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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9:32-43 명령대로 되었으므로 2011. 9. 4

 

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33 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왔으니 곧 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34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 덮개와 가리는 휘장과 35 증거궤와 그 채들과 36 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37 순금 등잔대와 그 잔 곧 벌여놓는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38 금 제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 휘장 문과 39 놋 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40 뜰의 포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휘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성막 곧 회막에서 사용할 모든 기구와 41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라 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43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성막이 다 만들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만든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옵니다. 그 모든 성막의 기구들이 다 만들어진 것을 모세가 보았습니다. 설계도를 모세가 받았으니 모세가 최종 검사를 해 보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왜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기 위하여 성막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또한 동행하여 주십니까? 하나님의 자기 영광과 자기 안식을 위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물론 그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방금 들은 이 말씀에 여러분은 은혜가 되고 무조건 아멘이 되십니까? 잘 동의가 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영광과 자기 안식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에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영광과 나의 안식을 위하여 일하신다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자기 영광만 챙기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에 우리가 거부반응이 일어나고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미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에 있기에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천지를 창조하신 뜻이 하나님의 자기 아들을 위하여 창조되었음에도 우리가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이라서 자기 영광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어려서부터 습관입니다(렘22:21).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동의를 하든지 아니하든지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자기 영광 곧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15-17절입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예수님에게서 창조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가 알 수 있습니까? 골로새서 1:13-14절입니다. “봉독”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흑암의 권세아래 태어났습니다. 이런 우리를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그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은 자들이 천지 창조의 목적을 바르게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지를 10-12절입니다. 바울사도가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는 이 한 단락만 봅니다. 우리는 범사에 누구를 기쁘시게 하며 살아갑니까?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죄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과연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앞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가기를 결심은 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예라고 답을 하기에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만이 우리의 참된 기쁨이며 창조의 목적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에 자기의 기쁨과 행복을 위하여 살아가면 갈수록 참된 기쁨과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알기에 바울사도는 기도합니다.

 

10-12절을 다시 봅니다. 기도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이런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울은 이미 하늘나라를 보고 온 사람입니다. 요즈음 수많은 사람이 천국과 지옥의 간증을 하는데 그런 것은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서만 우리는 알고 믿습니다. 바울은 천국을 보고 왔지만 이 세상에서 비유할 것이 없기에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히 이를 수 없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완성을 보고 왔습니다.

 

이미 완성을 보고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은 곧 존재요 완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권세가 높은 사람이라도 명령한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계의 영웅호걸이라는 자들이 세계를 정복한다고 하였지만 다 죽어갔습니다. 그들의 꿈들이 다 헛되어 바람이 된 것을 세계의 역사를 통하여 보면 압니다. 그러함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은 오늘도 바람을 잡으려고 헛된 일에 분요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모르고 그 연약함을 스스로의 힘으로 영원히 고정된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든든히 서기를 원하지만 그것도 헛된 것입니다.

 

시편 39:4-7절입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우리의 소망이 주께 두지 않는 인생의 모습이 헛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론이 아주 길었습니다만 한마디로 줄이면 하나님의 명령만이 온전하고 영원히 세워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죄인이 된 인간도 스스로 하나님인줄 착각하고 살기에 자신의 명령이 영원하여 지기를 발버둥 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시편을 2편을 더 봅니다. “봉독” 이방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민다고 합니다. 왜 분노할까요? 자기들의 명령이 서지 않으니 분노하고 소란한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들을 꾸미지만 그들이 꾸미는 일들이 헛된 일입니다. 이들이 하는 일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며 진노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호와의 명령대로 다 이루어졌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헌물을 하고 또 여호와의 영을 부어 주셔서 모든 성막기구를 만들게 하셨으니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헌신하였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여호와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되었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내용은 다음 주에 한 번 더 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여 주심이 궁극적인 복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성막이 완성되듯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건물 성전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열왕기상8:14-15절입니다. “14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15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여호와께서 이루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다 되었기에 솔로몬이 백성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축복을 받는 것은 여호와의 명대로 다 되었을 때에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빌어줄 때는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친히 복을 주실 때는 축복이라고 쓰면 안 되고 그냥 복을 주신다고 해야 우리말로 바른 표현이 됩니다. 축복(祝福)이라는 말은 빌 축자를 쓰기에 하나님께서 누구에게서 복을 빌어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하는 표현이 바른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이 언제 주어지느냐는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이루어졌을 때에 백성들에게 복이 주어집니다. 이 복이란 안식, 동행, 영원한 생명, 죄 사함, 영원한 기업 등으로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되었기에 피조물이 복을 받았다는 최초의 내용이 어디에 있습니까? 창세기 2:1-3절입니다.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천지 창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더라는 것으로 창조가 완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더라는 것으로 인하여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입니다. 사람이 손길이 가미되지 않습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 안식하시고 그 날을 복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 속에 살아가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복입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인간이 타락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나니 이제부터 인간에게는 참된 안식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피조물인 인간이 깨어버렸다고 해서 하나님의 원래 창조에 흠집을 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기에 사탄의 활동과 인간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창조를 펼쳐내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뒷수습차원에서 일하심이 아닙니다. 처음 아담과 에덴동산은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처음 아담과 같지 않아서 완벽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여 내십니다. 그 완벽한 명령 수행의 결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성경학교에 처음 온 초등학교 3학년의 말처럼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아서 아쉬웠을 것이라고 하였듯이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이 저주 받아 죽은 예수님이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내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무엇을 다 이루어 내셨는지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다 이루어 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14-17절입니다. “봉독”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기에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왜 대신하여 죽은 것입니까? 그 안에서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이제는 결단코 나를 위하여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이루어지면 그것을 보시고 복을 주셨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다 이루어내심으로 오직 그 안에서만 복이 있습니다. 이 복이 새로운 창조세계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들입니다. 이러한 복이 성경의 복인데도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세상의 썩어질 것, 불타 없어질 것들을 복이라고 부여잡고 있다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이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이 세상에서 환난이라는 모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환난도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환난을 통하여 여호와의 명령대로 이루어진 참된 안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 영원한 복이기에 이 복을 전하는 사람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복의 모습을 요한계시록 21:1-4절을 봅니다. “봉독” 이 또한 여호와의 명령을 완수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