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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13~18  애굽에서 불러낸 아들    2014. 7. 20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ㄷ)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예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죄가 무엇입니까? 자주 말씀드린 예레미야 2:13절 말씀을 보시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근원적인 죄의 모습입니다. 선악과의 유혹은 그것을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입니다. 그런데 이 유혹에 넘어간 아담은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자신의 웅덩이를 파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웅덩이가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구원이 나올까요?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구원을 말하게 됩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마실 물이 없어서 갈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마다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구원이라고 여깁니다. 이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결핍을 채워주는 구원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구원욕구를 종교 사기꾼들은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므로 종교 사기꾼들은 그러한 사람들의 욕구를 자신이 채워줄 수 있다거나 또는 그 욕구를 채워주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나섭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빌립보서 3:18~21절입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바울사도가 개들을 삼가라고 하면서 나온 결론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가는 그 결론은 그들의 배 곧 욕망이 그들의 신이며 그 영광을 땅의 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로 이루어낼 수 있는 세상의 영광을 말하면 이들이 개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기 전에 이런 서론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일차적인 독자들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이 무엇인지 잘 아는 자들입니다. 그 출애굽의 모티브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을 전함으로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애굽에서 빠져 나와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제 그 언약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이란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빠져나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13~15절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룻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 어미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에 있으라고 합니다. 요셉이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헤롯이 죽기까지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 구절이 인용된 호세아 성경 한 장을 다 보겠습니다. 

호세아 11:1~11절입니다.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입니다. 이 단락에 애굽이라는 말이 1, 7, 11절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애굽에서 불러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선지자들이 부를수록 멀리하고 바알들을 섬깁니다. 그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시고 이들을 앗수르로 인하여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렇게 심판을 하실 때에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도 있었지만 애굽으로 피난간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다시 불러 모으시는데 11절에서 보시면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 비둘기 같이 떨며 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입니다. 

이러한 예언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그 경로를 반복하시면서 구원이 어떠함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하여도 늘 반역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출애굽 하며 광야에서 시험의 과정들을 이겨내시는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원의 여정에 자기 백성들을 함께 참여 시키십니다. 그 과정들이 십자가로 언약을 다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본문 16~18절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헤롯 몰래 예루살렘을 벗어나 가 버렸습니다. 이것을 안 헤롯이 화가 나서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습니다.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죽인 것은 동방박사들이 별이 나타난 때를 기준하여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라헬이 라마에서 통곡하는 예레미야 31:15절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유아 살해와 라헬의 통곡인데 우선은 유아살해가 출애굽의 상황에서도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는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이 애굽으로 가야 하는 것은 모세를 통한 출애굽의 사건과 함께 연결하고 있음을 유대인들은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장과 2장을 보면 모세가 애굽에서 태어날 때에 애굽의 바로 왕의 명령에 의하여 유아 살해가 시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인구가 애굽에서 불어나는데 이것을 두려워한 바로 왕이 산파를 통하여 사내아이는 죽이고 여자 아니는 살리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산파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아이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바로 왕이 책망하자 히브리인들은 애굽 여인들과 달라서 산파가 가기도 전에 아이를 낳아버렸다고 말합니다. 노동하지 않는 애굽 여인들이 아이를 잘 낳지 못하는 반면에 노동하는 히브리 여인들이 아이를 잘 낳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때 바로 왕이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모세가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아 살해는 잠시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론이 모세보다 세 살이 많은데 살아있었고 모세 이후의 유대인 남자들이 있었음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본문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구약 성경을 유대 고대사로 정리하여 기록한 요세푸스에 의하면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선지자가 바로 왕에서 예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요세푸스는 이 선지자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지만 요나단의 탈굼에는 모세를 대적한 두 적대자들이 얀네와 얌브레라고 언급합니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디모데후서 3:18절에 나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선지자가 바로 왕에게 예언하였기에 유아 살해 명령이 내려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세푸스의 이야기를 잠시 옮겨봅니다. ‘미래사를 정확하게 예언할 줄 아는 매우 현명하고 거룩한 서기관들 가운데 한 서기관이 왕에게 나아와 얼마 안 있어 이스라엘에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인데 그가 장성하면 이스라엘인들에게 힘을 불어 넣고 애굽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것이며 그의 덕성은 그 누구보다 뛰어날 것이고 그가 누리가 될 영광은 만세에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너무 놀란 나머지 이 서기관의 의견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이 낳은 모든 사내아이는 강에 던져 죽여 버리라고 명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산파의 이야기가 모세의 이야기들이 성경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아는 유대인들은 지금 마태가 전하는 복음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겹치게 되겠습니까? 바로 왕의 유아 살해와 헤롯의 유아 살해가 겹쳐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하듯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출애굽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인하여 출애굽 하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아는 곳이 유일하게 지상에서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이름 자체가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출애굽 곧 출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면 이것은 교회가 아니라 바알의 신전이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출애굽기 4:22~23절입니다.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자기 아들 만들기가 어떠함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여 내셔서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시는데 이 일에 방해하는 자는 여호와의 원수가 되기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출애굽 곧 출 세상에 관심이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아니라 땅에 속하여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9:28~31절입니다.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로 보아도 됩니다. 그래서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 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변모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과 함께 모세와 엘리야가 별세를 의논합니다. 별세라는 말은 헬라어로 ‘엑소더스’입니다. 이 단어를 영어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departure, death; the Exodus (from Egypt)” 떠남, 죽음, 출애굽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의논을 하는 모세도 엘리야도 지상에 무덤이 없는 자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무덤을 감추어버리셨고 엘리야는 구름타고 올라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중에 나타납니다. 예수님도 지상에 무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주의 영으로 인하여 날마다 별세를 꿈꾸며 사는 자들입니다. 지상에 흔적을 남길 이유가 없는 자들입니다. 이미 하늘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마라의 고통과 나사렛 사람에 대한 말씀은 다음 주에 보고 오늘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는 말씀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난하게 하시는 것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는 출애굽기와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의 성취이기도 하지만 지금 헤롯 치하의 예루살렘이 바로 왕의 애굽과 같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루살렘이 애굽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전이 있고 제사장이 있고 율법 선생들이 있으면 이들이 여호와를 열심들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쌓기 위하여 열심을 내고 있는 이 예루살렘이 바로 애굽 곧 세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0:1~4절입니다.“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하여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 곧 율법의 완성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을 위하여 온갖 열심을 내는 예루살렘이 바로 애굽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애굽에서 탈출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4:21~26절입니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바울사도가 갈라디아서를 기록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이 건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시내산과 종인 하갈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라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런 곳이 애굽입니다. 아직 애굽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내 백성을 불러내셨다는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 한 것을 완성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예루살렘이라는 곳도 애굽이라는 세상이기에 출애굽 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11:7~8절입니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복음을 증거 하다가 죽임 당한 증인이 죽은 그 장소가 어디입니까? 소돔이며 애굽이며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신 곳이라고 합니다. 즉 소돔과 애굽과 예루살렘이 다 세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과 율법과 제사가 있는 그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엑소도스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1~4절절입니다.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내 백성아 거기에서 나와서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들릴 것입니다. 이 음성이 들린 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저주 받았다고 하는 그 자리가 출 세상 하는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