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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29~39 예수님의 발 앞에 2016. 7. 3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마태복음의 1차 독자는 유대인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구약성경으로 증거 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예수님의 발 앞에 많은 병자를 데리고 와서 앉히니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십니다. 그렇게 함께 삼일을 지내고 돌려보내실 때에 보리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무리들을 먹이시고 돌려보내십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유대인들에게는 연상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고 그 발 앞에서 사람들이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병자들이 고쳐지고 예수님 앞에서 그들이 먹는 장면들은 시내산에서 먹고 마신 언약 체결 장면을 기억하게 됩니다.

 

본문 29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앉으십니다. 이런 모습은 이미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고 그 앞에 사람들이 말씀을 듣습니다. 이런 이미지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시내산에서 받아서 전하는 내용을 겹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준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법이 됩니다. 물론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 행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만 이미 죄인이 된 인간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서 의에 이를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그 율법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의를 수여하셔야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시는 분이 예수님 자신임을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30~3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십니다. 물론 이런 산은 높은 산이 아니기에 장애인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산입니다. 어떤 장애인들을 데리고 옵니까? 다리 저는 자, 맹인, 말 못하는 자와 여러 장애인들은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놓아둡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들을 고쳐주십니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러한 일이 예수님의 발 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런 표적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말은 이 무리들 중에 이방인도 섞여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치유사역은 메시아의 일입니다.

 

이사야 29:18절입니다.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이사야 35:5~6절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이사야 61: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가 오시는 날에 대한 예언이 지금 예수님 발 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문 32~39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은 지 사흘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기진할 것이기에 굶겨서 보내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광야에 있는데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어디서 얻겠느냐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고 합니다. 보리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니 그것으로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나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마가단으로 가십니다. 흩어 보내신 이유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아로 삼으려는 의도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메시아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언약 속에 담겨있습니다.

 

출애굽기 24:1~11절입니다. “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입니다.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은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게 합니다. 모세는 이들보다 더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올 수 있게 하여 언약을 체결합니다. 번제와 화목제의 피를 여러 양푼에 담아서 반을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낭독하게 한 후에 그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이렇게 피로 언약을 체결한 후에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뵙는다고 하지만 그의 발아래만 봅니다. 그 발아래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맑더라고 합니다. 그 앞에서 먹고 마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언약 체결을 하고나서 언약 체결이 된 것을 기념하며 잔치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먹고 마신 자리가 그 발 앞입니다.

 

이 장면과 오늘 본문의 말씀이 겹쳐집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또 무리들이 먹고 마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언약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행하지 못함으로 구약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구약의 언약들을 완성하시는 예수님은 그 발 앞에 정말 자격이 없는 장애인들이 고침을 받고 떡을 얻어먹습니다. 구약에서도 여호와의 발 앞에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먹고 마신 것은 그들의 자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피 뿌림이라는 언약 체결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시내산 앞의 일이 지금 예수님의 발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며 그의 발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성경에서 찾아봅니다.

 

시편 110:1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여기서 발판이 발등상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신약에서 아주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5절입니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주의 오른 쪽에 계신 주님이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다고 하십니다. 주의 오른 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신다고 합니다.

 

시편 110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윗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본문의 말씀으로 다윗이 성령에 감동이 되어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는데 어떻게 다윗의 후손이 될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에 대하여서도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본문으로 채택을 합니다.

 

마태복음 22:41~46절입니다.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다는 말씀을 시편 110:1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합니다. 시편 110:1절의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발등상)이 되게 할 때 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고대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패배한 왕의 목을 발로 밟아버림으로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10: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주의 발로 밟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발판, 곧 발등상으로 삼는다고 하십니다.

 

시편 99:1~5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여호와를 경배하는 장소가 여호와의 발등상 앞입니다. 이 발등상은 언약궤로 말하고 있습니다(132:7, 대상28:2). 그러므로 여호와의 발등상이란 여호와의 언약과 연결이 됩니다.

 

사도행전 2:33~36절입니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장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다는 이 말씀을 오순절 성령이 임한 베드로가 증언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이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찔림을 받아 탄식할 때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곧 그들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으면 그들은 예수님의 발에 밝힐 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시편의 발등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히브리서 1:10~14절입니다. “10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천지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은 결국 멸망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존하십니다. 이 세상의 보이는 모든 것들은 옷과 같이 낡아집니다. 낡아지는 것은 의복처럼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천지를 창조하신 영원한 주님께서 수많은 천사들 중의 한 천사에서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 되게 할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10:1절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임을 히브리서 기자도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나 히브리서 기자나 동일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이들에게 한 성령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10~14절입니다.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1)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구약의 제사가 온전하지 못함을 밝히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자기 백성들이 거룩함을 얻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면 시편 110:1절의 여호와께서 주께 말씀하신 그 내용이 십자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은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역사 속에서 그 미련하고 어리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그 마지막 날에 그 발에 밟힙니다.

 

요한계시록 1:13~19절입니다.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사도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함으로 밧모섬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뵙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세상이 견디지 못하여 사도요한을 섬에 유배시키지만 그 유배지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뵙고 그 계시를 받습니다. 영광의 주님의 모습 중에 15절을 보시면 그 발이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고 합니다. 이러한 발은 심판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이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됩니다. 주님께서 그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으시고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라고 하시면서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에는 죽었다고 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나아가서 엎드리는 자는 살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영원한 심판입니다.

 

오늘 본문 29~31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장애인들을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발 앞에서 먹고 마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연결하여 여호와의 발등상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발 앞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발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발입니다. 그 발에 입을 맞춘 여인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7:36~38절입니다.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3)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청하여 그곳에 가셨지만 그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입도 맞추지 않았고 감람유도 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을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평가는 이 여인이 많이 용서 받았기에 많이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예수님께 용서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발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기록된 말씀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발 앞에 나아간 자들의 그 놀라운 은혜들을 맛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서는 이미 구약의 발등상을 통하여 살펴본 대로 주님을 경배하는 자리가 됩니다. 주님을 경배하는 자리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습니다. 죄와 사망의 종에서 의와 생명으로 해방되는 참된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그 발 앞에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에 입 맞추기를 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려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발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자들은 자기들의 의로움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힘으로 자기를 치장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남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발 앞에 나아온 자들은 자기 힘으로 제대로 올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의 발 앞에 나아온 자들은 치유를 받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을 먹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자기 백성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내어주는 십자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이 박힘으로 자기 백성들을 함께 끌어안고 못 박히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도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자기의 손과 발의 힘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싫다고 십자가 못 박아 죽여 버린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말 다른 것으로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그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죄인들이며 장애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발 앞에서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되는 자들입니다. 정말로 자유를 얻었다면 그 자유로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섬김이란 다시 율법적인 의무의 섬김이 아니라 내가 받은 사랑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섬김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