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23~25   치유의 목적     2014. 10. 12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지난주에 이 본문으로 예수님의 복음 전파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백성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것입니다. 지난주에  가르치심과 전파에 대한 말씀을 드리다가 시간이 부족하여 병 고치심에 대하여 간략하게 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는지를 오늘 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신 내용이 마태복음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산상수훈으로 알려져 있는 마태복음 5,6,7장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의 반응을 마태복음 7:28~29절에서 봅니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란 것은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위가 있다고 합니다. 말씀에 압도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말씀과 그 적용을 들은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다 이루어내신다는 말씀에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다음 주부터 볼 산상수훈도 사람이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 이루어내신다고 하면 역시 그렇게 말하는 자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실 뿐만 아니라 그 천국복음을 예수님께서 친히 이루어내신다는 것에 반발하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천국관이 이미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자기들이 간절히 소망하던 것들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이 생각한 천국과 전혀 다른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니 죽이려하였고 결국 죽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약 20여 년 전에 유명했던 퍼시콜레의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란 사람들이 생각한 욕망의 끝을 천국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이라는 것들이 지금도 꾸준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천국과 지옥의 간증들이라는 것들에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천국과 지옥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이루어내신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천국복음이 어떤 것인지 산상수훈에서 자세히 나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병 고침을 통한 천국복음 전파를 보겠습니다. 지난주에 설교 후반부에서 말씀을 일부 드렸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를 지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질병과 고통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교회 다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질병과 고통이 오면 이것은 무언가 예수님을 잘 못 믿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에 사람들은 자기의 질병과 고통을 교회 와서 말도 못하고 쉬쉬하면서 숨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질병과 고통이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들이 죽음에 이르는 당연한 길입니다. 선악과의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아서 선악과를 바라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였습니다. 그 유혹의 내용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이때로부터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인류가 이러한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죄의 결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야 할 인생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스스로 신이 되어서 자기 자신을 살리려고 하는 결과가 죽음에 이르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병 고치심은 병 고치심이 목적이 아니라 죄 사함과 안식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9:1~8절입니다.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그를 메고 온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다는 믿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믿음은 예수님께 가면 병을 고침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믿은 병고쳐주심은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 주변의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아시기에 일부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변의 서기관들이 속으로 신성모독적인 발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지으신 분이시기에 그들의 속마음도 다 아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악한 생각을 하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이 말씀이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지킨다는 서기관들에게 악하게 보였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묻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둘 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 이 사람을 걸어가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시는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인자가 세상에서 죄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이유가 아주 분명합니다.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보다 병 고침에 더 마음이 빼앗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 고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곳에 몰려가고 있습니다. 손기철 장로라는 사람은 그런 병 고침을 집회를 한다고 하니 매주 월요일마다 경기도의 선한목자 교회라는 곳에 무려 3천명이 몰려듭니다. 10월 28~29일 마산 실내체육관에서 집회한다는 광고가 나왔습니다. 이 사람이 집회하는 동영상을 몇 개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면 가장 중증환자를 고쳐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매모호한 병을 고침 받았다는 사람들은 있는데 뇌선마비로 온 몸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뒤틀리고 있는 사람은 기도한번 해주지 않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제보자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황우석씨 사건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그 영화의 장면에 황우석씨를 메이저 언론들이 홍보를 해 줍니다. 생명과학이 앞으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것이라면서 줄기세포 복제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럴 때에 제보자에 의하여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이때 황우석씨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나옵니다. 휠체어에 탄 뇌성마비 환자입니다. 온몸을 비틀며 황우석씨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 환자의 절박함을 우리가 어찌 다 알겠습니까만 손기철 장로의 치유집회 장면이나 황우석씨의 줄기세포 복제 이야기에 환호하는 것은 결국 병을 고치고 싶은 인간들의 욕망을 자극한 것에 불과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 자들도 다 늙고 병들고 그렇게 죽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 것은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았는데도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은 우리의 몸이 죄의 몸이라서 그렇습니다. 몸의 구속이 남아있기에 탄식하며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보이는 겉 사람의 후패함에 대한 탄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을 입기 위한 소망의 탄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연약하여 이런 소망에 대한 인내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과 예수님께서 기도하신다는 것을 로마서 8장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병 고침은 죄 사함을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목적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2:9~14절입니다.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예수님의 병 고치심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은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마태복음 12장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다윗을 경우를 말씀하시면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자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이라도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끌어내는데 사람을 안식일에 치료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하시면서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시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해도 죽이려고 하고 병을 고쳐주셔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병자들을 치료하시는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평소에 율법을 잘 지킨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원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자기들의 의가 있다고 여기기에 자기들의 의와 공로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리와 죄인들과 병자들은 들어올 수 없는 곳으로 여기는 것이 그들의 생각하는 천국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전파하시며 이루어내시는 천국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리와 창기와 병자들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이것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이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여기는 자들이 마귀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배척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10~17절을 봅니다.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예수님의 병 고치심은 죄 사함과 안식을 보여주시는 계시입니다. 이러한 죄 사함과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신 것으로 마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병 고쳐주시는 것이 목적이라면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이러한 십자가도 사람의 죄 사함과 안식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언약 완성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 언약의 완성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신 이후로는 십자가의 복음이 증거 됨으로 죄 사함과 안식을 얻게 됩니다. 물론 사도들에게는 여러 가지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사도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친히 받아 전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표적과 기적들이 사도들에게도 나타난 것은 계시의 완성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사도들로 통하여 계시가 완성이 되고 나서는 그런 표적과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세상의 온갖 기적들이 있어도 그것이 계시는 아닙니다. 이 구분을 분명하게 하여야 합니다. 만약 오늘도 사도들에게 나타난 기적과 표적들을 행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이 말씀대로 해보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6:14~18절입니다.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임하고 이런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적이 오늘날도 그대로 일어날까요? 사도들에게는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바울이 로마로 가는 중에 배가 파선하여 멜리데 섬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뱀에 물렸습니다. 원주민들이 이 사람은 바다에서 살아났지만 신의 공의가 나타나서 곧 죽는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몸이 붓지도 않고 갑자기 죽지도 않자 신이라고 합니다. 사도들에게 이런 표적이 나타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전하는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후에는 이러한 표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오순절 운동비판’ 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부분을 아주 잘 연구해 놓은 책입니다. 소책자이지만 성경적 논증과 교회사의 논증들을 들어서 계시적 은사와 이적이 사도 이후에는 분명히 끊어 졌다고 증언합니다. 특히 사도 이후를 속사도 시대와 교부시대라고 합니다. 이들은 사도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지만 사도들과 자신들의 차이를 하늘과 땅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사도시대 이후에는 성경에서 사도들이 표적과 기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4세기부터 조금씩 이적들이 나오고 그 이후로 교회사에서 점점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삼으면서 로마가 지배하는 나라들의 온갖 이방 종교들이 기독교라는 옷을 입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세시대에 온갖 사이비한 기적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개혁하면서 성경만이 계시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온갖 엉터리 계시들이 난무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추구하는 표적과 이적들이 어떤 것인지 성경은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탄이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이런 자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에 이런 것으로 빠집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심판을 받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따라가는 것은 미혹에 빠져 심판을 받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드리면 사탄도 능력을 행하는데 하나님은 더 큰 능력을 행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마태복음12:38~40절입니다.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입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예수님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잇을 것이라는 것 곧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시는 것을 표적이라고 합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저주 받아 죽은 실패의 죽음이기에 거리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구원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를 사도들이 복음의 내용으로 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병을 고치신 것은 십자가로 죄 사함과 안식을 주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6:6~14절입니다.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에 종노릇하는 옛 사람이 죽고 이제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병 고침은 예수님께서 죄 사함과 안식을 주시는 것을 계시하신 내용입니다. 그것이 병 고침으로 완성하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단지 육신의 병을 고침 받은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의 짐을 지고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병을 고쳐주고 기적을 행함으로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병이나 고침 받고 세상이 말하는 표적과 기적과 능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사탄의 미혹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백성들만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를 구원의 능력으로 믿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