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12   베들레헴에 오신 왕     2014. 7. 13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라는 이름의 뜻과 임마누엘에 대하여 한 번 더 정리하고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은 ‘말헬살랄하스바스’를 통하여 ‘스알야숩’된 자들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들 이름을 통하여 계시하신 내용입니다. 남은 자가 돌아오는데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여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통과하여 남은 자와 함께 하신다는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라는 이름과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오신 분의 장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장소조차 계시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2절입니다. 헤롯 왕 때란 로마가 지배하고 있기에 로마의 원로원 허락으로 헤롯이 왕으로 다스리던 때입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십니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유대의 동방이란 옛 페르시아 지역이나 아라비아 지역도 동방입니다. 이곳에서 별을 연구하는 점성가들이 왕이 태어났다는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이러한 별에 대한 연구를 다 말하여도 한 시간이 더 걸립니다. 천문학자들이 중국과 한국의 고대 역사까지 추적하여 별이 나타난 것을 연구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료들보다는 성경에서 별이 왕의 태어남을 예언하고 있는 곳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24:17~18절입니다.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합니다. 이때 발람이 타고 가는 나귀가 발람에게 말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저주를 하려고 하면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쏟아집니다. 세 번이나 저주를 시도하였지만 세 번 다 축복만 나오는데 이 내용은 세 번째 내용입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의 장래를 예언합니다. 장래에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타날 것인데 이 별이 나타나면 왕의 홀을 가지는 자가 됩니다. 

이 왕이 하는 일이 모압을 무찌르고 셋의 자식을 멸망시키고 에돔과 세일이 그의 유산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셋의 자식들이란 창세기의 아벨 대신에 주신 셋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에서는 셋 자손의 영토를 칠 것이라고도 번역합니다. 그런데 전에 한글개역 성경에서는 ‘셋의 자식들’을 ‘소동하는 자식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히브리어 tve 라는 단어가 셋의 자손의 이름도 되지만 소동하고 떠든다는 뜻도 있습니다(렘48:45). 그러므로 유대인의 왕의 소식을 들은 자들이 지금 소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문 3절을 봅니다.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동하는 자식들을 지금 심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원수 에돔도 그들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때가 되어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타난다는 그 예언이 지금 역사 속에 일어나서 동방의 박사들이 왕이 태어난 징조로 별을 보고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별로 지칭이 되는 메시아가 오시면 메시아를 대적하는 자들을 다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심판을 하나님께서 집행하시기 위하여 별을 보고 온 동방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기록합니다만 지금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은 베들레헴이 어디인지 모르고 별의 인도를 따라 유대 땅 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유대 땅에 들어서자 그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이 보이지 않았다는 증거는 9~10절을 보면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에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서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섭니다. 그래서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별이 인도하여 유대까지 왔으면 계속하여 베들레헴으로 곧장 인도하여 가면 될 텐데 왜 갑자기 별이 보지지 않아서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게 하였을까요?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다면 유아 살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5절입니다.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는 질문에 헤롯왕과 예루살렘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가족까지 살해한 왕입니다. 이런 헤롯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은 것은 지금 엄연히 왕으로 있는 헤롯 너는 왕이 아니라는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헤롯만이 아니라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 유대인의 왕이 오셨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심판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에 대하여 연구하고 알아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살해하려고 합니다. 헤롯왕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에 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대제장과 서기관들이 바로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합니다. 

6절입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이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거의 다 외우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미가서의 한절만 인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한 절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한 다스리는 왕이 오시면 무엇을 하는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미가서 5:1~15절입니다. “1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이르러는 내가 네 군마를 네 가운데에서 멸절하며 네 병거를 부수며 11 네 땅의 성읍들을 멸하며 네 모든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것이며 12 내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 13 내가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 14 내가 또 네 아세라 목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빼버리고 네 성읍들을 멸할 것이며 15 내가 또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 하셨느니라”

긴 본문을 다 보았습니다만 요약하면 베들레헴이 작은 고을이지만 이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나올 것인데 그의 근본은 상고(上古)와 영원(永遠)이라고 합니다. 영원하신 분이 이 역사 속에 여인의 해산으로 오셔서 적을 물리치고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미가서의 베들레헴이라는 한 장소만이 아니라 적어도 베들레헴에 이스라엘을 다시리는 자가 오셔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최소한의 단락이 미가서 5장입니다. 이 내용은 역시 심판을 통한 남은 자의 구원임을 봅니다. 심판을 통하여 남은 자 곧 구원 받은 자는 어떤 모습입니까? 7절을 보시면 야곱의 남은 자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는 모든 무기들을 부수어 버리고 점쟁이도 끊어버리고 우상도 부수어 버림으로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들을 다시는 섬기지 않는 자들이 바로 심판을 통하여 남은 자들입니다. 

미가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가 베들레헴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얼른 베들레헴으로 찾아가서 왕에게 경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경배하려고 가지 않습니까? 이미 자기들이 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왕이 되어 있는데 다른 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소식을 예루살렘의 헤롯왕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왕이 태어났다면 이제 자기들은 그 왕에게 복종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놓기 싫은 것입니다. 헤롯의 말을 들어봅시다. 

7~8절입니다.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을 그 왕으로 오신 이를 살해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이런 모습이 헤롯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나의 왕 됨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제거할 만반의 마음 자세가 되어있습니다. 물론 그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 온갖 충성을 다 바치는 자들도 결국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기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권력이 없다면 그렇게 충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으로는 자신의 왕 됨을 위한 일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과연 예수님을 나의 왕과 주인으로 믿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왕과 주인으로 섬김으로 무언가 떨어지는 떡 부스러기를 기대합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과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이적 이후에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먹고 배불러서 따라갑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따라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군중들을 어렵다고 하면서 다시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시자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계시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느냐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권력에 대한 의지로 따라 갔습니다.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다 부인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성경에서 모든 악한 자들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보시면 성경을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내가 주인공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든지 영화나 소설을 보아도 언제나 주인공에 자기를 대입시킵니다. 결국 나는 왕이라는 말입니다. 왕이 되고 싶어서 사람들은 서울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왕이 오신다고 알고는 있지만 지금 그들은 예루살렘의 왕궁을 중심으로 정치와 종교와 경제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그런 곳에 오시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 있는 자들에게 너희는 아니라는 통보를 동방의 박사들을 통하여 알려 준 것입니다. 

9절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중에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갑니다. 이 별이 유대 땅에 와서 잠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박사들로 하여금 유대인의 왕이 사는 곳에 찾아가게 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곳이 어디냐고 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의 아들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왕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반역자가 나온 것입니다. 반역자는 멸해야 하는 것이 왕들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 정도의 왕의 아니지만 나의 왕 됨을 방해하는 자는 다 제거하고 싶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나는 왕이로소이다. 하는 것이 우리 안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대접하여 주고 알아주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무시하면 그들을 어떻게 하든지 이기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왕이 오셨다는 소식이 과연 기쁜 소식일까요? 

10~11절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합니다. 왕이 오셨다는 별을 다시 보고서는 기뻐서 그 별이 인도하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 제법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양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이 예물을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만 왕에게 드리는 예물로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고 이곳에서 박사들이 하루를 잔 모양입니다. 그래서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 왕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알려주면 왕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이 오셨다는 똑 같은 이야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소식이 됩니다. 별을 보고 찾아온 이방인들은 아기에게 예물을 드리며 경배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으로 있는 헤롯은 진짜 왕을 살해하려는 의지로 충만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동방의 박사들입니까? 헤롯입니까? 성경을 보고 교회를 다니는 일을 왜 하십니까? 베들레헴에 왕으로 오신 그 분을 나의 왕으로 모시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왕 됨을 위한 것입니까? 성경을 볼 때에 자신을 위하여 보면 성경은 그렇게 보여 집니다. 이것을 성경의 도구주의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 때에 여러 가지 도구들이 필요하듯이 성경도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썩어질 세상의 생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성경입니다. 복음은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에 오신 왕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선지자를 죽인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셨습니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모음 같이 이스라엘을 주의 품에 품으려고 하였으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심이 예루살렘입니다. 이곳이 바로 애굽이며 소돔이며 예수님을 죽인 곳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이가 예루살렘에서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왕 됨을 원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다시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는 자들을 만들어 내시기 위하여 베들레헴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은 라헬이 죽어 묻힌 곳이며(창35:19) 룻의 남편 보아스의 고향입니다. 사사시대 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떡집에 떡이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엘리멜릭과 나오미는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런데 10년 만에 두 며느리를 보았지만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과부만 셋 남았습니다. 이 때 베들레헴에 다시 떡이 주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가 돌아옵니다. 이때 함께 따라온 여인이 룻입니다. 나오미가 돌아올 때에 베들레헴 사람들이 나오미가 돌아왔다는 말을 하자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기쁨이지만 라마는 슬픔과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 룻으로 인하여 기업 무를 자 보아스를 만난 노년이 유업을 이을 아들은 품에 안게 됩니다. 나오미가 라마에서 다시 나오미가 됩니다. 떡이 없다고 이민 갔습니다. 이민 갈 때는 풍족하게 갔지만 돌아올 때는 텅 비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텅 비어버린 나오미가 이방여인 룻과 기업 무를 자 보아스를 통하여 아들을 품에 안게 됩니다. 이들의 후손으로 이새와 다윗이 태어난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이 베들레헴에 왕으로 오신 것은 그 지명에도 뜻이 있습니다. 베들레헴(~x,l,-tyB))e)은 ‘베이트’ 집과 ‘레헴’ 떡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떡 집입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왕은 자신의 살과 피를 짐승 같은 자들에게 제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베들레헴의 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은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셔야만 되는지 알고 믿게 됩니다. 이렇게 믿게 되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통하여 믿게 됩니다. 그 심판이란 더 이상 인생을 의지하지 않고 더 이상 우상을 의지할 수 없도록 만들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라를 경험하고서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9~21절입니다.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하였습니다. 이 분이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까?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됩니다.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시면 말씀을 통하여 베들레헴에 오신 왕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제공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복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록된 이 말씀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통하여 보면 베들레헴에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어두음을 비추는 등불과 같습니다. 이 캄캄한 세상에서 말씀이 등불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샛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 이것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옳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고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기록된 말씀이며 이 말씀을 통하여 베들레헴에 왕으로 오신 분의 그 희생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살려내시는 것을 보게 되고 믿게 되는 일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22:16~17절입니다.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목마른 자들입니다. 세상에 목말라 하면서 썩을 떡과 마시고도 갈한 세상이 주는 물을 마시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후에 정말로 의에 목마른 자가 되어 값없이 생명수를 마시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왜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오셔서 자신의 살과 피를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수로 제공 해야만 아는지 비로고 알고 믿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