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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13~20 천국의 열쇠 2016. 7. 24

 

1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1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십니다. 지난주 설교 중에 기억에 남는 아마 이 말일 것입니다. 가이사랴는 말은 가이사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의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총독들이나 분봉 왕들이 어느 도시를 확장하거나 재건하면 그 도시 이름을 자신이 섬기는 황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가이사랴로 이름을 짓습니다. 기존의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헤롯의 아들 빌립이 갈릴리 호수 북쪽지역을 통치하면서 헤르몬산 아래쪽에 로마 황제를 위하여 신전을 짓고 이름을 붙이려고 하니 기존의 가이사랴가 있기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한 것입니다.

 

이곳에는 헤르몬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로 요단강의 발원지가 되기에 예부터 우상 숭배가 가득한 곳입니다. 이런 곳에 로마의 황제를 위한 신전까지 세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14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헤롯도 예수님의 활동을 자신이 죽인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생각 하였습니다(14:2). 엘리야는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서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야가 오면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돌이키지 않으면 저주로 그 땅을 친다고 하였습니다(4:5,6). 이러한 엘리야의 사역을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17:12,13).

 

15~17절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십니다. 바요나는 요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1:42). 시몬은 야곱의 둘째 아들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베드로의 히브리 이름은 시몬이며 이 뜻은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시몬을 게바라고 부르셨습니다(1:42). 게바는 아람어로 반석이란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베드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아버지는 요한이고 자신의 본명은 시몬인데 예수님께서 시몬을 게바 곧 베드로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아주 분명하게 잘 고백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을 한 베드로를 향하여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이 어떤 복입니까? 교회로 부름 받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게 무슨 복인가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손가락질 받는 곳이 되다 보니 교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혈육으로 교회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혈육으로 만든 것은 다 가짜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이유는 너의 이 고백이 너의 혈육이 아니기에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기에 이런 고백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바른 신앙고백을 한 것은 결코 바울의 능력이 아닙니다. 혈육이라는 말은 전인을 말합니다. 베드로의 자격과 능력으로는 결코 이런 신앙고백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입니다. 스스로 생명이 되시는 분에게 찾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맹인이라서 율법을 볼 눈이 없었습니다. 율법이란 사람이 왜 죄인인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죄 아래 가두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수건이 가려져 있었기에(고후3:15) 이러한 율법의 조문을 지켜서 메시아 왕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9~14절입니다. 9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빛으로 알아보고 영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과 빛으로 알아보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지만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혈육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베드로의 혈육이 아니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혈과 육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5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부활에 대한 말씀이지만 여기서도 사람의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우리의 혈과 육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거듭나는데 우리는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혈육으로는 거듭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전적인 은혜를 주셔야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바디메오가 눈을 뜨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베드로가 교회가 됩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가톨릭과 개신교가 아직도 싸우는 말씀입니다. 가톨릭은 이 말씀을 문자대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1대 교황이고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266대 교황이라고 합니다. 2년 전에 한국에 다녀갔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예수님께서 헬라어로 보면 너는 베드로라고 말씀하신 단어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단어가 다릅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남성고유 명사이기에 페트로스라고 하고 예수님이 이 반석위에 세우겠다는 단어는 여성 일반 명사로 페트라입니다. 이런 단어 차이로부터 예수님이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베드로의 인격이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냐는 싸움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베드로의 인격위에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였을까요?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였을까요? 개신교신자들은 주로 후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신앙고백이 주님께로부터 나왔다고 할지라도 누가 한 고백입니까? 베드로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와 신앙고백을 분리 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며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말씀의 권세를 자기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해야만 교회가 구원을 줄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교황이 세속의 황제를 꼼짝하지 못하게 한 교리도 이것입니다. 교황이 황제를 파문(破門)하여 버리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어떤 황제는 이것을 믿지 않고 교황을 억압하는 황제도 나옵니다만 문제는 백성들이 파문당한 황제를 따르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황제는 눈물을 머금고 교황에게 항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을 꿇는 카놋사의 굴욕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네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시는 이 말씀과 천국열쇠를 주겠다고 하시는 이 두 말씀을 성경에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을 부르실 때에 베드로라고 부르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베드로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게 된 것도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혈육으로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5~30절입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앞에서 본 말씀이지만 오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베드로의 소원은 아버지의 아들의 소원대로 일어난 일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베드로의 혈육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아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가 아니라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자라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계시를 주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신다고 합니다. 이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란 율법의 짐입니다. 이러한 무거운 짐을 율법을 가르친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도지지 않았다고 예수님은 책망하십니다.

 

마태복음 23:1~4절입니다. 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짐이 가벼워집니다. 멍에가 벗겨집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가면 갈수록 짐이 더욱 무거워질 뿐입니다. 지난주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들의 누룩이 바로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랍비라는 칭함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아버지보다 스승을 우선으로 섬겨야 합니다. 아버지는 세상의 삶을 살게 해 주지만 스승은 천국의 삶을 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국을 가르치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자들이 천국의 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13~15절을 봅니다. 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까? 천국문의 열쇠를 가진 자로 말합니다. 그래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열고 닫아야 할 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인데 오히려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천국의 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고 열심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교인 하나가 생기면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합니다. 이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선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이 천국 문을 가로막고 있는 자라고 하시면서 갈릴리 어부출신들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의가 많은 사람들일수록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고 결국 죽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이 반석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런 신앙고백을 나오게 하셨기에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여도 결코 베드로의 능력과 실력은 아닙니다. 오히려 베드로 같은 연약한 자를 교회로 삼으심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베드로는 이런 고백을 하고서도 예수님께 사탄이라는 책망을 듣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세 번이나 저주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까? 사탄이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이 흔드는데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22:31~34절입니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3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는 사단에게 흔들립니다. 십자가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결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합니다. 형제들이란 바로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를 말합니다. 부동산이 아니라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결코 사람의 혈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사람의 혈육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피와 땀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으로는 예수님이 세우시는 교회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무엇을 말했을까요? 자신의 행위로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자신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의 열쇠를 맡은 자들입니다.

 

오늘본문 18~20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신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교회가 아닙니다. 베드로 같이 연약한 자라도 주께서 부르셔서 결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예수님께서 만들어 내십니다. 이런 자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는데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고 하는 이 말씀은 앞에서 바리새인들이 천국의 문을 닫고 있다는 말씀을 통하여 천국의 열쇠는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왜 예수님이 그리스도 인 것을 알리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제부터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가십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이해를 못합니다. 교회를 세우시는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의 교파와 교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정말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입니까? 사람들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마다 자신들의 교회를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라고 말은 합니다. 그런데 그 말 속에 무엇이 들어가 있습니까? 자신들의 혈육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수고와 헌신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신들은 개척한 사람이라는 것도 들어갑니다. 교회당 지을 때 목돈 낸 것도 포함이 됩니다. 자신들의 가족이 몇 명이나 되는 것도 포함시키고 자신이 전도 했다고 하는 것도 포함을 시킵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주님의 피로 세운 교회입니다. 이것이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의 기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들도 천국에 못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도록 만드는 곳이 교회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천국의 열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봐야 합니다.

 

사도행전 2:36~41절입니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사용하는 천국의 열쇠가 이런 모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이때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천국 열쇠를 사용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사용하는 천국의 문을 여는 방법과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먼데 있는 이방인들도 포함이 됩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하여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베드로이지만 나중에 고넬료의 집에 가기를 꺼려하고 이방인과 식사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 앞에서 외식을 하다가 바울에게 책망도 듣습니다. 이러한 베드로가 무엇을 증거 하는지 봅시다

 

사도행전 15:1~5절입니다.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 천국 문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지키라고 합니다. 여기서 어떤 바리새인들이란 율법을 지켜 오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율법의 경계를 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베드로를 통하여서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밀어붙이시니 하는 수 없이 고넬료의 집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천국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6~11절입니다.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 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도와 장로들이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이방인들도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었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이방인도 믿음으로 깨끗하게 하셨다고 하면서 우리와 우리 조상도 능히 메지 못하던 율법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고 하면서 우리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아주 중요한 사도들의 결정입니다. 이것이 지금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는 모습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주 예수의 은혜 곧 그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