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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1~5 천국에서 큰 자 2016. 9. 18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과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만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16:21, 17:23).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누가 크냐는 다툼을 하면서 갑니다. 누가 크냐하는 다툼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신의 두 아들이 예수님이 임금이 되시면 좌우편에 앉혀 달라는 청탁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러한 청탁에 제자들이 다 분노합니다. 그 이유는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사람이 크다는 평가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삶이 옳게 평가를 받는 일이기에 모두가 그렇게 되고 싶어 합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기에 제자들은 그런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세상 나라의 연장이지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닙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서 큰 자도 자신을 어린아이 같이 낮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 같아야 한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린 아이 같아야 한다는 말씀을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들어왔습니다. 어린 아이는 순수하다. 욕심이 없다. 겸손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고 합니다. 창세기 6:5절을 보시면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일어납니다.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이 착해졌을까요? 창세기 8:21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항상 악하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어야 천국에도 들어가고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크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린아이 같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우리는 약 2천년이라는 엄청난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국어사전적인 개념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 시대의 문화로만 해석하여도 역시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우선은 그 시대의 문화적인 맥락을 이해하면서 성경에서 어린 아이를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찾아 봐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를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제자들과 대비하여 보면 천국에 누가 들어가는지 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간다는 말씀과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서 내가 노력한 만큼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는 제자들 방식의 천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본문 1~3절을 다시 봅니다.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은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자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한 주제에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의 현실과 비슷합니다. 교회당에 오면 구원 받은 것처럼 말합니다.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천국을 따 놓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렇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준 다음에는 세상에서 복을 받고 사는 것과 천국에서 상을 많이 받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온갖 제자훈련을 통하여 봉사와 헌신과 선교에 관한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면 어떻게 말씀하실 까요? 세상에서 형통하고 천국에서 큰 상을 받고 큰 자가 되기는커녕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이키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선 것은 모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자 그렇게 따라 나섰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부르셨기에 그 권능에 의하여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불려 나와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줄곧 생각하는 바는 누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가 하는 생각으로 따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도 못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힘이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부모가 모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자신의 힘으로 갈 수가 없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당시의 문화를 따라 어린이를 말한 내용을 보면 어린 아이는 자기가 본 것을 가감 없이 말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 당시는 주로 가족 공동체로 살아갑니다. 우리도 옛날에 씨족 마을을 이루었듯이 아이들은 다 친척들이기에 서로 어울려 이집 저집 돌아다닙니다. 예수님께서 12살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중에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아도 친척 친구들과 함께 있겠지 하면서 내려간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은 이집 저집 다니다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하게 됩니다. 어느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말할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스스로 판단하여 가감을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느 부부에게 잘 지내시느냐는 인사를 하면 대부분 밝게 웃으면서 잘 지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 그 부부의 아이가 있으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어제 밤에 크게 싸웠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싸우면서 목사 욕도 했다고 한다면 상당히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 입이라도 틀어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에서도 임금이 벌거벗고 길을 행진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임금의 옷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임금이 벌거벗고 간다고 합니까? 어린 아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린 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이 눈치도 보고 저 눈치도 보면서 얼마든지 가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같지 않는 이런 자들, 곧 자신의 선악체계와 이해타산을 따라 말하는 이런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5:37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너희는 '' 할 때에는 ''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친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예와 아니오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 예와 아니오를 말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와 아니오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라 말을 합니다.

 

영화 밀정을 보면 주인공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이렇게 하여도 다음에 어떻게 변할지 나도 나를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다 때마다 달라집니다. 우리의 자아라는 것도 때마다 변신을 합니다. 나의 욕망도 타인의 욕망의 투사로 일어납니다.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진리와 비 진리를 분멸하여 예와 아니오를 말하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선악과 따 먹은 후손들입니다. 아담의 허리에 속하여 선악과를 먹은 자들이기에 언제나 선악의 판단의 주체가 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본문 4절을 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어린 아이 같아야 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도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낮출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아이를 보았습니까?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떼를 쓰고 울고 고함을 지릅니다. 그런데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서 요구하는 아이를 보았습니까? 물론 어떤 아이들은 예쁜 짓을 하는 것으로 자기의 것을 받아 내기도 합니다. 이것도 어린아이는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문화에서 자기를 낮춘다는 개념은 어린이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장이 되고 사회의 어른이 되는 길을 위하여 먼저 듣는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 집과 유치원에서 경청 훈련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훈련을 시켰더니 자기가 말을 할 때에 잘 들어주지 않으면 왜 경청을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더랍니다. 유대 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이 이런 훈련을 하는 것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는 설명을 보면서 저는 다음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요한복음 3:31~36절입니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보고 들은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어른이 된 우리들은 보고 들은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타산을 따라 가감하면서 말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보고 들은 대로 말하지 않으면 이미 아이가 아닙니다. 그 아이도 자신의 이해타산을 따라 말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처럼 말하는 자는 당연히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한 말씀도 자신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심으로 예수님은 보고들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다는 영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노가 임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증언을 받는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5:30절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예수님은 보고 들으신 대로 말씀하십니다. 보고 들은 대로 심판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심판이 의로우신 이유는 예수님을 보내신 분의 뜻대로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전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유대인들이 당황스러웠겠습니까?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가 어떻게 했는지 사람들 앞에서 가감 없이 말하면 아이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입을 막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23:1~12절입니다.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 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와 천국에서 큰 자에 대하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가르친다는 자들이 어떤 모습인지 그들의 실상을 들추어내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아주 경건한 자들처럼 보이려고 율법의 조문들을 잘 지키는 것으로 꾸미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랍비나 아비나 지도자라는 칭함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들은 다 유대 사회에서 존경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우월적 지위를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선생은 하나며 아버지는 한분 하나님이시고 지도자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지리라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어린 아이 같아야 합니다. 그것은 보고 들은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그렇게 하십니다. 그런데 보고 들은 것도 없이 종교적인 전통을 따라 앵무새처럼 답습하는 그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그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입을 틀어막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인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이어지는 마태복음 23:25~28절을 봅니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유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세력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거침없이 전합니다.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합니다. 성령이 한량없이 부어주셨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눈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사회에서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흠이 없다고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향하여 예수님은 저주를 퍼 붓고 계십니다. 겉으로만 깨끗한 척 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합니다. 그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속이 이렇지 않습니까? 이런 책망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으시겠습니까?

 

33~36절을 봅니다.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이것이 보고 들은 대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가장 존경 받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뱀들이며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어린 아이처럼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예수님만 들어가시는 나라이면 예수님만이 크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우리도 세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입을 틀어막고자 십자가에 죽이듯이 오늘도 이런 자들을 죽이려고 하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사도행전 4:10~21절입니다.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도망갔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자 사람들이 주목하여 봅니다. 이때에 베드로가 복음을 전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러면서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된 것입니다. 이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며 천국에서 큰 자라는 말을 듣는 자들입니다. 크다는 말이 세상의 계급이나 상급의 차등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내용을 크다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질문한 그런 차원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세상과 전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세계를 말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6:19~20절입니다.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바울사도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요청하기를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요청합니다. 비록 옥에 갇혀 쇠사슬에 매여 있어도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하여달라고 한 것입니다. 복음은 옥에 갇혔다고 해서 위축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보고 들은 대로 전하는 자들입니다.

 

저는 참으로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름에 파리에서 온 분이 돌아가서 카톡으로 도착 인사를 하면서 저의 설교를 들으면 제가 정말 담대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마 여러분들이 저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에 제가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담대하게 전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시는 분이 많았는데 그 기도의 응답이 된 모양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 봅시다. 누가 천국에 들어갑니까?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는 보고 들은 대로 말하는 것을 말한다고 보면 예수님만이 보고 들은 대로 말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천국은 예수님만 들어갑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들어가는 그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함께 들어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된다는 것은 어른이 된 나의 가치 판단의 체계가 무너지고 그리스도가 나의 머리가 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판단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은 대로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천국에서 큰 자들이 됩니다. 이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본문 5절입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주의 성령이 임하여 그들이 보고 들은 것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보고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도들이 전한 것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보고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것을 사도들이 전하여준대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크고 작음을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크심을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진 그 영광을 보게 하시기 위하여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십니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찬양하는 자들입니다(17:24,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