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7~12 하나님의 아들 2018. 11. 4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지난 주 설교제목이 기억나십니까?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였습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까?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친히 안식일의 주인임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회당에서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며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이 안식일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그림자인 안식일을 목숨처럼 붙들고 있는 자들은 참 안식을 주시는 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를 헤롯당과 의논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가 오실 메시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치고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는 자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죽여 버린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의 내용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의 여러 파당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자기들처럼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이 일순위로 이루어지는 메시아 왕국을 원한 것입니다. 부활도 천사도 믿지 않는 사두개파 사람들은 또 다른 메시아를 원합니다. 열심당원들은 무력으로라도 적을 물리치고 메시아 왕국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들보다 더욱 경건하다고 하는 에세네파는 아예 도시를 피하여 사막의 동굴로 들어가서 자신들이 빛의 자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메시아로 오신 분은 이 모든 자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상상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를 의논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말씀을 드리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런데 설교 후에 피드백을 해 보니 그리스도를 죽인 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모두들 자기들의 의와 가치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모두들 나는 아니지요(14:18,19)? 나는 아니지요? 하는 자들이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이 정말로 주님을 만나면 내가 주님을 핍박한 자 임을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 9:1~5절입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사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중의 이스라엘 사람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파의 가말리엘 문하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신데 갈릴리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면서 그 예수를 여호와 하나님의 호칭인 주라고 믿는 자들은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고 실제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인 사람이 사울입니다.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오려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가다가 대낮인데 햇빛 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말에서 떨어집니다. 이때 들린 음성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사울이 주여 당신이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제대로 예수님을 만난 자의 모습입니다.

 

금요일 성경공부 하는 내용이 기독론입니다. 2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고 믿는지를 공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이 강조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하면 상상을 합니다. 성령님이라고 해도 상상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것이 성경의 계시를 통하여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상상한 예수님을 믿는다면 오늘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박해하는 자가 됩니다.

 

오늘 본문 7~8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 물러가십니다. 사람을 많이 모아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은 사람의 숫자가 힘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물러가시고 피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하시면서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쫒아내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천국을 실현하고 계시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국복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병이 고쳐지는 것과 눈에 보이는 기적들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 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인산인해를 이루니 자꾸만 물러가십니다. 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당간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몰려옵니다. 유다지역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지역에서도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옵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실 천국복음을 듣고자 함이 아니라 내 몸이나 낫게 하여 달라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과 떨어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꾸만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6:14~15절입니다.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1)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오병이어 기적이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것을 아신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떠나가십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게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날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와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왔을까요?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24~27절입니다.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1)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이유는 썩는 양식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은 썩지 아니할 양식을 얻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6:29).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알고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썩지 아니할 양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참된 생명을 준다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많은 제자들이 어렵다고 하면서 떠나갑니다. 그리고서는 다시는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 않았다고 합니다(6:66).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만이 예수님을 알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은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11~12절입니다.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메시아를 기다면서 철저하게 율법을 지킨다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어떻게 하면 죽일까를 의논하는데 더러운 귀신들이 어느 때든지 예수님을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기를 당신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마가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런 귀신들의 말을 막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아직 십자가를 지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지기 전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15~17절입니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4)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베드로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고백이라고 합니다. 이런 신앙의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20절을 보면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언제까지 말하지 말아야 합니까? 십자가 지기 전까지입니다.

 

이어지는 21~24절입니다.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7)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 본문의 귀신이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과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귀신의 고백이나 베드로의 고백 둘 다 예수님은 말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었다고 하시기 전에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것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 곧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예수가 아니라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를 확장하고 자기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기 위한 따름이기에 십자가 전까지 입을 막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떤 예수님을 믿습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자꾸만 물러가시고 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귀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고백도 못하게 하시고 베드로의 고백도 막으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고백하는 내용들은 다들 자기 상상의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바른 신앙고백을 했지만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고 나섰을 때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십니다. 사람의 일이란 십자가 없이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을 십자가로 다 이루신 후에 십자가의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이 천국의 복음입니다.

 

마가복음 1:1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귀신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막으시는 것입니까? 베드로가 바른 신앙고백을 하였지만 여전히 베드로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생각은 사람의 생각이며 이것이 사탄의 생각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는 기적을 일으키고 병을 고쳐주고 부자가 되게 해주고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을 기대한 것이기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예수님을 따라올지라도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가십니다. 너희가 원하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7~8절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마가복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네 번 나옵니다. 마가복음 1:1절과 3:11절과 5:7절과 15:39절입니다. 5:7절도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남이 그들의 멸망이기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입니까? 자기를 긍정하고 확장시키는 예수님이 아닙니까? 이런 우리들을 예수님은 상관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상관하지 않으시고 그냥 버려두면 죄와 사망의 종으로 이 세상만 사랑하다가 세상이 멸망할 때에 함께 영원한 멸망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도 복음으로 상관을 하십니다. 십자가 이전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알고 믿도록 오늘도 성령께서 말씀으로 간섭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15:37~39절입니다.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죽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고백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이 이방인 백부장이 받은 그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