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6~13 내 장례를 위하여 2017. 9. 3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1~5절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이유를 두 주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인지 마태는 그 죽으심의 의미를 유월절이 되기 며칠 전의 베다니에서 한 여인이 예수님께 기름부음의 사건을 여기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역시도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를 위하여 그 여인이 기름을 부었다고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의 집에 계실 때라고 합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 약 3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감람산 자락에 있습니다. 이 마을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보면 가난한 자의 동네라는 뜻입니다. 이곳에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던 마을입니다. 예수님은 이 베다니 마을에 자주 가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라고 합니다. 아마 시몬이 나병에 걸렸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기에 그 집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식사를 대접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 12:1~2절입니다.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오늘 본문의 평행구절이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나오는데 마가복음은 마태복음과 거의 같고 요한복음은 조금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 마을에 가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마을입니다. 여기서 잔치를 누가 열었는지는 불분명한데 마태복음을 보면 시몬의 집으로 보입니다. 이 시몬의 집에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함께 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3~8절을 봅니다.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2)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와 마가는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데 요한은 이 여인을 마리아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고 하는데 요한은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합니다. 누가는 이 상황과 조금 다르지만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과 그 머리카락으로 씻기고 기름을 부어 입 맞추기를 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여인은 죄 많은 여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 복음에서 동일하게 예수님께 기름 붓는 내용들이 다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와 요한복음에서는 동일하게 예수님께 기름 부은 이 사건을 자신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7절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붓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여인이 마리아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이 향유가 순전한 나드 한 근으로 삼백 데나리온이나 가격이 된다고 합니다. 성인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기에 성인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벌어야 되는 상당한 금액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기름을 붓자 제자들이 보고 분개합니다. 여기서는 제자들이 복수로 나옵니다만 요한복음에는 가룟 유다가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가룟 유다가 도적이라서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훔쳐 가려고 그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8~11절을 봅니다. 제자들이 이 여인의 기름부음을 보고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고 합니다. 이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린 것을 허비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겠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분노와 그 마음조차 아시기에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고 하시면서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기에 언제든지 구제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모릅니다.

 

12~13절입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위한 기름 부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고 합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귀한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사건을 왜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이 여인의 행한 일도 말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이 여인의 기름 부음이란 예수님의 죽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길이 죽음의 길이 아니라 메시아로 등극하는 날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어떻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가시는 길이 죽음의 길임을 알고 그 죽음을 준비하여 기름을 부은 것입니까?

 

누가복음 10:38~42절입니다.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 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3)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4)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는 동네로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니 마르다라는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를 본디 사랑하셨다고 합니다(11:5). 그런데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이 분주한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꼼짝도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마르다는 그런 마리아에 대하여 화가 나서 예수님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그냥 두느냐고 하면서 그를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고 명하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만 한가지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시면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위하여 한 일은 이런 분노로 인하여 빼앗겨 버립니다. 나는 이렇게 헌신 충성 수고를 다하는데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났는데 오히려 예수님은 이러한 마리아의 일 곧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그 말씀을 듣는 이 일이 빼앗기지 아니할 일이라고 합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볼 때에 가장 귀하게 보이는 일은 복음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을 수 있는데도 듣지 않거나 청년들이 오후에 참석도 안하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 부은 이 일이 왜 복음이 증거 되는 곳에 말해져야 하는 것입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리아의 이 행위를 예수님이 해석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입은 자라면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아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내시는 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부음으로 메시아의 일을 보여줍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자는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왕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아서 사역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임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공식취임식과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앞에서 실제로 기름부음을 받는 것입니다. 이 기름부음은 죽은 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기 전에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이 여인이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할 일을 제자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임금님으로 등극할 메시아로 기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메시아의 일을 완성할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이 여인은 그 기름부음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시체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의 장례법은 시신을 베로 사서 동굴에 둡니다. 그러면 약 1년 동다 살이 다 썩어 내리면 그 뼈를 수습하여 옆의 구덩이에 넣습니다. 그러면 시신이 썩을 때에 악취가 나기에 시신에 향이 짙은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나서 그 시신을 수습한 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행합니다.

 

요한복음 19:38~42절입니다.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2)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 숨기다가 예수님의 죽으신 후에 빌라도에게 시체를 가져가기를 원한 것입니다. 죽고 나자 용기가 생긴 것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 죽음의 효력으로 저는 봅니다. 사형당한 예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밤중에 예수님께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시체에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바르고 세마포로 삽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향품을 바릅니다. 그런데 몇몇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하여 무덤에 갔지만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입니다(24:1).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한 여인의 기름 부은 이 사건을 왜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한 일을 증거 하라고 하였습니까? 평행구절을 통하여 살펴본 대로 이 여인이 마리아라면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자들도 들었지만 제자들은 메시아의 일이 죽음으로 이루실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잡히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실 때에 베드로는 말리고 나섰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일이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말하라고 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고 전하는 말씀입니다. 성경 몇 곳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2:14~17절을 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시는 것입니까? 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바로 왕으로 다스리시면 되실 텐데 왜 죽임을 당하셔야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죽음에 매여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무슨 일을 하여도 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신 이유는 그의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시기 위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 기름을 붓는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에 이 여인의 기름부음을 말하는 것은 그의 죽으심이 메시아의 사역을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이며 십자가의 다 이루심인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부활은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0~58절입니다.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의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혈과 육으로 하는 일은 죽음의 종 노릇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혈과 육으로 오셔서 죄와 사망아래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자신을 나누어주시는 죽음이며 그 죽음에 합류된 자들을 부활의 생명으로 연합시켜 내시는 일이 그의 죽으심으로 이루어내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으심으로 사망을 이기시는 것입니다. 사망은 죄로 인하여 왔고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죄와 사망과 율법을 못 박음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2:12~15절입니다. “12 너희가 1)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이야기가 복음이 전하여지는 곳에 전하라고 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3~26절입니다.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바울은 주님의 최후의 만찬에 참여하지도 않은 자이지만 계시로 받은 내용이 그 죽으심이 새 언약임을 알고 주의 죽으심을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증인들은 그의 죽으심이 무엇을 다 이루심인지를 증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