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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8~20 성령 안에서 기도 2014. 5. 11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제일 많은 반응은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기도할 것이 없다는 말은 그동안 자신이 기도해온 것들이 복음과 반대되는 기도들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무엇을 구하는지 그리고 성경에서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2009년 12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약 2년 동안 기도에 대한 수요일 저녁 설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도에 대한 주제설교입니다. 첫 주제설교를 기도로 잡은 이유는 사람들이 기도할 것이 없다는 말들에 대하여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를 본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약 5년 전에 설교한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제일 처음 기도에 대한 설교가 창세기 4장의 아벨의 피의 호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아주신 아벨을 제사를 받아주지 아니한 가인이 돌로 쳐 죽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아벨의 피가 하늘로 호소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마지막 설교도 역시 요한계시록 6장의 피의 호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거로 인하여 목 베임 당한 자들이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시지 않겠느냐는 호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도, 호소, 간구라는 주제를 따라 가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피의 호소입니다. 그 무죄한 피 흘림으로 인하여 이 땅이 저주를 받고 이 땅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 피 흘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증거 합니다.


마태복음 23:33~36절입니다.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흘린 피는 그리스도를 피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가 세상의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그 피 안에 있는 자는 구원이지만 그 피를 부정하게 여기는 자는 심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평소기도들은 이 저주 받은 땅에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들을 구하여 보란 듯이 살고 싶은 욕망들을 기도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육신의 정욕이며 안목의 정욕이며 이생의 자랑이기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구하기 위한 기도가 거의 대부분이었기에 복음을 전하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말 거듭난 사람이라면 위엣 것을 찾아야 당연합니다. 그런데 말은 거듭났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라면 이 사람은 결코 거듭났다고 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3: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말씀입니다. 구할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분명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자들이나 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의 나라란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의란 이 세상에서 인간의 혈과 육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의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 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의를 덧입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의(義)라는 글자가 손에 창 들고 있는 나(我)위에 어린 양이 올려 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또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온갖 기도란 모든 기도와 간구입니다. 범사에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할지를 알지 못하기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를 대신하여 기도합니다(롬8:26). 그러므로 다른 번역은 성령의 도움을 구하라고 합니다. 성령을 따라 성령의 도움으로 범사에 기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빌립보서 4:6~7절입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서도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염려란 주님을 믿지 않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그런 염려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고서 여러분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이미 받은 것으로 여기고 감사헌금을 먼저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얻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0:4~6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지난주에도 본 말씀입니다. 사단의 견고한 진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무너뜨립니다. 이렇게 무너뜨리고 나서 그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된 마음과 생각을 성령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항상 하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께 복종되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항상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깨어 기도하여야 합니까? 기도란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또다시 중언부언하게 되며 자신의 욕망을 따라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제목을 주고 찬양단의 반주로 분위기를 만들고 주여 삼창을 하면서 무엇을 구하자고 하는데 그 구하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구한다는 내용들이 세상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세상의 돈과 사람의 수와 권력으로 행할 수 있는 것들이 기도의 제목이 된다는 것은 성령으로 기도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혈과 육에 속한 것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데도 혈과 육에 속한 것들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한다고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기도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욱 기도할 내용들이 많아지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서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동안 내가 구한 것들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는 말에 삐져서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말씀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한다는 사람들이 다 말씀을 보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붙들고 한다는 그 말씀들이 앞뒤 다 자르고 자기의 욕망을 채울 내용으로 변개시켜서 기도하면서도 말씀대로 기도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구절들을 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식입니다. 악한 아비라도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는 말씀을 가지고 자기 좋은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행구절인 누가복음 11장에서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받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말씀대로 기도한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입니다. 환난 날에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크고 비밀한 일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새 언약의 내용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기도라는 주제 설교에서 상세하게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느냐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말씀드립니다. 새벽기도회 때 사도행전을 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눈이 멀어버립니다. 3일 동안 보지 못하다가 아나니아가 안수함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이때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지 육신의 눈만 다시 보게 된 정도가 아니라 성경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성경은 구약입니다. 그 구약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 하였습니다. 이 본문을 보고서 저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도록 기도하면서 동시에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같은 제목입니다. 주소록 한 장 올려놓고서 전체 이름을 부르면서 이들의 눈에서도 비늘이 벗겨져서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밝히 보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도 우리의 혈육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보다 성령님께서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롬6:26) 예수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롬8:34).


본문 19절입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개인적인 기도와 성도를 위한 기도를 하라고 하면서 바울 사도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고 있는 사람이며 셋째 하늘까지 이끌려 올라가서 생명책 까지 보고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개척하여 복음을 전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를 자신에게 말씀을 주사 그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 달라고 합니다. 바울 같은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에 두렵고 떨면서 전하였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2:1~5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복음을 전하는데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로 전하여질까 두려워하며 떨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기도를 요청한 것은 복음을 전할 때에 사람의 지혜와 사람의 눈치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그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증거 되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리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31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십자가의 도가 정말 기쁜 사람은 손들어 보시기바랍니다. 사람의 본성상 좋아할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으로 살아가는데 십자가의 도는 사람의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일에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기도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하여 기도하셔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바로 알고 바로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눈치를 보고 십자가의 도를 담대하게 전하지 못하면 저도 여러분도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메일이나 문자로 격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여 달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 온 메일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하시겠다고 외친 예레미야 같은 설교자가 없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참 복음이 무엇인지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세계 도처의 사람들에게 말씀해주고 계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삯꾼 목자들, 종교 의식은 있지만 참된 예배와 예배 자들이 없는 교회들,,,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참 마음이 아픕니다. 외부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내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내 믿음 하나 지키기도 힘든 말세의 끝- 에 살고 있음을 깨달아가며 하루하루 목사님 말씀처럼 떠밀려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바라보며 소망과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격려와 기도들이 저에게 필요합니다. 제가 얼마나 소심한지 여러분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눈치 보지 않고 담대하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검을 휘두르도록 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는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이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갇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감옥에서도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쇠사슬에 묶여 로마로 갔지만 그 로마에서 만 2년을 가택연금 상태에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을 기뻐하며 복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옥에 갇히는 것도 기뻐하며 죽는 것도 기뻐하는 자들을 세상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인하여 제대로 복음을 듣고 믿었다면 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런 것으로 기가 죽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뜻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성도라면 반드시 이 말씀이 성취가 됩니다. 우리의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기뻐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물론 이 역사 속에서 아주 잠시 잠간의 기쁨과 감사가 주어집니다만 이것은 이미 영원한 묵시에서 오는 것이기에 이러한 기쁨과 감사가 계속 되도록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하라고 합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그 기쁨과 감사를 맛보는 자들은 영원하고 완전한 기쁨과 감사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더욱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