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4~16    세상의 빛     2014. 12. 28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지난주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소금이 살아있는 것을 죽여서 변질되지 않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소금 언약도 세상에서 살았다고 하는 자를 죽여서 죽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자들은 이 역사 속에서 말씀의 소금으로 침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이러한 성도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이 다 썩을 것이며 불에 타 없어질 것들임을 알고 썩지 않고 낡아지지 않을 영원한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의 기능이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소금인지 아닌지 어떻게 점검해 볼 수 있습니까? 내가 추구하는 것이 썩을 것인지 썩지 아니할 것인지를 점검 해 보시면 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을 보시면 우리가 거듭난 것이 금이나 은이나 없어질 보배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보배로운 어린 양의 피로서 거듭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썩을 씨가 아니라 항상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낡아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오해하듯이 이 말씀도 오해하여 우리가 세상에서 착하고 바르게 살아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착한 행실이란 우리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선악체계의 착한 행실입니다. 이러한 착한 행실이란 세상에서 통용되는 것이기에 세상 사람들도 환영하고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이 세상이 어떻게 대접하였습니까? 세상에서 쓸모없다고 내 버리고 발로 밟아버렸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모없게 되어 버림을 받고 발로 밟힌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짜 소금이신 예수 그리스도, 유일한 참된 소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이 쓸모없다고 버려서 발로 밟아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살 맛 나게 만드셨다면 이렇게 버림을 받았을까요? 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다는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소금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소금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보기 전에 세상의 참된 빛이 누구신지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참된 빛이 이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보고 나서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세상의 빛으로서 가신 그 길을 자기 제자들에게도 가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봅니다. 

창세기 1:1~5절입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하십니다. 이 빛은 넷째 날의 태양과 다른 빛입니다. 이 빛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봅니다. 

이사야 42:5~9절입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백성의 의가 되며 이방의 빛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의 영광은 결코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며 여호와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그 빛이 어떠한 빛인지 성경은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신 분이 하시는 일이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사야 51:4~8절입니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 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하나님의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빛을 알고 믿는 자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을 것을 알기에 세상의 비방에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습니다. 일일일생으로 보시면 인생이 다 하루살이입니다. 하늘과 땅마저 연기처럼 사라질 것인데 그 안에 하루살이 같은 인생들의 비방으로 인하여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공의와 그 구원이 영원합니다. 이 빛을 품에 안은 자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25~35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시므온 같은 자를 남은 자라고 합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심으로 의롭고 경건하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서 찬양하는 내용 중에 하나가 이방의 빛이며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메시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기에 이제 이 아기를 안고서 주의 종을 평안히 놓아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예수가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폐하거나 흥하게 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된다고 합니다. 빛으로 오신 분이 하실 일이 이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빛으로 오신 분이 비방을 받을 것이며 칼이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방을 받는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악할 뿐임을 이미 노아 홍수 때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전에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였습니다(창6:5). 그런데 홍수 이후에는 좀 깨끗해 졌을 까요? 결코 아닙니다. 홍수 이후에는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합니다(창8:2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덮어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인생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날마다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죄인들의 세상에 참된 빛이 오셨습니다. 그동안 자기들끼리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 한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다 어두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5절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지금까지 살펴본 창세기의 빛에 대한 말씀과 선지자들의 빛의 예언과 그 성취로서 이방의 빛이라고 성령의 지시로 증거 한 시므온의 찬양까지 본 내용을 요한복음에서 압축하여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하나님이며 생명이며 사람들의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생명이며 빛입니다. 

그러나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이 어두움에 속하여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두움에 속한 채로 사람들은 생명도 이야기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을 말하고 빛과 어두움을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선이라는 것은 인류에 빛을 비추어 주었다는 유명한 위인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참 빛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자 그 모든 것들이 어두움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빛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여 참 빛이 제거 당하였습니다. 

요한복음 7:7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상태가 빛이 없는 어두움입니다. 그런데 어두움에 속한 상태에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며 살아가는 그 상태 자체가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 사회에서 가장 거룩하고 선하다고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독사의 새끼들이며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십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보다 세리와 창기가 천국에 먼저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세상이 미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이 선이라고 하는 것들을 선이라고 인정 해 주셨다면 미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열심히 율법을 지키며 금식과 기도와 전도와 구제를 하면서 자신들만이 빛의 아들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리새인들보다 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킨 자들이 에세네파들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세상에 어울려 살면서 거룩하게 살 수 있느냐고 하면서 자신들끼리 광야로 나가서 세상과 분리하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이들의 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빛의 아들들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도 다 생명의 빛이 아니라 어두움에 속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4:3~6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복음이란 어떤 인간의 선행이나 의로움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가려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세상의 신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가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에게 그 빛을 비추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셔야만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빛으로 믿게 됩니다. 

앞에서 살펴본 창세기 1장의 빛과 선지자들의 빛에 대한 예언과 시므이가 아기 예수를 안고 빛이라고 찬양한 내용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빛을 알아보고 믿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그 마음을 가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도록 그 천지창조를 하실 때에 빛이 있으라고 하신 그 능력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임하면 이 세상이 어두움임을 알게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빛임을 믿게 됩니다. 

요한복음 8:12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과 빛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신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어두움에 속한 것이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이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기에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세상의 신에 속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주시면 우리가 얼마나 어두움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살아가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시간이 말씀을 보고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속을 비추어주시면 우리가 얼마나 어두움에 사로잡혀 그 어두움을 좋아하며 사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될수록 빛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빛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더욱 자신의 어두움이 더 드러나게 됩니다. 호롱불 밑에서 보는 것과 전깃불 밑에서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빛들보다 태양에 빛에서 보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빛은 태양이 비출 수 없는 우리의 속마음을 비추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15:11~20절입니다.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정결하게하려고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고 먹으라는 전통을 만들어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을 보고 비난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과 비방입니다. 이런 것이 자기의 마음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마음들로 살아가고 있는데도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바로 어두움에 속하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어두움을 비추어 드러내십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합니다. 빛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야 빛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으로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 되셔서 온 세상을 어두움이라고 악하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온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종교적인 의를 가장 최고의 지점까지 이루어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세상의 권력을 가진 로마인들도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합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이 땅에 빛으로 오신 분을 제거하여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빛이신 예수님께서 영으로 임하게 된 자들은 예수님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이 빛은 우리가 세상의 윤리 도덕적인 행위를 통하여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어둠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는 빛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우리를 막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신이 반드시 예수님을 미워한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의 미움을 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금이나 빛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인류에게 큰 빛을 남긴 사람들이라는 위인전기들의 책이 있습니다. 저도 어려서 읽어보았습니다. 이들은 인류의 삶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빛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가끔 이런 반열에 올려서 위인으로 보는 책들도 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인류를 사랑하였다고 말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세상의 위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보여준 세상의 빛이 되었다면 결코 십자가에 못 박혁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산위의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산 위의 동네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유대인들은 빛의 도시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마저 빛의 도시가 아니라 참 빛을 증거 한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 선지자들이 증거 한 참 빛이신 예수님마저 살해한 어두움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은 이 예루살렘을 시내산과 하갈과 이스마엘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자녀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기 백성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성전들은 세상의 빛입니다. 산위의 동네가 숨겨지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이 영으로 그 안에 들어온 사람은 세상에서 숨길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표가 나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어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것처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착한 행실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착한 행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세상의 빛이 됩니다. 어떤 빛을 비추는 빛입니까?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그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 세상이 어두움에 속하였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린 이 땅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불과 소금으로 침을 당할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미워한 그 십자가로 피하라는 것이 착한 행실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