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다운받기]   

   에베소서 6:13~17 성령의 검 2014. 5. 4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마지막 무장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무장들은 다 방어와 보호용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방어도 할 뿐 아니라 공격도 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고 하면 될 텐데 왜 성령의 검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내가 여기에 있고 성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펼치면 글자가 있습니다. 이 글자를 내가 읽고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내가 주체가 되어 성경을 자기의 뜻대로 읽게 됩니다. 그 사람의 문화와 환경과 지식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각자가 나름대로 성경을 이해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책을 읽은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경을 읽게 되면 성경을 문자로 보게 됩니다. 문자로 본다는 말은 율법조문으로 보는 것입니다. 율법조문을 전에 한글 개역성경은 의문(儀文)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면 하라는 것은 하면 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성경을 본 대표적인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성경을 율법조문으로 봤습니다. 그 결과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아직 이러한 수건에 가려져 있는 자들이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통하여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으로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1~18절입니다.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12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대비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 언약이란 율법의 조문입니다. 이러한 율법의 조문을 영으로 읽지 않고 문자로 읽는 것이 바로 사람을 죽이고 정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미 새 언약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당시만이 아니라 지금도 모세의 수건이 가려져서 율법만이 아니라 복음도 율법의 행위로 봅니다. 그러므로 이런 수건이 그리스도에게도 돌아가면 벗겨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 3일 동안 당달봉사가 되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안수함으로 보게 되었는데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합니다. 눈이 다시 보게 된 것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바울 당시에는 신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구약만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비늘이 벗겨지자 구약성경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임하여 성경을 율법조문으로 보지 않고 영으로 보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17절입니다.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배우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왜 박해를 받습니까?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볼 때에 성령의 감동이 아닌 자기의 지식과 경험으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에게 배우는지 조심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께서 우리의 지각을 열어주셔야 말씀을 제대로 받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면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성경을 성령으로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63절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육은 무익합니다. 육이란 사람이 할 수 있다는 모든 것을 육이라고 합니다.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으로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 살립니다. 이 말씀이 바로 영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이란 ‘레마’를 말하고 영은 ‘프뉴마’입니다. 레마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로고스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영 곧 성령으로 임하게 되면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에 의하여 전하여지면 이것이 마귀를 대적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5:7~11절입니다.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무엇으로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혈과 육으로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내셨는지를 알고 믿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이 10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자를 이 역사 속에서 잠깐 고난을 당하게 합니다. 이러한 고난은 모든 성도가 다 받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을 통하여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지 못할 것들을 이 세상에서 털어내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을 성령을 통하여 말씀으로 믿는 것이 바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것입니다.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보게 되면 이 말씀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며 연구하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지만 이 성경이 곧 나에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라고 요한복음 5:39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한 말씀을 듣고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자기 영광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요한복은 5:44절에서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기에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아니고서는 결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4: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5:26절입니다.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성경의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핵심은 예수님의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 일뿐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사단의 진들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4~6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우리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그 마귀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귀가 그 견고한 진을 어디에 구축하여 놓았습니까? 우리의 이론과 생각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론과 생각들이란 철저하게 자기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제가 종종 예를 듭니다만 전도사 때에 어떤 할머니가 교회로 오셨는데 담임목사가 학습문답 준비를 하라고 해서 제가 예수님이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예수고 뭐고 간에 내 몸이나 낫게 해주소!’ 이 할머니가 교회에 가면 병을 고침 받는다고 누가 꼬였겠지요! 그래서 교회에 나왔는데 병은 고쳐주지 않고 말씀만 전하니 화가 난 모양입니다. 이 할머니의 솔직한 표현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는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고 말할 뿐인지 여전히 우리의 중심은 나를 중심으로 모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지 않습니까? 어떤 결정을 할 때에 나의 이론과 생각으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 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견고한 진들입니다. 이것들을 무엇으로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해부해 버립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합니까?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이론들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을 받습니다. 그러면 지으신 모든 것이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를 이렇게 벌거벗깁니다. 이렇게 벌거벗겨 지는 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하나는 귀를 막고 돌을 던집니다. 다른 하나는 십자가로 달려갑니다. 


이어지는 말씀 14~16절을 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가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야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책망을 받아야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됩니다.


성도는 반드시 이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하여 이 역사 속에서 우리가 벌거벗은 듯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책망을 받는 것마다 빛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위선으로 포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자신의 죄를 더 보게 됩니다. 금요일 성경공부 마치고 어느 권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남편이 안수집사님인데 갈수록 신앙생활이 미지근해 보여서 잔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신앙생활 열심히 잘하라는 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남편이 계속 저렇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손을 한번 쓰실 텐데 그렇게 되면 자기도 힘이 들것이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잔소리 한 것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종교 생활이 다 이런 식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이 역사 속에서 다 복종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는 지옥 가! 그러면 예 지극히 마땅합니다! 이 정도로 복종되어져야 합니다. 어디 죄인인 주제에 천국을 꿈꾸다니 말로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오든 안 오든 수련회를 가든 안가든 언제나 그 중심은 누가 있습니까? 내가 있는 것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내 속에 자아라는 것이 타인의 욕망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그때그때 변신을 해 됩니다. 세상에 속하면 세상의 것으로 치장하고, 교회로 오면 교회의 종교성으로 치장하고, 복음을 이야기하는 곳에서는 복음 아는 것으로 자기를 치장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도라면 이 역사 속에서 죽을 때 까지 해체됩니다.


요한계시록 1:16절입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예수님의 입에 무엇이 나옵니까?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옵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여 성도는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를 붙들게 됩니다. 우리가 죽을 때 까지 죄가 나오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죄가 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자신이 죄인중의 괴수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는 그 말씀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에 그렇게 됩니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 온전하게 복종하게 되면 모든 복종하지 아니한 것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지금 주님이 준비하고 계십니다(고후 10:6)


요한계시록 19:11~16절입니다.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심판 주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옵니다. 그것으로 만국을 칩니다. 지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침을 당하지 않으면 그 날에 침을 당합니다. 그때는 영원한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고 하는 지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목 베임을 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로 붙게 됩니다. 이것은 순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론과 생각들이 잘려지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만드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