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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1-5 이 악한 세대에서 2011. 9. 25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출애굽기를 마치고 무슨 말씀을 보아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갈라디아서를 선택하였습니다. 왜 갈라디아서를 택하였는가 하면 우리가 다시 복음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성경이 다 복음을 전합니다만 특히 복음과 다른 복음에 대하여 선명하게 대비하는 본문을 통하여 기존의 교인들도 새롭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또한 새로 온 분들도 복음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고 풍성하게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바울사도가 갈라디아 지역, 지금의 터키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2절에 보시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기에 여러 교회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교회는 어느 지역이나 특정한 제도나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갈라디아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바울사도가 1차 2차 전도여행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믿어서 교회가 된 곳에 거짓 선생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이 말하기를 바울이 전한 복음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복음에 문제가 있다고 할뿐 아니라 바울의 사도됨에 대하여도 시비를 건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12제자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이 죽이고 핍박한 사람이라는 비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자신의 사도직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면서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합니다.

 

1절을 봅니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근거를 말합니다. 이 부분은 11절 이하에서 나오기에 그때 다시 보기로 하고 오늘은 간단하게 봅니다. 사도(使徒)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라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넓게 쓰일 때는 사람이 사람을 보낼 때도 사용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의 사도직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면 바울이 전한 복음도 신뢰를 하지 못하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사도직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 당시에 예루살렘교회에서 순회 전도자들을 추천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도들의 추천장을 받은 것을 권위로 내세웁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사도들의 추천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로부터 사도직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표현을 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함으로 기존의 유대인의 사고방식과 전혀 다른 표현을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이 참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유대인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안다고 하여도 그런 하나님은 엉터리 하나님이 됩니다. 오히려 그들이 안다는 하나님이 마귀가 됩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아들이 자유를 주어야 자유를 얻는 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종의 자식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자기들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면 나를 사랑 하였을 것인데 그렇지 아니함을 보니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보고 사마리아 인이요 귀신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7:3절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알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가 보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보내신 예수님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또 이방인들도 나름대로 기다린 메시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도대체 메시아라면 나에게 무언가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 것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없는 하나님께 저주받아 버림받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성경학교 때 처음 교회 온 초등학교 3학년의 말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아서 아쉬웠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심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결혼을 했습니까?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내었습니까? 세상적인 출세를 하였습니까? 목회를 성공하였습니까? 장수를 하였습니까? 도대체 이루어 내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저주받아 죽은 죽음이라서 침을 뱉고 고개를 도리질 하면서 돌아서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정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버림받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모든 인간이 다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틀린 정도가 아니라 죄 아래 있었고 사망아래 있었다는 것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사도직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아버지와 그렇게 살리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도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도의 권위로 갈라디아 여러 교회의 형제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합니다.

 

2-3절을 봅니다. 사도들과 함께 한 형제들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 인사의 내용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일신론입니다.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동등하게 자리매김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바울이 그렇게 열심히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한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힌 인간 예수를 믿는 다는 자들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주는 하나님 한분이신데 예수를 주라고 하니 이것은 곧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의 흔적을 보고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요20:28). 이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신앙에 의하면 결코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이 미쳤든지 아니면 사실 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런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보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보고서도 사마리아 인이라고 하고 귀신이 들렸다고 한 자들인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는 자들이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단 중에도 이런 이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달려가던 자가 바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울이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다시 3절을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은혜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모든 것들이 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옵니다. 햇빛과 비를 주시는 것도 다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런 은혜는 악인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보편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하늘을 보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와서 농사를 망치느냐고 항의하다가 비가 오지 않으면 왜 이리 가뭄이 왔느냐고 또 항의합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자리에서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무엇이 은혜임을 이제 제대로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예수님의 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죄임을 알게 되고 그 예수님으로 인하여 은혜가 주어지는 것임을 아는 자들에게는 평강이 주어집니다. 평강이란 샬롬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가 화목제물로 인하여 화목이 일어나야 평강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다는 이 사실 자체가 충격적인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와 평강을 다른 서신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따로 말씀하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1:6절입니다.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골로새서 3: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라고 함께 쓰지도 않고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삼위일체라고 쉽게 말합니다만 삼위일체란 교회에서 이단들과의 싸움에서 정립한 용어입니다. 그 이전에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한다는 자체가 사람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한 곳을 더 봅니다. 요한복음 5:19-21절입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사도요한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증거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알고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신 것입니까? 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지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주심으로 인하여 은혜와 평강을 선물을 받은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보입니까? 세상은 악하지만 그래도 살만하다고 여겨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선미라고 포장하여 있을 뿐이지 한 꺼풀만 들추어보면 악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악이 가득한데도 마귀는 속이고 있습니다. 세상이 문제는 있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살만한 곳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고치는 방법으로 교육을 이야기하고, 윤리와 도덕을 이야기하고, 환경과 경제를 이야기 하고 종교간 대화를 말하지만 이 모든 인간의 노력들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한 악의 발로입니다.

 

이러한 악한 세대임을 무엇으로 증명이 됩니까? 요한복음 7:7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한 이유는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얼마나 싫었으면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악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증거가 되었습니다. 창조주를 피조물이 살해한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곳임이 확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받은 자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지난주의 출애굽 결론도 출애굽이 목표가 아니라 출 세상이 목표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 백성들을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천지창조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한 창조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나 깨나 자신들의 영광을 위합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기에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선물로 받은 자들만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