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21~24 심령이 새롭게 되어 2013. 7. 28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옛 사람이란 유혹을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것들을 추구하는 구습(舊習), 옛 습관입니다. 이 유혹은 이미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모든 아담의 후손들이 다 썩어져 가는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본 말씀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이미 옛 사람을 벗었고 새 사람을 입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묵시와 역사라고 말하는데 좀 어려운 표현입니다. 그래서 좀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시간이 없는 것과 시간이 있는 것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 식물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시드는 과정이나 동물이 죽어서 마른 뼈다귀로 드러나는 과정을 단 몇 초에 다 보여줍니다. 그 몇 초의 시간을 정상적으로 펼쳐놓으면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립니다.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를 그릴 때에 모두 축약해서 그립니다. 왜 지도를 축약해서 그립니까? 실물대로 그리려면 그만한 종이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기록된 이 말씀들이 이미 다 완성이 되었다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종말이 구원과 창조를 앞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이미 머릿속에 완성된 그림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지능이 떨어져서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죄로 인하여 어두워졌기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욕으로 여기는 자들은 아직 옛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은 성경의 이 모든 말씀을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그 완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가 마감이 되는 날이 있다는 것을 믿고 알 뿐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이 심판을 받았고 끝장이 났다는 것을 아는 것이 새 사람입니다. 정말 성경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삶의 방향과 가치와 목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46:10절입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시작부터 무엇을 알려주셨습니까? 종말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십니다. 그 기뻐하시는 뜻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천지만물의 창조가 다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이 되었다면 이미 이 역사의 종말을 보는 사람이기에 옛 사람의 특징인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는 그 옛 습관들을 벗어 버리고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을 추구하면서 살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23절의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라는 말은 수동태입니다. 나의 육신이 태어나는 것도 내가 스스로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도 내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이 나의 심령을 새롭게 하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심령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이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심령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단어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마음이라고 하는 ‘누스’라는 단어이고 하나는 ‘프뉴마’라는 단어입니다. 프뉴마라는 단어가 신약에서 사용되는 용례는 여러 가지입니다. 숨. 바람, 목숨, 생명, 호흡, 영혼, 영, 그리스도의 영, 주님의 영, 성령, 마음, 중심, 빛, 생기 등으로 사용되면 심지어 귀신으로도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그 문맥에 따라 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심령을 우리말로 번역을 한다면 ‘마음의 영’으로 보시면 됩니다. 마음을 주장하는 것이 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 하여 타락함으로 인하여 이 마음의 영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흔히 하는 말이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아무리 마음을 먹고 결심을 해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대도(大盜) 조세형씨가 담당 검사로부터 성경을 받고 기독교인이 되어 신학교도 다니고 선교회도 만들어 열심히 간증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강남의 고급 빌라를 털다가 잡혔답니다. 그 나이가 75세입니다. 흔히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들을 하는 이유가 우리의 옛 사람을 벗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교회에서 결혼도 하고 간증도 하려 다녔지만 그들의 옛 사람을 벗어내지 못한 자들의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과연 심령이 새롭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교라는 종교로 신분을 세탁 한 것일까요? 아니면 교회라는 곳의 문화를 학습하여 교인의 흉내를 낸 것일까요? 교회를 몇 년 다니다 보면 교회의 문화를 익히기 마련입니다. 처음에 올 때는 언제 아멘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기도 끝에 아멘 하고, 목사의 설교에 추임새 넣듯이 아멘도 하고 그렇게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용어도 기독교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전혀 마음이 새롭게 되지 않은 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잠언 4: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의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 마음을 지킬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불나방이 불을 보면 무조건 불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옛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어느 곳으로 달려가게 하는가 하면 썩어질 것들을 향하여 달려가게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잡아줄 영이 새롭게 되지 않았기에 도저히 스스로 제어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있는지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아야합니다.

 

창세기 6: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3장에서 뱀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제부터 이들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구약의 역사가 다 보여줍니다. 그 중에 노아 홍수가 나는 이유를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든, 직장을 가지든, 사고팔든지 간에 무엇을 하든지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좋은 대로만 행하는 이것이 옛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홍수를 통하여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심판 후에도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한 것입니다(창8:21).

 

심령이 새롭게 되지 못한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내 마음이 좋아하는 대로만 살아가는 것이 심령이 새롭게 되지 못한 자의 모습입니다. 피조물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난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영광만 구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가지든지 아니든지 간에 자기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이유도 서로 영광을 취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유일한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자기의 의들이 사라지기에 믿지 않습니다(요5:44).

 

잠언 16:2절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심령이 새롭게 되지 못한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스스로 의롭다고 여깁니다. 자기 행위가 깨끗해 보인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여 사람의 심령이 새롭게 되면 자기의 죄가 보입니다. 이런 자들은 오직 주님의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자랑할 틈이 없습니다. 빛으로 가까이 가면 더러운 것이 더욱 잘 보이듯이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다 들통 나게 됩니다.

 

이사야 66:1~4절입니다. “1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람은 그 심령에 통회하며 그 말씀을 듣고 떠는 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기뻐하는 것을 해 놓고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합니다. 성전을 지어 바치는 것, 소와 양을 잡아 바치고 예물과 분향하는 것들이 살인과 우상숭배와 다름이 없이 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기뻐하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을 쌓았습니다.

 

시편 51:10~17절을 봅니다.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임신하게 되자 우리아를 휴가 보내어 자기의 허물을 덮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전쟁에 너무나 충성된 우리아는 자기 아내에게로 가지 않고 왕의 호위를 맡은 군인들과 함께 잤습니다. 다음날 술을 먹여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우리아를 다윗 왕이 밀령을 보내어 죽게 만듭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얼마나 완벽한 왕인지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잘 압니다. 그런데 이런 자가 왜 간음과 살인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 사건을 통하여 성경은 무엇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까지 그렇게 바르게 살아온 것은 결코 다윗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이 사건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자신이 죄악 중에 잉태하였기에 모태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자기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미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죄로 인하여 더럽혀 졌기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아담의 후손들이 유혹을 받으면 넘어가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다윗도 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 영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옛 사람의 모습인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질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간구는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됩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두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와 같은 범죄자들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피 흘린 죄인임을 압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군인 우리아를 죽인 자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은 주의 성령이 임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죽인 죄인임을 아는 것이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상한심령임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이미 자신이 죽은 자임을 알고 새 사람을 입은 자임을 알기에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습관을 따르는 길이 멸망의 길인 줄 알고 그 길에서 돌이켜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지으신 새 사람을 입기를 소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