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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5~12 누룩을 주의하라 2016. 7. 17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함께 예수님께 와서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바리새파는 모세의 율법만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율법선생들이 해석한 장로들의 전통도 율법과 마찬가지로 지킵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고 먹어야 한다는 것들은 장로들의 유전입니다.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의 율법조문만 인정하고 지킵니다. 그런데 이런 사두개파는 유력한 제사장들과 정치적인 지도자들이기에 소수이지만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서로 경쟁관계인데 예수님을 공격하는 일에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할 때에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하시고 그들을 떠나십니다.

 

오늘 본문5~7절입니다.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때에 떡 가져가기를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후에 남은 떡을 가져가기를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미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후에 배를 타고 마가단 지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표적요구를 거절하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떡 가져가기를 잊었다는 말은 이 당시에 제자들이 스승을 따라가면 스승의 필요를 제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떡을 가져오지 않았을 때에 예수님께서 삼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듣자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누룩 말씀은 떡의 이야기가 아닌데 제자들이 이렇게 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해석한 내용을 모아둔 책이 미쉬나입니다. 좀 더 넓게 율법에 대한 해석이나 적용은 우리가 잘 아는 탈무드라는 것입니다. 미쉬나의 내용 중에 아버지와 스승에 대한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스승이 동시에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무거운 짐을 지고 오거나, 시장에서 걸어올 때에 우선순위가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스승이 우선이랍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는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지만 스승은 하나님의 나라에 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스승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것을 준비하여 따라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마가단 지역에서 건너편으로 건너올 때에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자신들이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성경의 지명들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들었는가 하면 개 사러 빌립보에 갔다는 말로 들었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습니까?

 

본문 8~10절입니다. 제자들이 의논을 하고 있는 그 내용을 예수님이 아십니다. 제자들이 무엇을 의논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이 드실 떡을 챙겨오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의논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누가 챙겨오지 않았느냐고 서로 책임소재를 묻기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회계를 맡은 가룟 유다가 챙겨 와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제작 챙겨 와야 하는지 그런 말들을 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먹을 것을 챙겨야 한다는 것은 요한복음 4장에도 예수님은 사마리아 우물가에 계시고 제자들이 음식을 구하기 위하여 마을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떡을 말씀하시자 그들이 생각한 것은 먹는 떡만 생각나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하여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라는 책망을 하시는 이유는 먹을 떡에 대하여 서로 논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시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농사짓지 않고 길쌈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시는데 너희를 돌보지 않겠느냐며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그들이 직접 목격한 자들입니다. 그러함에도 아직도 떡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으니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는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 알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9절에서도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사와 예수님의 관심사가 너무 다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삼년이나 합숙훈련을 받아도 예수님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서도 누가 서로 높은 자리 차지할 것을 생각하며 따라가기에 누룩을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먹는 떡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깨닫지도 못한 것이며 믿음이 작은 자라고 책망을 받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만 과연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하나님과 동등 되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누가 죽는 자가 있습니까? 무슨 일을 할 때에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내가 죽는 일이 나옵니까? 내 주장이 나옵니까? 전도회로 모이거나, 구역이 모이거나, 식사봉사를 하거나 간에 누구의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까?

 

11~12절입니다. 누룩이 떡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제야 제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으로 알아듣습니다. 누룩이란 천국 비유에서 나온 말씀입니다만 천국 비유에서 누룩이란 아주 미미하고 보이지 않는 모습의 누룩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누룩이 밀가루의 성질을 바꾸어 내듯이 천국의 백성들은 천국의 성질로 바꾸어 냅니다. 천국이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임하지만 그 천국이 침노하여 들어온 자들에게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썩어질 것에서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땅의 것에서 하늘에 속한 것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달라집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이라는 누룩이 임한 자들입니다. 다른 말로 천국시민권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이와 정 반대로 가게 만듭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것을 사모하는 방향으로 가는 교훈들이기에 이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추구한 내용을 보면 왜 예수님께서 이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하신지 알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일어난 운동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기나라가 왜 다른 나라에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는지 스스로 돌이켜 본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주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고 그 이유를 알았던 것입니다.

 

신명기 28:63~64절입니다. “63 이왕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로 번성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던 것같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너희가 들어가 얻는 땅에서 뽑힐 것이요 64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열조의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나라가 망하고 만민 중에 흩어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신명기 28:15절에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키기 위하여 노력한 자들이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든 율법을 하나도 어김없이 다 지켜 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도 지킨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한 말씀을 가지고 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였는지 그 내용과 뜻을 알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지 세부적이 법을 만든 것입니다. 안식일의 노동금지는 창조와 구원이 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일방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알라고 노동을 금지하였는데 이들은 노동을 금지하는 방법 49가지를 세부규칙으로 만들어 노동을 금지한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은 안식일을 어기는 자로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세부규칙까지 지키는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안식일에 왜 일을 하느냐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안식일을 지키느냐며 일부러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조문들과 그 부칙들까지 지키는 것이 메시아 왕국을 회복하는 길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 왕국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은 마땅히 그 나라의 주인공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자기반성의 결과로 형성된 자들이 바리새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살기 위하여 부정한 자들과 접촉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정결하지 않는 것은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시각으로 예수님을 볼 때에 예수님은 병자들과 세리들과 창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어떻게 메시아로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파처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제사장 그룹들과 정치적인 지도자들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세오경만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에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와 정치의 실세들이기에 이들은 로마와 타협을 하더라도 현재의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신학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 왕국이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나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곧 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는 말씀은 그들의 율법주의와 현세적인 욕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다릅니다. 이들은 땅의 나라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메시아 왕국을 이 세상의 힘 있고 강한 나라로 생각하였습니다.

 

다음 주에 이 부분에 대하여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도 생각한 메시아 왕국이란 사탄에게 사로잡힌 생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말씀에 베드로가 말리고 나서다가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 곧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나 베드로조차 생각한 메시아 왕국이 사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 자기들 중심의 메시아 왕국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0:28절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마지막 부탁을 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떠나고 나면 사나운 이리가 와서 양떼들을 헤칠 것이며 또한 교회 안에서 바울의 가르침을 동일하게 받았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 밖에서 오든 교회 안에서 나오든 하나님이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해하는 자들의 교훈이 누룩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는 말들이 주의할 누룩입니다.

 

빌립보서 3:1~9절입니다. “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이란 율법주의를 말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곳에 율법주의자들이 와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부족하고 할례도 받아야 하고 안식일도 지켜야 하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말들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개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개들을 손 할례 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할례를 받은 자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라고 합니다. 율법주의는 반드시 자기의 육체를 신뢰하게 됩니다. 육체를 신뢰하면 자기 육체로 봉사하는 것이지 성령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기 자랑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님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이 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자신이 이미 바리새인으로 율법의 의로 흠이 없이 살아온 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살아온 그 때에 교회를 핍박하였다고 합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옳다고 하고 예수 믿는 자를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생각한 것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누룩인지 바울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자신의 그렇게 자랑한 것들이 전부 배설물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자랑거리를 해로 여깁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6:3~5절입니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4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율법주의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지 않고 다른 교훈을 말하며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른 교훈을 따르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됩니까?

 

이어지는 6~8절을 봅니다. “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이것이 바른 교훈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9~10절입니다.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이것이 다른 교훈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계속하여 11~16절입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바른 교훈을 받아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주님의 기약(期約)을 믿고 기다립니다.

 

17~21절입니다.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21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이런 말씀들이 바른 교훈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의 영향을 받으면 이런 교훈을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따라 자기 사욕을 따르는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1~4절입니다.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정말 엄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귀가 가려져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바른 교훈을 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른 교훈이 무엇인지 성경의 몇 곳만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른 교훈에서 돌이키는 것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인 율법주의만이 아닙니다. 온갖 신비주의, 기복주의, 금욕주의, 번영신학들이 번성하여 지는 것은 그러한 내용들이 자기들의 사욕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1:6~10절입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그 일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누룩들이 결국 다른 복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란 결국 우리 귀를 즐겁게 하고 나의 사욕을 채워주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는 우리의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입니까? 나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나의 사사로운 욕심을 채워주는 십자가는 아닙니까? 정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그 십자가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올라타고 관광하는 십자가입니까? 우리 안에 누룩이 얼마나 교묘하게 들어오는지 말씀으로 날마다 비춰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그 자리가 다 이룸의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