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2:13~17 일곱째 나팔(4) 2021. 4. 11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서 있더라

 

지난주에 일곱 번째 나팔 중에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을 보았습니다.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과 용과 그의 사자들의 전쟁이 일어났는데 용과 그의 사자들이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용의 이름은 옛 뱀, 사단, 마귀라고 합니다. 이 사단이 하는 주특기가 옛 뱀으로 미혹하는 일이며 참소하는 일입니다. 이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일어난 영적인 전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창세기 3:15절의 말씀대로 뱀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여인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의 성취가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단번에 하늘에 앉히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도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다고 합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피의 능력을 믿는 것이 말씀으로 이기는 겁니다. 이런 어린 양의 피는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 때도 보여주신 겁니다. 율법에서 피 흘리는 제사를 통하여서도 계시하신 겁니다. 이러한 구약의 모든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증거 하기에 구약의 성도들이 믿고 기다린 그 메시아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이 십자가로 하늘에 앉혀진 겁니다. 하늘에 앉혀진 이들에게는 더는 참소나 박해가 있을 수 없기에 기뻐하라고 합니다(12).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가 있습니다(12). 그 이유는 사탄이 하늘에서 땅과 바다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땅과 바다를 세상이라고 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용이 땅으로 쫓겨난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샀습니다(20:28). 그러므로 하나님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자들이 교회인데 그 머리가 그리스도입니다. 먼저 구약의 교회를 봅니다. 구약의 교회를 광야교회라고 합니다(7:38). 광야교회는 짐승의 피를 뿌립니다. 율법으로 드리는 짐승의 피는 그림자이기에 죄를 없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단번에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거룩함을 얻습니다(10:1~10). 이 일을 십자가로 이루셨기에 구약의 성도들이 십자가의 피를 뿌려 하늘에 앉힌 겁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쫓겨난 용이 땅과 바다로 내려와서 남자를 낳은 여자 곧 교회를 박해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그 여자 곧 교회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습니다. 여기서 여자인 교회가 어떻게 보호를 받는지 먼저 구약을 봐야 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아 나오는 것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기간도 함께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9:4절입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시내산 앞에서 여호와의 이 말씀을 모세를 통하여 듣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독수리 날개에 업혀 온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를 걸어서 건너온 겁니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하나님께서 강한 권능으로 구원하여 내셨음을 말합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함은 성자와 성부와 성령의 권능으로 나온 겁니다.

 

신명기 32:10~12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출애굽 하여 광야로 나왔기에 광야교회라고 합니다(7:38).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 곧 광야교회를 보호하셨는지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은 신약교회가 보호받는 것을 말하지만 먼저는 구약의 교회가 어떻게 보호받았는지를 먼저 보았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듯이 자기 백성을 업어 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한때와 두 때와 반 때입니다. 앞에서도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다니엘서에도 이 기간을 두 번이나 말합니다. 그래서 구약이 한때와 두 때와 반 때이며, 달로 치면 마흔두 달, 날짜로 하면 천이백육십일입니다. 이런 숫자는 상징의 수로 하나님의 창조 완성을 이미 칠로 계시하셨기에(2:1~3). 구약을 절반으로 신약을 절반으로 하면 이 숫자가 다 들어맞는 겁니다.

 

김현두 목사는 이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이렇게도 구분합니다. 구약의 한때는 창조로부터 노아 홍수까지, 두 때는 홍수로부터 구약 전체기간, 반 때는 십자가의 때로 봅니다. 신약의 한때는 십자가의 때, 두 때는 십자가로부터 신약 전체기간, 반 때는 재림의 때로 봅니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삼 년 반이라는 날짜는 어려서부터 들어온 칠 년 대 환난의 전 삼 년 반, 후 삼 년 반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칠로 완성됨을 보면 구약과 신약이 각 삼 년 반입니다.

 

마태복음 1:17절의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부터 기록하지 않고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 바벨론 포로에서 예수님까지 14대로 본 것도 합하면 구약이 42대가 됩니다. 여기에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다 포함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14대로 세 구분하여 42로 맞춘 것도 구약 전체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여자가 도피한 광야를 말하는데 구약도 광야교회라고 바울 사도가 말하였습니다(7:38). 그런데 이번에 설교 준비를 하면서 다른 주석서를 보니 구약의 광야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을 친 횟수가 42회라고 합니다(33:9~49). 그래서 헤아려 봤습니다. 광야 기간 진을 친 횟수가 42회라면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구약 전체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광야교회를 지키셨듯이 신약의 광야교회도 완벽하게 지키십니다.

 

본문 15~16입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켜버립니다. 이런 내용도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약의 성도들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들을 구원하시고 신약의 성도들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 구원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도 구약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보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물이라고 하면 노아 홍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 온 세상이 물에 잠기지만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은 안전합니다.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만들고 방주에 타게 되었습니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합니다(6:8). 다른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몰두하여 살았지만, 노아는 은혜를 입었기에 방주를 예비한 겁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노아의 모습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풍조와 세상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안전한 겁니다.

 

출애굽기 15:10~13절입니다. “10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12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홍해를 건넌 후 모세의 찬송입니다. 이때 홍해 물이 삼켜버렸는데 땅이 그들을 삼켰다고 합니다. 물이든 땅이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추격하던 애굽 군대를 물이 삼켜버린 것을 땅이 삼켜버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약의 교회도 땅과 바다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계심을 말씀합니다.

 

지난주에 본 계시록 12:12절 말씀을 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하늘에서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자들은 즐거워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십자가로 단번에 하늘에 앉혀졌기에 그들을 하늘에서 참소할 자가 없기에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 마귀가 쫓겨난 땅과 바다라는 이 세상은 화가 있습니다. 이 세상이 요란한 이유는 그 마귀로 인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묵시적으로 십자가에서 하늘에 앉혀진 자들입니다(2:6). 물론 역사 속에서는 아직도 이 땅에 발을 딛고 살기에 핍박이 있고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하늘에 속한 자들이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의 성도들이 간 길이 이 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다가 옥에 갇힌 바울이 기뻐하라고 합니다. 옥에 갇힌 사람이 옥에 갇히지 않은 자들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이 오고 환난이 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증거라는 겁니다. 그러나 땅에 사는 동안 환난과 핍박은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묵시적으로 이미 십자가로 완료된 사실이 믿어진다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겁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용이 여자를 물로 삼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분노하여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서 있더라고 합니다.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만 이 용이 바다의 짐승과 땅의 짐승으로 여자의 남은 자손들을 핍박하려고 합니다.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무엇으로 싸우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싸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부족하다고 자꾸만 다른 것을 갖다 붙여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용의 하수인들입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자들이 많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분의 문자가 왔습니다. 부산의 서부교회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도 부산에서 오래 살았기에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자세히 몰랐는데 질문을 받고 설교도 한편 들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는 겁니다. 대충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만 그런 말을 하고서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열심을 끌어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자 보낸 분의 표현은 그런 구원을 건설구원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가면 율법적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기도 그렇게 살아보았지만, 말씀 알고 지킨다는 교만만 늘었지, 진심으로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자신을 보았다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3:21~24절을 봅니다.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 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겁니다. 이 말씀을 방금 읽은 본문이 증거 합니다. 성경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약속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하는 말은 율법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겁니다.

 

로마서 5: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1)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2)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이 사랑의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브리서 11:13~16절입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구약의 성도들이 광야교회였습니다. 이들이 온전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이 되어야 하기에 신약의 성도들까지 다 구원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2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구약의 허다한 증인들이 광야교회를 지납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한때 두 때 반 때를 지나듯이 신약의 성도들도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광야교회를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게 됩니다(12:14). 구약의 성도는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은 겁니다. 신약의 성도들도 묵시적으로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기에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