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21~32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2020. 4. 5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1)(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유대인들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대제사장이 빌라도에게 넘기면서 무리들을 충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합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을 만족시키려고 죄 없는 분을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줍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온갖 조롱을 다합니다. 그런 후에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님은 밤을 새워 기도하신 후에 잡히시고 새벽에 심문을 받으시고 채찍으로 맞으셨기에 비틀거립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봉독 구레네 사람 시몬,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 합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할 때에는 알렉산더와 루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출신이 구레네라는 북 아프리카 출신인데 이름이 시몬인 것을 보면 흩어진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으로 오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행렬과 마주칩니다. 예수님을 끌고 가는 자들이 이 사람을 잡아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라는 곳 까지 가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가지고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식으로 보면 재수 없이 걸린 겁니다. 그런데 이 일 조차 우연이거나 재수 없이 걸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사건으로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근거를 바울사도가 말합니다.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하면서 그는 자기의 어머니이기도 하다고 합니다(16:13). 초대교회 때에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는데 지나가는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간 것은 억지가 아니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일어나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22~23절입니다. 골고다아람어이기에 헬라어로 번역을 하여 해골이라고 합니다. 이 당시에 유대인들의 일상용어는 아람어였습니다. 유대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바벨론 다음의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인데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가 아람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아람어를 많이 사용하였기에 아람어를 많이 씁니다. 골고다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만 지금 예수님은 자신이 마시는 잔이 있다고 하신 그 십자가의 고난의 잔을 온전히 마시고 계시기에 그런 것을 거절하십니다.

 

24~27절입니다. “봉독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을 때 옷을 다 벗깁니다. 평행본문을 보면 겉옷은 네 조각으로 찢어서 군인들이 나누어가집니다.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라서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차지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시간은 제 삼시입니다. 우리 시간으로 환산하면 아침 아홉시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 있는 죄목을 적는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썼습니다. 예수님 좌 우 편에는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이런 고난이 구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편 22:18절입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다윗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약 천 년 전의 사람입니다. 다윗이 이런 시편을 기록한 것은 다윗도 고난 중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를 예언한 내용입니다. 시편 22편은 마치 다윗이 눈앞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였다고 합니다(12:37, 110:1).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합니다(8:56).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이 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렸으며 그 그리스도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그리스도가 지금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누가 이런 그리스도를 믿겠습니까?

 

시편 22:1~18절을 봅니다.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오늘은 18절의 내용과 십자가에서 조롱 받는 내용을 봅니다. 6~8절의 내용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현장에서 그대로 일어납니다. 사람들의 비방 거리이며 백성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는 자들이 다 비웃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면서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면서 조롱합니다.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니 사람들이 조롱하기를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는지 보자고 합니다. 이런 조롱은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 지나가는 자들의 조롱과 같습니다(2:15~16). 조롱하면서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믿어 주겠다고 합니다.

 

본문 28~30절입니다. “봉독 28절의 각주를 보면 어떤 사본에는, '불법 자와 함께 인정함을 받았다 한 성경이 응하였느니라'가 있다고 합니다(53:12). 29절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말합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자들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보려고 몰려온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는 일은 시편 22편의 내용대로 일어납니다. 십자가에서 달리심이 죄인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인데 그 사실을 모르니 자기 자신도 구원 못하고 죽는 자가 남을 구원할 수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31~32절입니다. “봉독 그와 같이라는 말은 지나가는 자들의 말과 같다는 말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함께 조롱하는 말이 지나가는 무리들과 같습니다. 백성의 종교 지도자라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지나가는 무리들과 생각이 같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어가는 예수는 결코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무리와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를 보고 믿게 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이들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입니다. 시편 22편만이 아니라 모든 구약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증거 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한계입니다. 무리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이나 간에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는 결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일 수 없다고 봅니다.

 

32절입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 양 쪽의 강도들도 같은 욕을 한 것입니다. 지나가는 무리들이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나 두 강도나 간에 십자가에서 달려 죽어가는 예수는 결코 메시아 일 수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조롱하는 말은 네가 남을 구원한다고 기적을 베풀고 하더니만 정작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도 못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며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누가복음 23:39~43절입니다.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처음에는 두 강도가 함께 욕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강도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입니까? 누가복음은 이방인에 대한 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편의 강도가 십자가 위에서 극적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증거 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함께 욕하던 두 강도들이 왜 한 편은 자기 죄를 알고 예수님께 간구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34)” 이 말씀을 들을 때에 한편 강도는 이 분은 자기 죄로 죽는 분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물론 이런 고백을 한 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한 편 강도는 끝까지 예수를 욕하고 저주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습니까?

 

마태복음에서 이 본문을 말씀드릴 때에 설교제목이 최후의 유혹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무리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심지어 함께 달린 강도들조차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달려 죽어가는 주제에 어떻게 남을 구원하겠느냐는 조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한 죽음임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셨다면 구원 얻을 자가 없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을 가로 막는 것을 유혹이라고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들어가십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마귀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 유혹은 세 가지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유혹을 물리치십니다(8:3). 이번 코로나 사태로 우리의 평소 생각이 생명보다 생존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는 것을 확인합니다.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여 발을 다치지 않게 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유혹합니다(91:11,12). 예수님께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물리칩니다(6:16). 세 번째는 마귀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준다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말씀으로 물리칩니다(6:13). 그런데 물러간 마귀가 예수님의 제자 그 중에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마태복음 16:21~26절입니다.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7)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십자가를 지신다는 예수님을 말리고 나선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십니다. 십자가 없이 우리를 구원하라는 베드로의 말이 사탄의 말이며 이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평소 생각이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는 생각입니다. 우리도 다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려고 하지 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살려고 교회에 왔습니다. 죽기 위하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당에 오면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는다고 하면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오고 안 오고도 우리는 자기 살기 위한 것이 우선입니다. 물론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만 그러나 그 심층으로 들어가 보면 생존이 우선입니다. 그렇다고 감염이 되는데 모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의 평소의 모든 결정이 나를 죽이는 방향이 아니라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 알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살면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로 지라고 하였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나 한편 강도를 통하여 십자가 지는 일은 사람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임을 봅니다.

 

오늘 본문 29~32절입니다. “봉독 십자가에서 내려 와 보라고 하는 자들이 지나가는 자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십자가에서 달린 강도들입니다. 이들이 다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기도 구원하고 남도 구원하면 믿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고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습니까?

 

오늘날 이 땅에서 전해지는 복음이라는 내용이 성경의 복음인지 분별하여야 합니다. 성경적인 복음인지 다른 복음인지 알아보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오늘 세 무리들이 말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말을 하면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십자가만 있느냐 부활도 있고 천국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활과 천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냈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증거 하였습니다. 세상이 볼 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자기도 구원하고 남도 구원하는 모습으로 보여야 훌륭한 증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 반대로 말합니다. 자기도 구원 못하고 남도 구원 못하는 무력하고 나약한 그래서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거리끼고 어리석은 십자가로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우리가 평소에 추구하던 모든 것들이 사탄의 유혹에 의한 것이라고 성경은 너무나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거리끼고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예수님을 믿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