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4  온유한 자의 복     2014. 11. 9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알고 있는 국어사전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온유(溫柔)란 따뜻할 온자에 부드러울 유자입니다.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기 땅을 확보하며 더 넓은 땅을 가지고 살수가 있습니까? 땅 한 평을 더 차지하기 위하여 소송과 살인까지 일어나는 세상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어떻게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한국전쟁 통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월남하였습니다. 이들이 남쪽으로 와서 산비탈 같은 곳에 움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때에 자기가 움막 친 곳을 확보해 놓기 위하여 말뚝을 박고 새끼줄로 표시를 해놓습니다. 이 표시를 누가 몰래 옮기면 살인이 날 정도로 싸움이 일어나는 장면을 이때를 배경으로 쓴 소설에서 읽어보았습니다. 자기 땅도 아닌 남의 땅에 자기 몸 하나 눕힐 곳 마련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살벌한 시대를 지낸 우리나라 사람들은 땅과 자기 집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억척스러움, 그 악다구니로 살아왔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이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으로 찾아보겠습니다. 

5절의 ‘온유’라는 단어는 구약의 이사야 61:1절의 ‘가난한’ 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사야 61:1절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1)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한 말씀을 볼 때 이 본문을 보았습니다. ‘가난한’에 1)이라는 각주를 보면 겸비한 자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 겸비한 자, 온유한 자란 우리가 말하는 국어사전적인 뜻이 아니라 자신은 의지할만한 아무 것도 없어서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자를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온유한 자가 누구인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민수기 12:1~3절입니다.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가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세를 향하여 비방한 사람이 미리암과 아론입니다. 비방한 이유는 모세의 아내가 죽고 나자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비방하였습니다. 왜 비방하였을 까요? 이스라엘 여인이 수도 없이 많은데 왜 하필 흑인인 구스여인이냐는 것입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회막으로 나오라고 하시고서 아론과 미리암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어떤 자인데 감히 너희가 비방하느냐고 하십니다. 모세는 다른 선지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집에 충성한 자이며 그와는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않았으며 여호와의 형상을 보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모세를 비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하시고 떠나시자 미리암이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이때 아론이 자신들이 어리석어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용서를 구합니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7일 동안 진영 밖에 있다가 들어오게 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모세의 온유함을 보아야 합니다. 

모세의 온유함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로서의 온유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그 어떤 선지자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여호와께서 이들을 다 진멸하시고 새로운 민족을 이끌어 주시겠다고 하실 때에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엎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을 하여 모세를 죽이려고 하여도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모세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온유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방여인이며 흑인인 자를 아내로 취하는 것도 하나님의 구속이 모세 율법 하에서도 유대인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모세는 안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혈통을 추구하는 미리암과 아론이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온유함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을 할 때에 오직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한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하는 모세조차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런지 그 내용을 보겠습니다. 

신명기 3:23~28절입니다.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신명기 32:48~52절입니다. “48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 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52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신명기 34:1~6절입니다.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세 곳의 말씀을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기를 그렇게 소원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간구합니다. 그 땅에 들어가서 보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는 못 들어간다고 하시면서 그만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로 인하여 내가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20장에 나옵니다.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원망 할 때에 모세는 역시 회막앞에 엎드립니다. 그 때에 반석을 명하여 물이 나오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반석을 명하지 않고 지팡이로 반석을 치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라고 하였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왔지만 모세와 아론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봅니다. 

민수기 20:12~13절입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1)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았다는 것은 반석을 명하라고 하였는데 반석을 두 번이나 친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17:1~7절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이 두 사건이 같은 사건을 두 번 기록한 것인지 다른 사건인지 의견들이 분분합니다만 저는 두 사건으로 봅니다. 우선 장소가 출애굽기는 르비딤이고 신명기는 가데스입니다. 그런데 두 곳 다 다투었다고 므리바라고 이름으로 부릅니다. 출애굽기는 반석을 치라고 하고 신명기는 반석을 명하라고 합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0:4절에서 이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원망에 화가 나서 반석에 명하여야 할 것을 반석을 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완전한 희생의 의미를 희석시킨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여 달라고 그렇게 간구하여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보여주시기는 하셨지만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는 모세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씨와 땅입니다. 그 씨는 자신의 혈육으로 낳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약속으로 낳은 이삭이 씨가 됩니다. 그 이삭과 야곱을 이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간 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약속의 땅에 들여놓는 일을 모세를 통하여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어느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는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여 내실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계시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시편에서 보겠습니다. 

시편 37:7~11절입니다. “7  2)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7절의 각주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시편 37:11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온유한 자의 복을 말씀하셨는데 이 시편 37편과 시편 73편과 하박국서의 공통된 고민이 악인의 형통과 의인에 고난에 대한 문제입니다. 악인이 온통 세상의 땅을 다 차지하고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온유한 자는 이런 세상에 늘 빼앗기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고민에 대한 답변이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는 것들은 순식간에 멸망할 것들이라고 하시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잠잠히 기다리는 자에게 땅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고 기다리는 자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자기의 선행이나 자신의 율법지킴이나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는 이 말씀도 결국 누가 이루어내어야 하는 말씀입니까? 

마태복음 11:28~30절입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합니다. 이 당시의 짐이 무슨 집입니까? 율법의 짐입니다.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듯이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참된 안식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은 예수님께서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합니다. 모세는 가장 온유한 자라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신 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그 온유함의 완성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하시면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신 온유함, 전적으로 아버지의만 의지하고 아버지의 뜻을 다 순종하심으로 이루어내신 이 온유함으로 그 나라를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아들의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7:20~21절입니다.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너희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의 영토와 주권과 백성의 개념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오면 이 땅에 세워질 나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요18:36).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1:12~14절입니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바울사도가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고 기도한 내용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것에 대하여 기도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영을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신다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 아버지께서 우리를 흑암에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을 받는다는 말은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땅의 개념이 아니라 그 아들 안으로 그 약속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이 바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다는 그 복입니다. 

고린도전서 15:24절입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라고 하시는 이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자기 백성들을 나라라고 합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해서 이 땅이 부동산 개념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온유하심으로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차지한 그 땅이 바로 자기 백성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백성들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무엇입니까?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온유하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어내신 결과가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 것이 바로 성도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흑암의 권세에서 불러내어 그 빛의 나라 그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신 그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8~9절입니다.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24장로가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 새 노래의 내용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을 노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내신 분이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입니다. 그 피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함이 죽임 당하는 어린 양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모든 성경이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인지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 내시는지 마태복음 5:5절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씨와 땅이란 전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씨 이며 그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를 받는 것은 모세와 같이 온 지면에 가장 온유한 자라도 그 땅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나라인 예수님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시는 분은 유일하게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신 예수 그리스도 곧 그 온유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기업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된 자들에게는 예수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며 기업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1:1~4절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1)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새 예루살렘이란 황금보석 꾸민 집과 넓은 평수의 맨션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지상의 땅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온유한 자가 받을 복입니다. 이 복을 그리스도 인하여 선물로 받은 자들은 이 역사 속에서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도록 만드셔서 결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온유한 자들로 만들어 내십니다. 이렇게 온유한 자들이 받는 그 땅과 기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