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4:6~13 일곱째 나팔(9) 2021. 5. 16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을 볼 때 어렵게 여겨지는 이유는 구약을 잘 모르기에 어렵게 여겨집니다. 구약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구약의 성취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을 알아도 어렵게 여겨지는 이유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내용이 서로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일곱째 나팔의 144천이 일곱 인에도 있습니다(7:4).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이 무너지는 내용이 일곱 대접의 재앙인 18장에 또 나옵니다. 같은 내용이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에 함께 나오는 이유는 십자가에서 인과 나팔과 대접이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본문 6~7절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또 다른 천사가 세 번 나옵니다. 또 다른 천사란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을 쏟는 일을 하는 천사와 다른 천사라는 말입니다. 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면서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서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습니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영원한 복음에 관하여 봅니다.

 

복음은 이미 구약에도 전하여 졌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였을 때 뱀의 후손이 여인의 후손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며, 여인의 후손은 뱀의 후손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원시(元始) 복음이라고 합니다(3:15). 그 복음을 설명하는 내용이 무화과 잎으로 가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겁니다(3:21).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될 일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일을 복음을 전하셨다고 합니다(3:8). 이 복음이 영원한 이유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딤후1:9, 1:2) 창세 전에(1:3)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언약하신 내용이기에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 영원한 복음을 이 역사 속에서 완성하신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영원한 복음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간에 이 영원한 복음으로 구원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지난주에 본 144천은 구약의 성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였다고 합니다. 죽임당한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어야 구원을 받기에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있는 겁니다. 이들이 속량을 받아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십자가의 완성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린 양의 인도를 받아온 자들은 그 피로 흰옷을 입히시고 하늘에 앉히신 겁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복음은 구약을 완성하고 신약의 성도들도 십자가의 피로 구원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영원한 복음을 누구에게 전하는 겁니까?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미 구약의 성도들은 영원한 복음, 곧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신약의 성도들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그 영원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28:19~20). 이 일을 사람이 할 수 없기에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1:8).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영원한 복음을 증거 합니다.

 

본문 7절도 다시 봅니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심판의 시간은 먼저 구약에서 심판의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오히려 선지자들은 그날이 심판이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2;12,13:6,9.30:3.1:15,2:1,11,3:14.5:18,20.1:7.14:1). 그 심판의 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구원을 얻은 구약의 성도들은 창조주이신 보좌에 계신 이와 구속 주이신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께 찬송함이 당연합니다(5:13).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심판입니다(6:16).

 

본문 8절입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의 뒤를 따라 말합니다. 무너졌다고 하는 말을 두 번이나 하면서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큰 성 바벨론을 의인화합니다. 모든 나라를 그의 음행으로 진노의 포도를 먹이던 자라고 합니다. 모든 나라를 음행하게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항상 구약을 먼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남 유다를 멸망시킨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이 바벨론이 무너진다고 선지자들이 예언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은 계시록 18장을 볼 때 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사야만 봅니다.

 

이사야 21:9~10절입니다. “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바벨론이 역사적으로 무너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말은 로마를 바벨론으로 상징한다고 봅니다. 물론 로마제국의 속성이 바벨론의 속성과 같기에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자를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군왕과 그 배후인 사탄의 권세까지 십자가로 깨어진 겁니다.

 

이사야 14:9~15절입니다. “9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11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졌음이여 네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에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12 너 아침의 아들 1)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이 내용은 바벨론 왕의 멸망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바벨론 왕의 속성이 사탄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멸망은 곧 사탄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6:12~17절입니다.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여섯째 인의 내용입니다. 일곱째 인에는 일곱 나팔이 들어있기에 인 재앙의 마지막은 여섯째 인이 됩니다. 여섯째 인을 떼니 온 세상이 무너지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당연히 바벨론의 무너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배후세력인 용, 옛 뱀, 마귀, 사탄, 바다짐승, 땅의 짐승, 666으로 말하는 모든 하나님의 대적들이 심판을 받는 겁니다. 당연히 그의 지배를 받는 자들도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섯째 인의 심판(6)과 일곱째 나팔의 심판(14)과 일곱째 대접의 심판(17)이 다 바벨론의 멸망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이 온 세상으로 음행하게 만듭니다. 그 음행의 술에 취하면 눈에 보이는 세상의 정치, 경제, 종교의 영광만 추구하게 됩니다.

 

본문 9~11절입니다. 봉독지금까지의 말씀이 이해되셨다면, 이 본문은 읽기만 하여도 됩니다. 두 번째 또 다른 천사가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이제 또 다른 세 번째 천사가 무너진 바벨론과 함께 심판을 받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서 손에 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 내용은 앞에서 666을 통하여 본 내용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불신자들이 먼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는 가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데 그 표현을 진노의 포도주를 마신다고 합니다. 이들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갑니다. 이 일은 이미 십자가로 심판을 받은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구약에서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은 자들이 가인의 모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좀 더 부연하면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위와 같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성을 사른다고 하는데도 농담으로 여긴 자들입니다. 노아 방주에 타지 않고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만 인생의 목적으로 산 자들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짐승에게 경배하고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아가려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그 십자가로 인하여 심판을 받아 세세토록 고난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7:26~30절입니다.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여기서 인자의 때와 인자가 나타나는 날이 언제입니까?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의 날을 성취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자의 날은 곧 십자가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구약의 성도가 구원을 받고 불신자가 심판을 받는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이 원리대로 십자가 이후부터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 영원한 복음이 선포되는 겁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도 불과 유황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21:8).

 

그러므로 그 짐승의 표를 받아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만 사랑하며 살면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쉼을 얻지 못하고 삽니다. 시기와 경쟁과 자존심 싸움한다고 지금도 밤낮 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지난주에 두 분과 교제하였습니다. 한 분은 열심히 새벽 제단을 쌓고 성전에 충성하였습니다. 그런 용어가 아직 입에 익어있습니다. 또 한 분은 처음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의 공통점은 지금 환경이 어려워도 마음의 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십자라고 이루신 영원한 복음을 들었다면 지금부터 쉼을 맛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봉독성도들의 인내란 먼저는 구약의 성도들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은 사람들을 죄 아래 가두어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으로 죄를 알게 하여 속죄의 제사를 합니다. 그 속죄의 제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계명을 따라가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의 손가락으로 모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 합니다(1:29).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간에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도 자기를 볼 것을 기다리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하시고(8:56) 다윗도 자기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였다고 합니다(22:43).

 

본문 13절입니다. 제가 장례식에서 자주 전하는 말씀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후란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이후입니다.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구약의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됩니다. 이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쉼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11절에서 짐승의 표를 받아 밤낮 쉼이 없는 자들과 대비하여 쉼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행한 일이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의 계명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이 다 오래 기다리다 죽었는데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되는 일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나 같은 죽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복된 죽음이고 한 사람은 저주의 죽음입니다. 복된 죽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가 용서받은 자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는 용서를 받지 못하기에 그 죄가 영원한 겁니다. 지금 세상에 지옥 같은 이유는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 죄가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았기에 더는 차별이 없습니다. 시기와 경쟁이 없습니다. 미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나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에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은 복 있는 죽음입니다. 이 복이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