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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33~37    맹세하지 말라    2015. 2. 15

33 ㄱ)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2)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오늘 말씀은 맹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맹세라는 단어를 한글로 검색하여 보면 신구약에서 301회가 나옵니다. 그 맹세의 용례를 살펴보면 사람이 맹세하는 것이 있고 하나님이 맹세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맹세와 비슷한 말로 서원이나 서약이나 언약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이러한 말들 역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맹세나 서원을 할 때는 언제 하게 됩니까?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 맹세를 하면서 이루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말로 약속을 하는데 미심쩍어 보이면 맹세를 시킵니다. 그러므로 맹세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자신이 반드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에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맹세 자체가 이미 탐심을 담고 있는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맹세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도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맹세하시는 일이 욕심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선이시기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일이 다 선입니다. 선과 악을 결정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에 그분의 모든 결정은 절대적으로 다 선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맹세와 하나님의 맹세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성경을 통하여 보면 인간의 맹세가 얼마나 허약하며 악하게 드러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맹세는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는 말을 들었으나 하는 이 내용들을 먼저 구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레위기 19:12절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민수기 30:2절입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구약의 이러한 맹세에 대한 내용은 맹세를 전혀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맹세나 서원을 하였다면 그것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말고 반드시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이렇게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구약의 이러한 맹세와 서원들이 인간이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맹세와 서원이라는 것들은 자신의 위기에서 구원하여 주면 하나님께서 무언가 드리겠다는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8장을 보시면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뒤에 도망가다가 루스에 이르러 누워 잡니다. 그런데 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땅과 씨에 대한 약속을 하시면서 이 약속을 이루기까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떠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야곱이 잠을 깨고 하나님께 서원을 하는데 자신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면 이곳에 하나님의 전을 지을 것이며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맹세는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아멘하고 가면 될 텐데 야곱은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서원을 지켰다는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서원이나 맹세라는 것은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며 자신의 소원을 얻어 내고자 신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사사기 11장의 입다와 사무엘상 14장의 사울의 경우에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을 붙여주신다고 하시면 아멘하고 가면 될 텐데 그 약속에 대한 아멘이 안 됩니다. 이 ‘아멘’이 ‘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이기게 해 주시면 자신이 돌아올 때에 자기를 제일먼저 환영하는 자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가장 먼저 환영한 자가 자신의 무남독녀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도 요나단이 여호와의 전쟁을 알고 믿음으로 적을 공격하여 적진이 흔들릴 때에 사울이 그냥 공격하면 되는데 잘못된 맹세를 합니다. 그것은 해가 지기 전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도 여호와의 전쟁에 자기 금식행위라는 것을 보태려고 한 것입니다. 인간의 맹세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본문 33~36절을 봅니다. “봉독”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른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구약의 내용들은 맹세를 하면 반드시 지키라는 율법과 자신들의 서원과 맹세를 통하여 어떤 모습이 나오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맹세하는 속셈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무당 같은 자들에게 속아서 삶이 어려워지면 서원하였는데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면서 그 서원을 지키겠다고 일 잘하고 있는 큰 아들을 신학교 보내려고 저는 찾아온 권사와 장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어떤 맹세를 하고 있습니까?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과 자신의 머리로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맹세를 하는 대상이 하늘과 땅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과 땅의 개념은 아닙니다. 우리도 어떤 맹세를 할 때에 하늘과 땅을 거론하면서 맹세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늘과 땅이란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성읍입니다.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이란 다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히 인간이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을 거론 하면서 맹세를 한다는 것은 자기 주제파악이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 머리를 두고 맹세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머리가 우리의 것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 희거나 검게 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언가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행위와 우리보다 크고 영원하다는 것들을 아무리 불러가면서 맹세를 하여도 이미 그것은 헛맹세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세를 하지도 마시고 사람의 맹세를 믿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3:16~22절입니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사람들이 맹세를 할 때는 크고 영원한 것들로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잘못된 맹세에 대하여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더 큰 것보다 더 작은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그것은 24~25절입니다.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그들 속에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여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만한 것들은 맹세를 지키게 하지만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은 맹세를 어겨도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자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맹세하여 지키는지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모든 맹세는 결국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피조물 주제에 어떻게 감히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맹세하고 서원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나오는 맹세와 서원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악에서 나오는 것인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세란 하나님만이 하시고 하나님만이 이루시는 맹세가 참된 맹세입니다. 

창세기 22:16~18절입니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순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이삭을 아낌없이 바쳤기에 복을 받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신 것입니까? 전혀 믿음이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일방적으로 씨와 땅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신 결과가 이삭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을 바치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는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롬4:17). 

창세기 26:2~4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이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가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것을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맹세하신 하나님입니다. 

출애굽기 32:12~14절입니다.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금송아지 사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진멸하려고 하시자 모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그 내용을 말씀드림으로 용서를 받습니다. 

신명기 4:3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광야 40년을 지난 후에 모세가 모압에서 언약을 갱신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배신함으로 몇 번이나 진멸당하여 마땅한 자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들여놓기 직전에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자비하셔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신 이유는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구약에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언약과 그 맹세로 인하여 출애굽하게 되고 광야에서 그렇게 거역하였지만 그 후손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05:7~10절입니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여호와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맹세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언약 곧 여호와 자기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언약의 책이며 하나님의 자기 맹세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모든 맹세와 언약의 완성을 히브리서에서 봅니다. 

히브리서 6:13~20절입니다.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 없기에 하나님의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십니다. 맹세는 자기보다 크고 영원한 것으로 맹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크고 영원한 분이 없기에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십니다. 그리고 맹세는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신 것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을 통하여 다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보여주신 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가는 길에 소망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맹세의 결론이 예수께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18~28절입니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ㄱ)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지금까지의 맹세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 무엇이 구별이 됩니까? 인간의 맹세라는 것은 얼마나 자기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맹세인지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는 맹세라는 것은 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행하는 서약들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세례문답도 못하고 결혼 서약도 못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다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드렸지만 장우식 형제가 제가 왔을 때에 청년인데 세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자기는 세례 문답을 지킬 능력이 없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지켜내실 것을 믿느냐고 물으니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례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맹세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며 그 맹세를 이루는 결론이 히브리서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의 모든 맹세의 완성입니다. 

본문 37절을 봅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2)악으로부터 나느니라” 그러면 우리가 맹세하는 말을 못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고 하라고 합니다. 예할 것은 예, 아니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악한 자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예 할 것과 아니요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예라고 할 것과 아니요 라고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증거 되면 성령이 임한 자는 반드시 예라고 응답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은 하지만 비 진리가 증거 된다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1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오늘 본문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셨지만 사람도 이 일에 협력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말에 저는 예를 할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15~20절을 봅니다.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가기로 한 것이 연기가 되자 여러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의 방문이 연기된 것이 사람의 육체를 따라 예, 예하거나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있겠느냐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헬라어로 나이, 나이  우, 우 입니다. ‘나이’는 예라는 말이고 ‘우’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말이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들로 인하여 고린도에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맹세와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우리가 아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떤 맹세와 서원과 결단과 결심에 가치를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맹세로 이루어내시는데 그 모든 맹세를 이루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맹세를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