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12   의를 위한 핍박    2014. 12. 7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지난주에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노력하여도 가족이나 이웃과도 화평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화평하게 하시는 화목의 자리가 되는 것이며 이는 또한 이웃과도 화해의 자리가 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내가 하나님과 화목이 되었는데 이제 가족이나 이웃과 화목해야지 하고서 한 주간을 사셨지요? 그런데 정말 화평이 나왔습니까? 아니면 다른 때 보다 더 불화가 나왔습니까? 

특히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할 때는 더 불화가 나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마다 자기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주장이 편견과 아집과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마다 자기주장이 옳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성은 혼자 산 속이나 무인도에 살면 알지 못합니다. 여러 사람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실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란 여러 지체가 한 몸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한 몸은 서로 다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다툼과 불화가 나옵니다. 그 이유는 아직 덜 죽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역사 속에서 우리를 실제로 죽이십니다. 그 과정을 교회라는 곳에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을 통하여 이기적인 자신의 실상이 드러날 때에 성도라면 자기주장을 계속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죄로 인하여 예수님이 대신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게 됩니다. 

오늘로 산상수훈의 팔복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첫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지막 복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천국에서 천국으로 연결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팔복이 아니라 구복이라고도 합니다. 그 이유는 11절에도 복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 11절에서 나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란 곳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을 때에 복이 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이들은 하늘에서 상이 크며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이 복을 누가 원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는 우리들도 이러한 복은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복은 어떤 인간도 스스로 원할 수도 없거니와 이런 복을 원하는 자가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실천하는 자들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일차적인 대상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이 산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만 제자들도 바리새인 정도는 안 되어도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통하여 자신들이 전적인 죄인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면서 그 의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이 다 달려들어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0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자기 약속이며 자기 숙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산상수훈의 모든 말씀을 다 순종하시고 이루신 자리가 십자가에 죽기 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이 모든 말씀을 완성하셨기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천국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능력으로 산상수훈의 이러한 의를 이루어낼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인생들은 이미 선악과를 자기 안에 장착하고 태어납니다. 선악의 판단은 하나님만이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어서 선악의 판단을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의 인간이 가장 의로운 행위를 한다고 하여도 그것 자체가 이미 죄로 규정된 선악과의 결과이기에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존경하는 수많은 위인과 의인들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가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성경의 하라 하지 말라고 하는 모든 율법을 흠이 없이 다 지켰다고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로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가 바울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단의 괴수이며 예수 믿는 자를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고 실제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박해하였습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의 결과가 유일한 의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하고 핍박한 곳이 이 세상이라는 곳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여 두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결코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고린도전서 2:7~9절입니다.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감추어진 지혜란 고린도전서 1장부터 말씀하는 십자가의 도가 됩니다. 아무도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준비하여 주신 그 사랑이 십자가임을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어떻게 이 십자가의 도를 알게 됩니까?

이어지는 10~14절입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압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지 않는 자 곧 육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혈과 육으로 의를 이루어내려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이 너무나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고 오직 주님의 의만 의지하는 것을 육에 속한 자들, 곧 자기 행위로 의에 이르고자 하는 자들은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육에 속한 자들이 성령에 속한 자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이 임하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여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내용은 예수님을 믿지 않음이 죄라고 알려주십니다. 의에 대한 책망은 세상에 어떤 의도 없다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심판에 대한 책망은 이 세상의 심판의 기준인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의를 인하여 핍박받는 내용이기에 의에 대한 말씀만 보려고 합니다. 성령은 사람들이 의라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그 이유를 로마서 3장에서 봅니다. 

로마서 3:9~18절입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말씀들이 다 구약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19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의 행위 곧 사람의 혈과 육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선한행위라는 것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의를 거역하는 행위가 되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껍데기만 지키면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을 산상수훈을 그 속을 다 드러내어 벌거벗기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이나 신약의 산상수훈이나 간에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자신이 실천하여 자신이 갖추어낼 의로 삼아 버립니다. 이것이 죄임을 성령은 책망하십니다. 

20~27절입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이 본문 전체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사도가 이 복음을 증거 할 때에 누구에게 핍박을 받았습니까? 특히 유대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의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율법으로 자신들의 의를 구축하여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문화를 따라 구축하여 놓은 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라는 것들을 다 무너뜨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된다는 이 소식이 인간의 모든 의로운 행위라는 것을 철거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의로운 행위라는 것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증거 하면 핍박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10~12절을 봅니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들이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11절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착각합니다. 자신이 잘못 신앙생활을 하고서는 예수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고 합니다. 새벽기도 나온다고 출근하는 남편 밥을 안 해줍니다. 그러면 남편이 화를 냅니다. 이럴 때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새벽기도 나가서 당신의 승진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그것도 못 챙겨먹느냐면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기도 나오지 말고 남편 밥이나 잘해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도도 하지 않고 남편 밥도 안 해주고 그러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약의 선지자들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핍박을 받은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벧전 1:12)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 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지 않고 자기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인간의 행위를 따라 복과 저주를 언급한 것입니다. 미가 3:9~11절입니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뇌물과 삯과 돈을 위하여 일하면서 여호와의 재앙이 임하지 않으리라고 하는 이런 거짓 선지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참된 의가 무엇인지 증거 한 자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참된 선지자나 신약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나 간에 하나님의 의란 인간으로서는 이루어 낼 수가 없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예수님의 피만이 의라고 하는 자들이 핍박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값없이 주어진다고 하니 값싼 은혜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도저히 값을 지불할 수가 없기에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값없이 주시는 의란 하나님의 자기 생명을 속전으로 주신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손에 살해당하신 그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 사실이 모든 인간의 의를 부정하기에 핍박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고린도전서 1:26~31절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고린도후서 5:17~21절입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의가됨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들의 의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핍박을 받는 자들이 천국에서 상이 크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위하여 세상에서 고생을 많이 하면 하늘에서 큰 아파트를 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결코 알 수 없는 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큰 상인데 이 상을 받은 자가 이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의만을 증거 하다가 박해를 당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41~42절입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너희가 죽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복음을 전합니다. 이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그 복음을 누가 싫어하고 있습니까?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싫어하여 이들을 옥에도 가두고 매를 때려서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매를 맞고 나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박해를 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금 이들이 박해를 받으며 기뻐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을 주님께서 지금 이루어 내시는 현장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4:12~19절입니다.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의를 위하여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받는 것을 베드로나 바울이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계시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와 바울이 왜 박해를 받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에는 반드시 무엇이 전제가 됩니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의로 인하여 참으로 의로우신 분을 박해하고 살해하였다는 것이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를 핍박합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도 돌아보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억울함을 당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데 자타가 인정하는 옳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말을 듣는다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당장 죽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다 죄로 인하여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인간이 없습니다. 절대로 객관적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 참으로 의로우신 분이 오셔서 이 세상의 일들을 다 악하다고 하셨습니다(요7:7). 이런 말씀을 하셨기에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도 이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예수님을 핍박한 것처럼 그 사람을 핍박할 것입니다. 이렇게 핍박 받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영광의 영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의 영광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된다는 이 복음으로 핍박받는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약속으로 태어난 이삭을 핍박하였듯이 오늘날도 자기 행위를 의지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는 자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증거 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입니까? 부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고 말함으로 핍박을 받는 복이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