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31~35 예수님의 새 가족 2018. 12. 2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3)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3)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3)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3)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오늘 본문 31절의 그때라는 것은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잡으려고 온 것과 예루살렘에서 서기관들이 내려와서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할 그 때입니다.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릅니다. 가족들도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이 이상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가족들 까지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나나실 때에 평범하게 자라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이 많습니다. 이사야 7:14절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受胎告知)하였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에게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 두려워말고 데려오라고 합니다. 천사가 목동들에게 구주 탄생의 표적인 구유에 누우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동방의 박사들이 별 빛을 따라 찾아왔습니다. 이 박사들의 말을 들은 헤롯 왕이 이스라엘의 왕이 어디서 태어나는지 물어보니 서기관들은 즉석에서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시몬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하였으며 안나 선지자도 아기 예수를 증거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년시절에 대하여 딱 한번 기록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8~52절입니다.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기록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 유일한 기록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예수의 자기이해에 대하여 대부분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때라고 합니다. 그때에 성령이 예수님 위에 임하고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두 살 때에 이미 자기를 찾는 요셉과 마리아를 향하여 왜 나를 찾느냐고 하면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하였느냐고 합니다. 부모는 그 순간에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 일 후에 예수님은 나사렛에 내려가셔서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족이나 마을사람들도 예수님을 특별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을 특별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52절에서도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합니다. 지혜와 키가 자랐다는 것은 사람들과 같이 성장한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30세가 되었을 때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공생애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친척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잡으러 왔고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였기에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밖에서 사람을 보내어 부릅니다.

 

본문 31~32절을 봅니다.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많이 둘러 앉아 있어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만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있었다면 가족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밖에 서서 예수를 부른다는 것과 예수님 가까이 둘러앉은 자들과 구별이 됩니다. 예수를 둘러앉아있는 자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는다고 알려줍니다.

 

본문 33~34절입니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0년 가까이 한 집안에서 살아온 가족을 향하여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들이냐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곁에 둘러앉은 자들을 보면서 이들이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말입니까?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열두 살 때에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4:24). 예수님과 함께 어려서부터 자라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말씀을 전하고 표적과 기적을 보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가족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을 보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자들은 다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왜 당신은 가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7:5). 혈육의 가족이라도 자동으로 예수님의 새 가족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들이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입니까?

 

본문 35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향하여 미쳤다거나 귀신들렸다면서 밖에 서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38~40절입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입니다. 썩는 양식을 먹고 살아야 할 인생들이지만 그것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 만이 영생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믿는 자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자기 백성들을 아들에게 보내주시고 아들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도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나오는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 신념과 결단과 의지로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믿음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둘레에 앉아있는 자들, 곧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면서 밖에 서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을 향하여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을 갑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왔던 자들도 생명의 양식에 대한 말씀을 듣고 다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주셔야 하고 아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십자가로 대속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야 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됩니다. 이런 믿음이 어떻게 오는지 봅니다.

 

로마서 10:9~17절입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1)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 밖에 서 있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미쳤다고 보는 정도가 아니라 이단의 괴수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삼일동안 보지 못하게 되었다가 아나니아 선지자가 기도하여 보게 됩니다. 이때부터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거 하는 사도가 됩니다.

 

로마서 10:9~17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여기서 계속 반복되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믿으려면 들어야 합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겠습니까? 들으려면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하고 전파하려면 보내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복음을 기록하여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다 순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듣고 믿든지 아니 믿든지 간에 복음이 들려져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복음이 들리는지 아니 들리는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리고 믿어진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밖에 서 있는 자들과 예수님 주위에 둘러앉아서 예수님을 말씀을 듣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누구보다 자신들이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은 밖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적용시켜 봅니다. 자신은 몇 대가 기독교 집안이라고 합니다. 엄마 배속부터 교회를 다녔기에 이렇게 교회도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일에 관심이 없으면 그것은 교회 다니는 것이 집안의 내력이고 문화현상일 뿐입니다. 여전히 밖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새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심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생명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고 그 백성들과 함께 일으키신 것이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묵시적으로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났고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입니다. 이들은 반드시 복음을 듣고 믿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자들처럼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입니까?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말씀을 전하다 보면 자세히는 몰라도 대략적으로는 말씀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한 청년이 몇 년 만에 청년회에 왔습니다. 반가워서 모든 청년들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나중에 그 부모님께 아들이 왔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교회 와서 말씀 듣지 않으면 정말로 가족관계를 끊는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말씀을 듣는 것으로 저는 기뻤습니다. 우리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6:29) 영생입니다(17:3).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이 됩니다.

 

마태복음 10:37~39절입니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자아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교회를 나와도 자아의 확대를 꿈꿉니다. 자아의 확대가 가족이며 사회이며 인류입니다. 이것 외에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목숨을 얻으려고 하는 자아 확대의 길이 영원한 죽음의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이 됩니다. 영원히 갈라서기 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새 가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