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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1~12 이혼증서와 천국 2016. 10. 23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 한 자는 받을지어다

 

오늘 설교제목이 이혼증서와 천국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합이 되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바리새인들이 질문한 것은 이혼에 관한 문제인데 예수님의 답변은 천국에 대한 말씀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결혼관은 내가 행복하냐 아니냐에 관심이 있는 반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결혼이나 이혼의 문제나 독신으로 사느냐 마느냐 하는 것도 내가 얼마나 행복하냐 아니냐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것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셨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은 용서의 나라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네가 남을 용서하는 그 능력의 나라가 아니라 네 자신이 얼마나 무한한 용서를 받아야만 되는지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를 떠나 유다지역으로 가시는데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곳에서 큰 무리가 따릅니다. 그곳에서도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때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시험하여 질문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기 위하여 이혼에 대한 율법으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합당하냐고 묻습니다. 이러한 이혼의 문제는 이 당시 유대사회에 아주 중요한 해석문제가 대립하여 있습니다. 힐렐 학파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이혼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샴마이 학파는 아내의 부정함이 있을 때만 이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가 자기 이복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취한 것을 책망하다가 옥에 갇히고 결국은 목이 잘려서 죽게 됩니다. 이러한 첨예한 문제를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이 당시에 이혼을 할 수 있다고 규정된 여러 가지 규례가 있습니다. 율법에서 제사장의 자격이 안 되는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자도 이혼에 해당됩니다. 이 뿐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이혼이 되는데 예를 들어 밥을 하다가 밥을 태우면 이혼이 됩니다. 여자가 목소리가 커도 이혼 사유가 됩니다. 음산하고 쌀쌀한 목소리도 이혼 사유가 됩니다. 몸에 냄새가 나도 이혼사유가 되고, 추하고 못난 머리카락도 이혼 사유가 됩니다. 그런데 이혼의 선언은 남자만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간단하게 이혼을 할 수 있는가 하면 세 문장만 말하면 됩니다. “나는 더 이상 네 남편이 아니다. 나는 네게서 갈라진다. 너는 내게서 떠나라.” 이렇게 말만 하면 여자는 조용히 떠나야 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예수님도 잘 아시고 이런 질문에 답을 하십니다.

 

본문 4~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시기를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처음 남자와 처음 여자를 만드시고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한 것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는 자들입니다. 특히 모세오경은 그들의 모든 종교와 삶의 근간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기에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바로 반대질문을 합니다.

 

7절을 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느냐고 질문합니다. 모세 오경을 너무 잘 아는 그들이 창세기의 말씀을 알고 있지만 무슨 말씀을 취하고 있습니까? 창세기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신명기 24:1절의 말씀으로 그들의 이혼을 합리화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은 둘이 한 몸이 된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으로 자신들의 이혼을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율법을 주면 율법을 이용하고 복음을 주면 복음을 이용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임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이혼의 근거로 말한 모세의 법을 보겠습니다.

 

신명기 24:1절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사람이 아내를 맞이한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발견하여 그를 기뻐하지 않으면 이혼 증서를 써서 내어 보낼 수 있다는 이 말씀을 유대인들은 이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수치 되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이 없으니 온갖 사소한 것으로 이혼을 하고 살았던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8절입니다.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서 아내를 내 보내게 한 것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원래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혼의 문제는 이미 마태복음 5:31~3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버리면 그로 간음하게 하는 것이며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그 해석들 보다 자신의 말씀이 더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미 유대인들이 이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계셨으며 모세의 법을 주신 것은 너희의 악함을 인하여 주신 것도 되지만 너희의 악함을 드러내는 것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악함을 위하여 허락하였다는 말씀은 남자가 아내를 싫어하는데 이혼을 할 수 없는 이유로 아내를 학대하고 괴롭힐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여자 편에서는 차라리 집을 나가게 해 주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내 보내면 다른 사람에게 시집갈 수가 없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여자가 혼자 살기는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내어 보낼 때에 이혼증서를 써 주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 재혼하여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세의 법을 악용하고 있는 자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원래 이 말씀이 그런 법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처음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한 몸이라고 하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더 스토닝(The Stoning)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책으로 출판하고 그 책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슬람도 모세의 율법을 그들의 경전으로 여기고 있기에 이혼을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음행을 해야 이혼이 됩니다. 한 가정의 남자가 아내와 아들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좋은 아내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돈 많은 의사의 딸과 결혼하고 싶어서 아내를 음행했다고 모함하기 위하여 가짜 증인들을 세워서 결국 돌로 처형하는 내용입니다. 남편이 먼저 돌을 던지고 마을 사람들도 돌을 던져 여자를 죽입니다. 율법을 이용하여 아내를 음행으로 몰아 돌로 쳐 죽인 인간의 악함과 탐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이것이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분이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구약의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벧전1:11). 모세가 그런 율법을 준 것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허락한 것이지만 본래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음행을 하면 이혼증서를 써 주는 것이 아니라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음행이 아닌데도 다른 사소한 것으로 인하여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들면 그것은 남자가 간음을 하는 것이 됩니다. 간음을 하면 율법을 어긴 것이 됩니다.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10절입니다. 처음 질문은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관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으로 올무를 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런 말씀을 듣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엇이라고 질문 합니까? 제자들도 유대인들입니다. 이혼에 대한 문제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 것 같으면, 즉 이혼을 쉽게 할 수 없으면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와 평생 사는 것도 괴로울 것이며 또 그런 아내를 음행의 연고 외에 내어 보내고 다른 데 장가들면 음행하는 것이라고 하니 이럴 바에야 장가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한 것입니다. 인간의 악함을 또 보게 됩니다.

 

11~12절입니다. 장가가지 않는 것이 낮겠다는 이 말에 예수님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타고난 자라는 말씀은 어머니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선천적인 장애인도 있고 내시와 같은 자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 된 자도 있다고 합니다. 고자는 오늘도 거북한 말이지만 그 당시에도 거북한 말입니다. 그런데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 된 자도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천국을 위하여 장가가지 않는 일이 사람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라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고린도서를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을 보시면 결혼과 이혼과 독신에 대한 내용을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합니다. 바울의 의미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세기의 말씀조차 넘어서 버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녀 낳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바울은 결혼하는 것이 죄짓는 것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상대화 합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하여 아내와 남편을 두라고도 합니다. 독신은 은사라고 합니다. 과부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제할 수가 없어서 정욕이 불타듯 하면 재혼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이혼은 믿지 않는 자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하면 이혼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평 중에 하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아내가 구원을 받을지 또는 예수 믿는 아내로 말미암아 남편이 구원받을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신중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한마디로 하면 이렇습니다.

 

고린도전서 7:29~31절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이 세상의 모든 제도와 외형들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가를 가든지 시집을 가든지 이혼을 하든지 재혼을 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의 기쁨과 나의 행복과 나의 만족을 위하여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나를 위하여 다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성경은 간음이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4:4절입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성경은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내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음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간음한 자들은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 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사랑하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혼을 당하여야 마땅합니다.

 

이사야 50: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듭거듭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혼 증서를 써서 내 보내지 않았습니다. 빚에 팔아넘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다고 합니다. 호세아서의 말씀을 보시면 스스로 바람이 나서 나간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간음한 자라면 율법에 의하면 돌에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사야 54:4~8절입니다.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젊었을 때에 수치는 애굽의 종살이 하든 때를 말씀합니다. 과부 때의 수치는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이러한 수치들을 어려서 버림받은 아내로 묘사합니다. 왜 버림받았습니까? 음행으로 인하여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남편 된 여호와 하나님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라고 합니다. 넘치는 진노라 잠시 여호와의 얼굴을 가렸지만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이 여긴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잠깐이지만 그 자비와 긍휼을 영원하다고 하십니다.

 

에스겔 23:1~4절입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머니의 딸이라 3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져졌나니 4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후에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애굽에서부터 음행한 이스라엘입니다. 광야에서도 음행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음행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음행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앗수를 의지하고 바벨론을 의지하였습니다. 그 결과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결론은 이러한 멸망의 자리에서 다시 회복시키시고 새로운 성전을 만드시고 여호와 삼마를 이루어내십니다(48:35).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겠다고 합니다.

 

호세아 2:14~20절입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4)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5)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세아 선지자와 음란한 여인 고멜과의 결혼과 그 자녀들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흩어버리시겠다고 이스라엘이라고 이름 짓게 하시고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고 로루하마로 이름을 짓고 내 백성이 아니라고 로암미라고 이름을 짓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 돌이켜 주셔서 그 흩어버린 것을 회복하여 주시면서 다시 내 백성이라고 하고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을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가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합니다.

 

이사야 에스겔 호세아를 통하여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이혼증서를 받고 버림받아 마땅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신부로 받아주시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이혼증서를 써서 줌으로 아내를 버리겠다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함이 어떠한지 더욱 드러납니다. 지금 너희가 너희 아내와 이혼하기 위하여 공연한 트집을 잡아서 이혼증서를 써 주는 것으로 이혼을 합법화 하지만 그러나 너희의 악함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이혼을 당하여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오늘본문 12절을 다시 봅니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고 합니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일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고 불러주시는 그 자리에 우리가 끼어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자기 언약에 신실함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심으로 비로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을 아무도 본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계시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그 언약의 신실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그제야 네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그 십자가로 용서하셨기에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 되어 있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확증 하셨습니다. 이혼당해 마땅한 자들을 그의 긍휼로 용서하시고 그의 거룩한 신부로 세워서 영원히 결혼하여 살겠다고 하신 그 사랑이 십자가로 나타난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5:29~32절입니다.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오늘 본문에서 이혼에 대한 질문을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답변하셨습니다. 남녀의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남편이 이혼증서를 주지 않으면 아내가 아무리 바람이 나서 나가도 이혼이 되지 않습니다. 어려서 애굽에서도 유방이 눌리고, 광야에서 금송아지와 음행하고, 가나안 땅에서 바알과 아세라와 음행하고 스스로 팔려서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하였지만 그러나 남편이 이혼증서를 주지 않음으로 그들을 다시 자신의 거룩하고 흠도 점도 없는 신부로 불러주시는 그 놀라운 사랑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요한계시록 19:7~8절입니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만들어진 의의 세마포 옷을 입은 자들은 어린 양의 신부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그 보혈의 능력이 점도 흠도 없는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로 만들어 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우리의 음행으로 이혼증서를 받는 것만 해도 과분한 일입니다. 음행은 돌로 쳐 죽이는 형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용서와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거룩하고 온전하고 정결한 신부가 됩니다. 이런 자들은 즐거워하며 기뻐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