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23~25   예수님의 복음 전파     2014. 10. 5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어내신다는 증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선포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미래가 아닌 현재에 실재로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불러내시는데 지난주에 본 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끌려 따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친히 이루고 계심을 보여주시는 계시가 됩니다. 

마태복음 1:1절에서 오늘 본문까지는 예수님의 탄생, 세례 받으심, 성령이 임하심,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물리치심, 제자를 부르신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친히 이루시는 내용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전파 그리고 치유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르치심과 전파는 다르게도 볼 수 있지만 같은 내용으로도 봅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천국복음의 전파는 마태복음 5, 6, 7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치유는 8, 9장에 나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한 단락의 마무리를 하는 9:35절의 내용을 보면 오늘 본문 23절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마태복음 9장까지는 이 요약적인 내용의 확대입니다. 그리고 10장부터 다시 제자들을 부르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23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십니다. 갈릴리에 두루 다시시면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이미 앞에서 본 대로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임을 보았습니다.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서 율법과 선지서와 시편을 읽고 그 읽은 것에 대하여 잠시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유대인 성인 남자로 글을 읽을 수 있으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그 읽은 내용에 대하여 설교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회당에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들판에서도 길에서도 어디서든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전하시는 내용이 가르치심과 전파입니다. 회당에서의 가르침을 봅니다. 

누가복음 4:16~22절입니다.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나사렛의 한 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회당장이 예수님을 주목하여 성경을 읽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성경이 아니라 회당장이 건네준 성경입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 성경이 이사야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 61:1절 이하의 말씀을 읽으시고 그 말씀으로 설교하셨습니다. 이사야 61장의 내용은 주의 성령이 임하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일을 한다는 그 말씀을 읽으시고 이 말씀을 풀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결론은 이 말씀이 오늘 너희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가르침은 은혜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이 말씀을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로운 말씀이라고 반응이 나타났습니다만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반응을 보시고 다시 말씀을 전하십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성경을 읽으시고 그 말씀을 잘 풀어서 가르쳤습니다. 그 가르치심의 결론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예수님 자신이 이루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오늘 응하였다고 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엘리야 시대 때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시돈 땅의 사렙다 과부 한 사람에게만 엘리야가 보냄을 받았다는 말씀과 엘리사 시대 때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나환자가 있었지만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 고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는 자들은 버림을 받고 이방인이 택함을 받았다는 말씀이기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세가 있고 은혜가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이루어 내신다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인간이 단 한구절도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말씀을 이루어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이루어내신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고 여긴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화가 나게 하는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평소에 자신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주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순종하지 않았다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심의 결과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로 결론이 내려집니다. 오늘도 복음은 이런 갈라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47~50절입니다.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지난주에 말씀드리지 못한 내용입니다. 천국을 그물로 물고기 잡는 비유로 말씀합니다. 그물에 걸려오는 것들 중에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버립니다. 천국은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 것은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좋은 것과 못된 것을 어떻게 골라냅니까? 율법을 잘 지킨다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좋은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여김을 받던 세리와 창기들이 좋은 물고기였습니다. 이들이 그물에서 골라 담아진 좋은 물고기들입니다. 왜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담기에 좋은 것들입니다. 이 세상은 세상의 능력자를 좋은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담기는 것을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 이 역설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혈과 육의 능력으로는 어떤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그 영혼을 넘겨주셔야만 됩니다. 

요한복음 14:16~17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또 다른 보혜사 곧 성령이며 진리의 영입니다. 이 진리의 영에 대하여는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다 이 세상의 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이 임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시는데 그렇게 진리의 영이 임하게 되면 비로소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 책망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죄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임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천국은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보다 오늘본문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눈에 큰 글자로 확 들어오는 것은 어떤 말씀입니까? 

23절 뒷부분에 나오는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 말씀이 더욱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병을 고쳐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병을 고치면 전도는 쉽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창원기독교 연합회에서 조용기 목사를 초대하였습니다. 호텔에서 식사 한다면서 초청장이 왔습니다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갔다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 요즈음 전도하기 얼마나 어렵느냐고 하면서 기도 많이 해서 병자 몇 사람만 고치면 전도는 저절로 된다고 하더랍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전도란 사람 모으는 것을 말하지만 성경의 전도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누가 가장 싫어하겠습니까? 교회를 부흥시키고 싶은 목사나 장로가 싫어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 열심히 해서 땅에서 복 받고 천국에서 넓은 아파트 평수 차지하려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다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이 오늘날 너희에게 응하였다고 가르치며 전파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처럼 예수님만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어내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듣기 싫었으면 오늘날도 여전히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것은 왜 고치신 것입니까? 메시아가 하실 일로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병 고침이 목적이 아니라 누가 그리스도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1~12절입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3절에서 우리의 질고(疾苦)를 아시고 4절에서 우리의 질고(疾苦)를 지셨다고 합니다. 질고란 질병과 고통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예수님이 짊어지셨기에 질병과 고통이 사라진다고 하는 사람이 번영신학과 신비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거의 다 질병과 고통을 당하면 무언가 예수님을 잘 못 믿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자들도 다 질병과 고통 속에서 죽어갔으며 지금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모든 질병과 고통을 예수 믿으면 없애 준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따라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런 문자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시켜 되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 성경에서 보는 것을 성경의 도구주의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고난 받는 종에게 질고를 담당시키신 것은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결국은 단지 질병과 고통의 문제가아니라 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영혼을 버리신 것은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질병과 고통은 결국은 죄로 인하여 온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 것이고 죄가 용서를 받으면 질병과 고통이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이 있는 한 질병과 고통을 누구에게나 다 오기 마련입니다. 어떤 인간도 병 없이 영원히 사는 인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병을 고쳐주신 자들도 다시 늙고 병들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를 용서 받았는데 왜 사망이 오느냐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러므로’ 앞에 연결되는 말씀은 질그릇과 보배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질그릇은 죽을 육체입니다. 보배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질그릇에 보배가 담긴 자가 성도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환난이 왜 옵니까? 질병과 고통이 왜 옵니까? 잠시 받는 환난의 가벼운 것들을 통하여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땅에 있는 장막 집이 겉 사람입니다. 이 겉 사람은 무너집니다. 여기에 애통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이 우리의 영원한 처소인데 이 처소가 곧 성령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하늘의 처소를 보증 받았습니다. 이제 부활의 그 날에 영원한 영광의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성도는 탄식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이 겉 사람이라는 장막 집에서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몸의 구속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몸의 구속이란 몸의 부활입니다. 몸의 부활이 있기 위하여 이 죄로 타락한 이 몸은 반드시 해체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해체되고 새로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으로 부활해야하기에 성도는 이 세상에서 탄식하며 살게 됩니다. 물론 성도가 아닌 자도 탄식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탄식은 눈에 보이는 겉 사람의 후패에 대한 탄식일 뿐입니다. 

로마서 8:18~30절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도는 이미 약속 안에서 묵시 안에서 영화롭게 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 속에 살려두신 이유는 우리의 죄의 몸이 완전히 해체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의 구속 몸의 속량을 위하여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몸의 속량이 일어나기 까지 성도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탄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믿음이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임께서 쉬지 않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결과 성도에게 어떤 환난이 닥쳐와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각종 병든 자를 고쳐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이루어내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아무나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자기 백성만 믿게 되는데 이렇게 믿어지는 사람은 지금까지 본 말씀들에 아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이미 완성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신 천국의 복음입니다.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고 그 말씀을 이루실 분도 주님이심을 믿고 사는 자들은 세상을 아주 가볍게 보면서 자신도 가볍게 나그네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와 기쁨을 더욱 맛보아 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