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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5:1-3 안식과 성막 2011. 8. 14

 

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휴가를 잘 보내셨나요? 휴가(休暇)의 한문을 보면 사람이 나무 옆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운 날에 농사를 짓다가 시원한 그늘나무아래 한숨 쉬는 것을 휴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휴식이 끝나면 다시 고된 노동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휴식은 정자나무 그늘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나무 아래 와야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무슨 그늘이 있습니까? 저주 받아 죽는 나무 형틀이 십자가인데 왜 그곳에 안식이 있다는 말입니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오늘 말씀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합니다. 안식일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엄숙한 안식일은 ‘온전한 안식의 안식일’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그냥 하루 쉬는 날이 아니라 온전한 안식을 얻는 안식일이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온전한 안식이 있습니까? 휴가를 가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말 좋은 휴가였다고 여기는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휴가를 가는 이유는 그래도 집이 좋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가는 휴가도 됩니다만 저는 휴가 간 사람이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으로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참된 안식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본문을 보시면 엄숙한 안식일, 참된 안식을 위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고 합니다. 안식일에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서 죽이라는 말씀은 안식일의 특징이 일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 날임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대하여 출애굽기에서도 몇 번에 걸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째 쉬시며 이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복 주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아무른 일한 것도 없이 받아 누리는 것임을 안식일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이것을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광야 40년을 다 마치는 신명기 5장의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이유가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왔기 때문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라고 합니다. 창조의 모든 혜택을 은혜로 받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일하지 않고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데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쉬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약의 갱신에서 구원이 일하지 않고 은혜로 받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이 안식일에 일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하나님의 창조의 안식이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깨어지지만 그러나 인간이 깬다고 깨어질 하나님의 안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안식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십니까? 그것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죽이고 심지어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엄숙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성막과 연결이 됩니다. 성막을 짓는 날에도 안식일은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막을 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짓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구별된 장소와 구별된 희생의 제사가 있어야 이스라엘과 동행하여 주십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거룩함의 속성을 이스라엘이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성막에는 늘 제사장들이 지켜야 합니다. 그 안의 기구와 내용들은 이미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창조와 구원의 은혜를 거저 받는 것만이 아니라 이 창조와 구원이 누구를 위하여 있느냐는 것도 함께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안식과 우리의 구원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내가 구원받지 못한다면 성경이 무슨 소용 있으며,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죄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의 창조와 구원이 하나님의 자기 영광과 자기 안식을 위한 것인데도 우리는 자꾸만 자기중심으로 보기에 성경도 이해가 안 되고 하나님도 이상한 하나님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하나님의 자기 영광과 자기 안식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안식이 필요 하느냐고 말하는 분도 계십니다만 하나님의 안식이란 자기 창조의 완성으로 인하여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것이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그러나 이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뱀의 유혹으로 인하여 인간이 먹게 됩니다. 선악과를 먹은 상태로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으면 안 되기에 이들을 추방합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천사가 화염으로 된 칼을 들고 지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생명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를 조상으로 둔 모든 인간은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수고하며 일하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라서 스스로 안식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곳이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곳은 저주와 심판과 영원한 형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마귀는 계속하여 속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된다고 온 인류를 다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신처럼 떠받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대한민국처럼 발달한 나라도 없는데 이 나라가 살만한 세상이 되었습니까? 더욱 경쟁만 치열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안식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킨다고 수십 가지의 세부적인 규칙을 만들어서 무엇이 일하지 아니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지켰습니다. 한국교회도 초창기에 복음을 율법의 형식으로 받아들였기에 안식일에 불도 피우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서는 겨울철에 난방용 불도 피우지 않고 미리 밥을 해 두었다가 찬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들을 마치 신앙이 좋은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식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이 안식을 주지 못하는 올무가 되어버립니다.

 

예수님 당시에 율법적인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부러 안식일에 일을 하십니다. 그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일하시니 자신도 일한다고 합니다. 이런 예수님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단의 괴수로 보였기에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줄일까를 의논하여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 안식일을 지킨다는 인간들이 안식을 주시는 분은 죽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문자로 본다는 것이 이런 모습입니다. 성경에 말씀이 있으니 우리보고 지키라고 주었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자신을 정상인으로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금요성경공부 시간에 노아 언약에 대하여 보면서 보았습니다. 그 악함이란 사람들이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죄악이 관영한 모습이라고 그래서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는 것이 노아홍수입니다.

 

창세기 5:28-29절입니다.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노아의 이름이 안위 즉 안식을 주는 아들이라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안식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노아의 홍수 속에서 참된 안식은 방주를 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사고팔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사는데 은혜를 입은 자는 방주를 예비하여 삽니다. 이것이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인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도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말씀이 왜 성막을 짓는 일과 연결을 시킵니까? 성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만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여 주시면 그것이 바로 참된 안식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성막에서 하는 일에 대하여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 날마다 피 흘리는 제사가 있어야 하고 떡이 드려져야 하고 분향을 하여야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속죄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과 성막은 긴밀하게 연결이 됩니다. 모든 절기가 다 안식일인데 그런 절기를 성막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단지 휴식을 위한 안식일 지킴이 아니라 성막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거할 때에도 하나님의 성막이 함께 하여야 이스라엘은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오고,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이 광야이든 가나안이든 심지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처소가 되어 주어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아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처소를 바벨론에 두시려고 하십니까?

 

에스겔 11:16-17절입니다. “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이스라엘을 지키겠다고 남아있는 자가 남은 자가 아니라 바벨론에 순순하게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이 남은 자가 됩니다. 예루살렘의 성과 성전을 지킨다고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처소가 되어줍니다.

 

에스겔 37:21-28절을 봅니다. “봉독” 포로로 잡혀간 그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고 합니다. 돌아온 그들에게 다윗이 영원한 왕이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미 죽은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됩니까? 다윗에게 언약하신 영원한 왕위를 말씀합니다. 그 영원한 왕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한 화평의 언약에 세워지고 그 언약의 완성으로 하나님의 처소가 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영원한 여호와인줄 열국이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의 이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옵니다. 심판받은 흔적을 가지고 돌아온 그들이 성전을 재건한 것이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이 성전을 개축하여 크고 아름답게 만든 성전이 예수님 당시의 헤롯성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십니다. 안식일도 예수님이요 성전도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는 안식일을 지켜서 안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건물을 지으면서 성전을 짓는다는 정신없는 자들이 아직도 이 땅에 가득합니다. 그런 것으로는 결코 안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안식은 하나님이 안식을 얻을 때에 자기 백성도 그 덕분에 안식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처소를 만들어 내시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교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에서 주신 자기 백성을 자기 피로 구속하여 내십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으로 자기 백성이 안식을 얻게 됩니다.

 

출애굽을 시킨 것도 하나님의 자기 처소를 삼기 위한 것입니다(출15:17). 오늘 우리를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불러내신 것도 하나님의 자기 처소 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소가 완성되어야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의 자기 처소를 만드시기 위하여 자기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처소가 된 주의 백성만이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