한 일로 살인하여 도망간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내용을 다 보도합니다. 우리가 읽은 내용은 백성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어 구원자 모세를 보냈지만 모세를 배척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결국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광야로 나온 내용입니다. 광야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이 광야의 표적과 기사들 중에 40년동안 계속 되었던 일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도 있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입니다.

 

사도행전 7:37~43절입니다.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2)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행전 7:38절에서 광야교회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어린 양의 피 뿌림으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교회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 이름이 광야입니다. 광야가 무엇입니까? 빈들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어린 양의 피 뿌림을 받아 이끌려 나온 자리가 광야입니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는 이 광야, 빈들로 끌려나온 무리를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동안 한 짓이 무엇입니까? 시내산에서 언약 체결하고 40일도 안 되어 금송아지 만든 자들입니다. 광야 40년 내내 한 짓은 원망과 불평과 불신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 근처에 와서 정탐꾼 12명이 40일간 약속의 땅을 정탐하여 보고를 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 10명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는 이들이 광야 40년 동안 죽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들이 광야에서 자라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간 그들이 사사시대를 지나 왕들의 시대를 통하여 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왕이 없을 때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을 세우고 나니 왕들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으로 온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광야로 내 몰아야 합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는 42절에서 아모스 선지자가 전한 말씀을 인용하여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밖으로 옮길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인용한 아모스 선지서를 봅니다.

 

아모스 5:25~27절입니다. “25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26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27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아모스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을 책망합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고 성막이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희생과 소제를 드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광야에서 할례도 유월절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상숭배만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것도 빈들과 연결이 됩니다.

 

예레미야 2:1~2절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그 광야시절을 신혼의 때라고 합니다.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하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예레미야 시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시대입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지금 예루살렘 성도 있고 그 안에 성전도 있고 율법도 있고 제사장도 있는 유다가 왜 망하는 것입니까?

 

5~6절입니다. “5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여호와께서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들이 떠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광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주하면서 성을 쌓고 집을 짓고 부를 축적하면서 이방 화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광야를 지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 만에 광야를 거쳐 돌아옵니다.

 

에스겔 20:33~38절입니다. “3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반드시 다스릴지라 34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여러 나라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의 흩어진 여러 지방에서 모아내고 35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광야에 이르러 거기에서 너희를 대면하여 심판하되 36 내가 애굽 땅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을 심판한 것 같이 너희를 심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7 내가 너희를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하며 언약의 줄로 매려니와 38 너희 가운데에서 반역하는 자와 내게 범죄 하는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머물러 살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는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길이 광야입니다. 마치 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듯이 제 2의 출애굽이라고 하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시의 광야에서 죽은 자들이 있는 것처럼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자들도 광야에서 심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나왔지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있는 것처럼 바벨론에서 빠져 나왔는데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다고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에 나가면 분리가 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 아무 것도 없는 빈들에 나가보면 누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76~80절입니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세례요한에 대하여 예언한 내용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그 백성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알게 한다고 합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고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자라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빈들에 갔습니다. 지금 성전이 이미 도적의 소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미 세례요한으로부터 새롭게 시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빈들에서 있으면서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며 빈들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2절입니다.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세례요한이 회개를 외칠 때의 정치적 종교적 배경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분봉 왕들을 열거하면서 예루살렘의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있는 예루살렘과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빈들에서 세례요한에게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들에서 세례요한이 외치는 것은 빈들에서 시작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3~6절입니다.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세례요한이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세례요한의 외침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이제 구약에서 예언한 그 그리스도가 임하였음을 빈들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예루살렘과 성전이 아니라 빈들에서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13~16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빈들에 따라나선 무리들을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십니다. 빈들까지 따라온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과 다른 무리들입니다.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은 빈들까지 예수님을 따라 올 이유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며 병든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도 고쳐주시고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빈들이라서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평행본문에서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 감사의 기도를 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먹었는데 아이와 여자들을 빼고 남자들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먹고 남은 광주리가 12광주리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는 그동안 오병이어의 기적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 바치면 그것으로 하나님은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헌신을 독려하는 설교를 들어왔습니다. 이런 설교들은 예수님을 빈들에서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빈들에 나가지 못하도록 자신들의 목표와 목적에 붙들어 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온갖 비전과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기 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말합니다. 어떤 곳은 성전건축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설교합니다. 어떤 곳은 구제를 위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곳은 선교의 헌신을 다지기 위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작은 것이라도 바치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큰일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사람들의 꿈과 비전을 이루는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말씀하는 것이 결론입니다. 요한복음 6장이 오병이어에 대하여 가장 많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왔지만 썩는 양식을 위하여 따라왔다고 합니다. 광야에서 내린 만나를 먹은 자들도 죽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참된 양식은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다시는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 않았습니다. 빈들까지 예수님을 따라 왔지만 다시 떠나가 버렸습니다.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에서 광야에서 심판을 행하신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빈들에서 예수님을 영생의 말씀으로 알아보지 못하면 또 떠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6:65~69절입니다.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오병이어의 결론은 예수님 자신이 영생의 말씀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오게 하여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로 보낸 자들이 맞습니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찾아온 자들은 빈들에 서게 되면 떠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본 자들도 다 떠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은 날마다 빈들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 빈들에서 예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지 물으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은 빈들로 나가십니다. 그렇다면 그의 몸 된 교회라면 당연히 빈들로 나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12~16절입니다.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오늘도 예수님은 세상의 영광이 보이는 성안이 아니라 빈들로 제자들을 불러내십니다. 이 땅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장차 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형제 사랑과 나그네 대접을 말합니다. 성도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삽니다. 순회전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선행과 나누어주는 것은 물질의 나눔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것은 요한복음을 거쳐보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만이 생명임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것이 교회의 일입니다. 이런 교회는 세상의 영광을 추구할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빈들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빈들에 세우셔서 예수님 자신의 살과 피로 만들어 자기 백성들이 만들어 내십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가 자신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