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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2015. 1. 4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같은 본문의 말씀으로 지난주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 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빛이시라는 말씀은 이 세상이 온통 어두움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어두움의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알아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어두움을 사랑하여 그 어두움 속에 계속 있기를 원하여 그 빛을 꺼 버린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참 빛을 싫어하고 그 빛을 제거하여 버린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가리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선악과 이후의 모든 인간이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옛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은 피조물인 주제에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며 살아가는 가짜 신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로 태어난 인간은 자기를 중심으로 선과 악, 빛과 어두움, 아름다움과 추함, 유리함과 불리함을 판단하고 저울질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 자체가 어두움이지만 어두임임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세상에 참 빛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세상을 어두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상대적인 선이나 상대적인 빛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선이나 빛이라는 자들을 향하여 저주를 퍼부으신 것입니다. 세상의 선과 빛이라는 자들에 의하여 악과 어두움으로 규정된 죄인과 세리와 창기들이 천국에 먼저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전자는 회개하지 않았지만 후자는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회개란 자신이 어두움인 줄 알고 참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참 빛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영을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심으로 믿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영이 임한 자들을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세상의 빛으로 만드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 되도록 만드신 것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먼저 자기 자신이 어두움인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죄와 비참함이 어떤지를 알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세상도 다 어두움에 속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세상을 보게 되며 그리스도가 가신 길로 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산 위의 동네가 숨겨지지 못한다고 합니다. 빛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는 것은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비춰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빛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선 우리 안을 비추게 됩니다. 우리 안을 비추게 되면 자신이 어두움임이 드러나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자신의 어떤 선행이나 의로움으로도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가 없음을 알게 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착한 행실입니다. 선악과 따 먹은 우리가 독립적인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 없습니다. 그 자체가 악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빛이시며 의가되심을 믿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누가복음 11:33~36절입니다.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의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빛이 마음에 비취는 것을 말씀하기 위하여 우리의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의 눈이 온전하면 온 몸이 밝은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두운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눈에 대한 말씀은 그 다음의 말씀을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네 속에 빛이 어둡지 않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 마음을 보는 눈과 우리 마음을 비추는 빛을 말합니다. 우리는 겉 사람을 잘 꾸밉니다.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은 어떻습니까? 어둡습니까? 밝습니까? 예수님께서 빛이신데 그 빛을 자기 백성들에게 비추어주시면 우리의 속이 보입니다. 이것은 어떤 신비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영이며 빛이십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비추어지면 자신이 얼마나 어두움인줄 알게 됩니다. 

이사야 6장을 보시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뵙게 됩니다.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은혜로 강하여 졌는데 그 은혜를 모르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분향하려다가 문둥병이 난 왕입니다. 이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나서 자기 입술을 가리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신이 마치 문둥병자와 같이 부정한 자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잡힌 현장에서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선지자나 제자들이 하나님의 빛 앞에서 자신이 어두움으로 드러나기에 죽어 마땅한 죄인 인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어떻게 하나님의 빛을 자기 백성에게 비추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우리가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수술을 받는 것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속을 다 비추어보는 기계가 나왔지만 그러나 칼을 들고 속을 열어보아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검보다 더 예리하여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벌거벗은 듯이 드러냅니다. 이렇게 벌거벗겨 내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대 제사장에게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4~16절을 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의 근원적인 죄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인류의 빛이라는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없이 우리들끼리 잘 해보자는 반역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는 그 말씀 앞에 자신이 벌거벗겨 짐으로 예수님께 피하여 가는 것이 이 세상의 착한 행실이며 이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라는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는데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는 것입니까?

작년에 고신 측 진해노회 교사 세미나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다음주 3일 동안 중고등부 수련회 인도를 요청하였습니다. 주제는 ‘교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교회란 하나님의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산 백성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그 아들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교회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대단한 사업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그 피의 공로를 알고 그 피 안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과연 이런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까? 오히려 자신을 치장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인간이 가장 먼저 한 일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피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짓이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가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를 지은 자의 모습입니다. 자기의 행위로 자기의 의를 삼겠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행위로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리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세상의 영광으로 자기를 가리려고 합니다. 종교인들은 종교적인 선행과 업적으로 자기를 가리려고 합니다. 복음을 안다는 자들은 복음을 아는 것으로 자기를 치장하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썩어질 것들이며 어두움에 속한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이 바로 어두움에 속하여 어두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가치를 따로 장만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들이 다 어두움에 속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21절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한국교회가 가장 많이 사랑하고 외우는 말씀이 요한복음 3:16절일 것입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17절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온갖 인본주의가 다 나옵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8절은 잘 보지 않습니다. 믿지 않은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심판 곧 정죄가 무엇인가 하면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기에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어두움을 사랑했다는 것은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도 어두움의 일입니다만 이 말씀은 지근 유대인의 율법 선생인 니고데모와 말씀하신 후에 결론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의 율법 선생이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의를 추구하였는지 예수님께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정할 정도의 최고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이러한 의로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가 최고의 경지라고 하는 자들이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악한 행위가 인간들의 자기 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빛으로 나아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어두움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이 빛으로 나아올수록 어두움임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이라고 하니 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한 것처럼 여깁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한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바로 어두움이 빛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어두움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은 어두움이 더욱 어두움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더럽고 추한 것을 감추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누가 빛으로 스스로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한 일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새 번역으로 21절을 봅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어두움이 빛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두움은 어두움을 사랑하여 빛을 피하려고 합니다. 억지로 빛이 들어오면 그 빛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두움이 어떻게 빛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으로 가면 갈수록 나의 어두움이 드러나는데 이 일을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8~14절입니다.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전에 에베소서에서 본 말씀을 다시 부분 인용합니다. 

성경을 알레고리로 풀지 않으려면 구약의 성경을 신약이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복음서도 사도들의 해석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사로이 성경을 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설교를 통하여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만 요한복음 3장의 말씀과 연결하여 다시 보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빛이 우리 안에 들어온 자들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무엇으로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단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빛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2~14절입니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흑암의 권세아래 태어났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나든지 아니면 정상으로 태어나든지 간에 우리는 다 흑암이라는 권세 아래 태어났습니다. 이런 자들이 스스로 빛을 찾아 나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빛이 오면 어두움으로 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빛 가운데 성도의 기업을 얻는 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고린도후서 4:3~6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ㄱ)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창1:3)” 

창세기 1:3절에서 보신 것처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제대로 빛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빛이 되었습니다. 이 빛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됩니까?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성도를 세상이 볼 때에 어두움으로 보이겠지만 오히려 성도가 세상을 온통 어두움으로 보고 사는 것이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1~12절을 봅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체의 일입니다. 이런 육체의 일들을 은밀히 행하는데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입니다. 육체의 일은 열매라고 하지 않고 일이라고 하지만 성령의 일은 열매라고 합니다. 육체의 일은 그 열매가 사망에 이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일이 아니라 열매라고 하는 것은 그 일하심이 주님께서 하셨기에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이 성령의 열매로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육체로 일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입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은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을 어두움의 일이라고 에베소서에서 말씀합니다. 육체의 일들은 다 은밀히 행하는 것들입니다. 음행하는 일을 드러내고 하지 않습니다. 당 짓는 것도 은밀하게 합니다. 심지어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을 은밀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책망하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5:13절입니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라고 합니다. 어둠의 일들을 책망하면 그 어두움의 일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게 드러나야 빛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둠의 일들을 숨겨두려고 합니다. 숨겨두려고 하는 일들은 다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숨겨진 것들을 말씀으로 책망을 받아 드러나게 되어야 빛이 됩니다. 말씀의 책망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대로 어두움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1:5~10절입니다.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을 우리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빛으로 나아오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기 백성을 빛으로 나아오게 하시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이심을 알게 하시고 그 빛에 가까이 갈수록 자신들이 얼마나 어두움인지를 알게 되는 자들이 바로 빛으로 나아오게 된 자들입니다. 진리 곧 빛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죄인인줄 알고 죄를 자백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범죄 하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말씀 곧 빛이 그 안에 없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세월이 가면 갈수록 괜찮은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로 드러납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으로 보입니다만 본인은 죄인 중의 괴수로 드러나는 것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된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이 교만할 수가 있을까요? 오직 주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끌려온 자들의 고백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가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모든 것이 과분한 은혜임을 압니다. 또한 자신을 치장할 이유가 없기에 주님의 은혜로 임하는 자유와 감사와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로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