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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5:21~22   무엇이 살인인가?    2015. 1. 18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지난주에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셔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심으로 율법의 일점일획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의와 심판에 대한 모든 성취를 담고 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십자가로 다 이루어내셨는지를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부터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떻게 이루어 내시는지를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율법에 대한 태도를 말씀하시면서 살인과 간음과 맹세와 보복과 원수에 대한 내용과 자선과 기도와 금식과 재물에 대한 내용들을 예수님의 권위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듣고 있는 말씀은 이미 율법의 선생이라는 서기관들에 의하여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기관들은 이미 율법의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해석의 권위는 자기들의 스승들의 이름을 따라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명한 학파는 가말리엘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성경에 기록이 없지만 힐렐 학파나 샴마이 학파들이 있습니다. 율법의 선생이라는 자들은 이들의 율법 해석의 권위를 이어받으면서 가르칩니다. 계속하여 올라가면 모세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21절을 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 사람에게 말한 것이란 구약의 율법을 너희가 들었다는 말씀도 되지만 율법 선생이라는 자들로 통하여 율법을 들었다는 말씀도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율법에 있지만(출20:17, 신5:13)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은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고의로 살인한 자에 대한 처벌이 율법에 나옵니다만 이것을 한 문장으로 연결하여 사용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가르침 속에서 편집이 된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살인만 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의 어떤 율법 선생들의 권위를 넘어설 뿐 아니라 심지어 모세가 말한 것도 그 원 뜻을 바르게 드러내십니다. 

오늘은 살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어느 종교든지 다 가르칩니다. 종교만이 아니라 어떤 세상의 법들도 살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세상에서 통용되는 그러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동일하게 기록하였을까요? 이런 식으로 보면 기독교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지면 불교는 살생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불교의 종파인지 한 종파는 완전히 발가벗고 삽니다. 길을 가다가 물웅덩이가 있으면 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습니다. 땅을 맨발로 조심스럽게 걸어가지만 물속에는 여러 가지 수서 곤충들이 있으니 건너가다 살생할까 싶어서 가만히 있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나무판자를 놓아주면 그제야 그 위로 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삶으로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면서 먹고 삽니다. 보통 사람들이 행할 수 없는 수행을 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존경합니다. 이런 것을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으로 무엇이 살인인지를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살인이라는 말은 사람을 죽인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내가 남을 죽이는 것도 포함되지만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이것을 흔히 자살이라고 하지만 작년 12월 7일에 열왕기상 2장의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라는 말씀에서 자살에 대한 말씀도 드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이미 허물과 죄로 태어났기에 죽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죽음이란 내가 남을 죽이지 않더라도 자신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담 이후에 모든 인생이 가는 길입니다. 이런 죽음은 이미 창세기 2장에서부터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 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간이 사망아래 거하게 되었습니다. 

선과악의 결정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거나 보시기에 좋지 않다는 결정을 하나님만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들은 전부 자기를 중심으로 선과 악을 결정하면서 살아갑니다. 나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아담의 허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20세 된 청년이 20년 전에 어디에 있었습니다. 성경적 표현은 아버지의 허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가 50세라면 50년 전에는 그 아버지도 20세 된 청년의 할아버지 허리에 속하였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죽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전부 아담의 허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 아담을 시간 속에서 고무줄처럼 늘여놓은 것입니다. 죽 당긴 고무줄을 놓아버리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다 아담의 허리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이것을 아담 안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21~22절입니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지금까지 드린 말씀의 결론이 고린도전서의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죽인 자들이며 또한 이웃을 살해한 자들입니다. 그 죽음의 원인은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은 것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에 넘어간 그 아담 안에 우리가 다 들어 있었다는 것은 바로 사망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망 안에 있는 자들이 살인하는 것만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형제에 대하여 분노하고 욕한 것으로도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권위입니다. 율법을 주신 분의 권위로 말씀하십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히브리인들의 욕인 ‘라가’라고 하는 것은 우리말로 바보 멍텅구리라는 정도의 욕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 지옥 불에 들어가야 마땅합니다. 살인 정도가 아니라 형제에 대하여 분노하고 욕한 것으로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형제에게 노하여 살인이 일어난 사건이 언제 일어납니까? 

창세기 4:1~7절입니다.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형제에게 노한 것이 살인이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신 것입니까?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기 때문이고 아벨은 양과 그 기름으로 드렸기 때문이라고 가인과 아벨의 조건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도 땅의 소산입니다. 땅에서 나오는 풀을 먹고 자라는 짐승입니다. 그리고 땅의 소산인 곡식도 율법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됩니다. 이 사건을 히브리서는 아벨이 믿음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믿음이란 원인이 나에게 없다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이미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를 받은 땅에서 나온 것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리가 없습니다. 저주의 땅에서 저주 받은 자들이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받아주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용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분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나의 제물을 받아주지 않고 아벨의 것만 받아주는가에 대한 분노입니다. 분노하여 안색이 변한 가인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고 합니다. 지금 가인의 악이 무엇입니까? 왜 나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우 아벨의 제사는 받느냐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의 인생들의 모습니다. 나의 정성과 나의 예물을 받지 않음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 선악의 주체가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죄가 그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죄가 엎드려있다고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셨지만 그 분노는 결국 아벨을 돌로 쳐 죽여 버렸습니다. 이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통하여 형제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이 왜 살인과 같은 심판을 받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에 대하여 욕을 하여도 공회에 잡혀가고 미련하다고 하는 것이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백 번 수천 번 더 지옥 불에 들어가도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도대체 형제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이 왜 살인과 같은 심판을 받습니까?  

요한복음 15:13절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해석할 때 그 형제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형제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나의 생존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도 죄인이라서 우리가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을 결코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목숨을 버리셔야만 생명을 얻는 것이며 이것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형제를 세상이 어떻게 대접하였습니까? 

요한복음 8:31~36절입니다.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내제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고 하느냐고 합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라서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지만 아들은 집에 거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자유롭게 하여야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자유를 주어야만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혈통이나 육정으로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37~44절의 말씀을 봅니다.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자들이지만 예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없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에게 난 증거라고 합니다. 마귀의 욕심이 곧 하나님 되려고 한 것이며 이것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살인이 어떤 것입니까? 진리가 그 안에 없기에 거짓을 말할 때 마다 자기의 것으로 말하는 것 곧 거짓말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입니다. 이 거짓말이 단순히 세상의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의 유혹이 거짓말이며 이것이 곧 살인으로 연결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자들은 자신의 행위의 가치를 믿지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처음부터 살인한 자가 아비가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이란 진리를 말하지 못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입니다. 

45~59절입니다.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여러분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유대인들이라고 생각하고 이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지금 돌에 맞아 죽을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을 들어 죽이려고 하였고 결국 죽였습니다. 그 이유는 진리를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예수님에 대하여 거짓말에 속은 자들이 분노하여 예수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마치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가인의 이름과 똑 같이 사용된 단어가 놋 창입니다(삼하 21:16). 자아라는 말도 손에 창 들고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선악과 따 먹은 이후의 인간들은 자신이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참 진리의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은 이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에 대하여 분노하고 형제에 대하여 미워한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살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3:11~16절입니다. “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형제에 대하여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의 결론입니다. 형제에 대하여 노하고 분노하고 미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받아주지 않는데 대한 분노입니다. 몇 주 전에 일천번제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이 일천 번제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정성이나 제물이나 기도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면 그렇게 실천한 사람과 그렇게 하면 응답을 받는다고 한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온갖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 바친 것을 하나님께서 하나도 받아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에 여러분은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에 분노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지킨다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가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에 의하여 살해당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지 않고 자기의 행위를 믿는 것이 살인입니다. 이러한 살인은 자신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죽이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믿고 전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1~4절입니다.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한 남편인 그리스도를 향하는 마음을 빼앗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른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은 뱀이 하와를 미혹하듯이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미혹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이 하려는 시도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신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살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이신데 이 생명을 거부하는 것이 살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믿고 전하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직 생명이신 그 분에게서 나올 때에 우리가 살인한 자 임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를 미워하여 살해하였는데 그분은 나를 사랑하여 용서 하셨습니다. 이 고백이 나오는 것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