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3~17   예수님의 세례     2014. 8. 24

13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세례의 의미에 대하여 세례요한의 사역을 말씀드리면서 잠시 언급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세례의 의미를 좀 더 상세하게 말씀을 드리면서 물, 성령, 비둘기, 하늘이 열림, 하늘의 소리, 모든 의에 대한 내용들에 대하여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살펴보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들을 세밀화를 그리기 보다는 크로키처럼 속성으로 그려나갈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요단강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기 위하여 모인 곳에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자기 뒤에 오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을 맞이하기 위한 세례입니다. 그런데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그 분이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물세례를 받기 위하여 요한 앞에 오셨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몸을 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옛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면 물에 잠긴다는 것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원래의 자리란 땅의 티끌입니다. 땅이 처음 조성 될 때에 물속에 있었습니다. 

창세기 1:2절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땅의 형태가 아직 잡혀지지 않았을 때에 물속에 있었습니다. 물속에 흙을 집어넣으면 흩어져 버립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운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운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대의 랍비들은 마치 새가 날개를 펼쳐서 알을 품듯이 그렇게 품고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 장면과 요단강의 장면을 대비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물속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물에 들어가시는 것은 인간의 원래자리인 흙으로 흩어지는 자리이며 곧 죽음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에 세례 요한이 놀라서 제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하는데 어떻게 당신이 내게로 오시느냐며 말리고 나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세례를 허락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풉니다. 여기서 모든 의를 이룬다는 것은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뜻과 약속들을 이루시는 것이 곧 모든 의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이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이루시기 위하여 공생애 제일 먼저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들이 받아야 할 그 세례를 예수님이 받으심으로 죄인의 자리에 들어가서 연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니 하늘이 열렸습니다. 물에서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열렸다는 말씀은 사람들이 가시적으로 어떤 하늘의 현상을 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십니다. 세례 요한을 말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서 올라 온 것과 광야를 거쳐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두 가지 이미지가 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세례를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함께 연결을 시켰습니다. 그러면 더 큰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땅이 물에서 나와 성립된 것을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후서 3:2~7절입니다.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이 본문에서 두 가지 물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천지 창조 시에 땅이 물에서 나왔는데 이 말씀을 사람들이 일부러 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노아시대에 세상이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물의 심판 속에서도 살았습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에 방주는 물에서 떠올랐습니다. 이 방주는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것은 천지 창조와 홍수의 심판에서 방주의 모습을 통하여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형태로 임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로운 하늘과 땅을 만들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지금의 대기권도 물속에 있다고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종종 예를 들어 말씀드리기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속에 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문어도 잡고 전복도 잡아내려고 숨을 참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물 밖으로 나와서 숨을 쉬어야 다시 물속에 들어가서 작업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교회로 모인다는 것은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숨을 쉬는 것입니다. 

하늘에 열린다는 표현이 에스겔서 1:1절에 나옵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있는 중입니다. 여기서도 강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모습이 에스겔 선지자에 나타납니다.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 있다면 완전한 절망의 시간과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늘이 열림으로 소망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무려 4백년이 동한 하늘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에 유대인들은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이 있었고 제사장들이 있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루살렘에 하늘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까? 광야 그것도 요단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에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비둘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비둘기 같다는 말은 그와 비슷하게 가시적으로 보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위에 운행하신다는 것을 마치 새의 날개가 감싸듯이 표현한 것과 연결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때에 비둘기가 물이 마르고 땅이 드러난 것을 알리기 위하여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과 연결하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요단강의 세례가 어떤 뜻을 보여주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은 시편 2편에서 ‘너는 내 아들’이라는 말씀과 이사야 42:1절에서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라는 두 말씀의 내용이 하늘의 소리로 들린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이러한 현상들과 소리가 들림으로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아들임이 하늘로서 선포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이러한 현상과 하늘의 소리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임을 하늘로서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난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요12:30). 마태복음 17장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보는 중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납니다. 이때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지으려고 합니다. 세분을 모시고 그곳에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실 때에 눈을 들어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없고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이루실 일을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 하였고 그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이루실 분이시기에 너희는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물세례와 물에서 올라오심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세례는 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장차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도 함께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주의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됨으로 이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그 사역의 완성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란 바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35~38절입니다.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제자들은 한자리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자기들을 좌우에 앉게 하여 달라고 청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내가 마시는 자를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여기서 마시는 잔이나 받을 세례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자 이들이 마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스스로 잔을 마시고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하여도 그 좌우편은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는다고 하여도 그 대가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세례를 받지 않고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는 단지 물로서 만의 세례가 아니라 십자가가라는 세례는 예수님 홀로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불의 세례 곧 심판도 자신이 받으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인이 되셔서 죄 아래 오신 것이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연합되기 위한 세례입니다. 그리고 홀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이 받을 죄의 저주와 형벌을 다 받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그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그 다 이루심이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의를 다 이루신 것입니다.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다 이루어내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 바로 모든 의를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의 성령으로 인하여 의를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함께 연합이 됩니다. 이렇게 연합이 되는 것을 한 성령을 받았다고 하며 한 성령을 마셨다고도 합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며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예수님 홀로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다 이루신 그 세례를 자기 백성에게도 부어주십니다. 

사도행전 2:29~33절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로마서 6:1~5절입니다.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세례를 연합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을 세례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한 자들의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살게 되는가 하면 우리가 추구하던 옛 사람 곧 죄의 몸이 멸하여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세상에 속한 사람들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속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한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이러한 죽음이란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도 두렵고 자신의 이름이 욕을 얻어먹는 것도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연합 된 자들 곧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들은 세상의 판단이나 평가에 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점검해 볼 수가 있습니다. 나의 삶의 목적과 방향과 가치관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이라면 이 사람은 성령으로 주님과 연합되지 않았습니다. 즉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때가 되어 학습을 받고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고 직분 자가 되어도 그 사람의 속에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이 세상의 자랑이 될 것들만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과연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는 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3:23~26절입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여기서 믿음을 세례라고 합니다. 이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아들이기에 아들의 유업을 받습니다. 이것을 역사 속에서 어떻게 경험하게 됩니까?  

골로새서 3:1~5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여기서 ‘함께’를 ‘세례’로 읽으셔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은 함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사신 것처럼 성도란 예수님의 세례를 함께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고 위엣 것을 찾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세례를 받은 아주  분명한 증거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를 의롭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의를 이루신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린도후서 5:17~21절입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통하여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시고 그 육신에 죄를 정하셔서 죽으신 것이 세례입니다. 이 세례가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다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으심이 예수님이 완성하실 세례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어내신 그 하나님의 의를 자기 백성에게 성령으로 부어주시면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이 역사 속에서 죽임을 당하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유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일들을 이 역사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날마다 나를 물에서 건져내셔서 하늘의 생명수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마치 세상에서 뿌리가 뽑혀 죽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자들이 모두 다 이러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살다가 갔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 반드시 일어나고야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