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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5~7 하나님의 진노 2013. 9. 29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각자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해 보라고 하면 하나님이 다 다릅니다. 각자가 다른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각자의 필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하나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자기가 원하는 비슷한 문제를 보면 그런 상황을 이리저리 각색하여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 교회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오랫동안 설교를 들어오면서 이런 하나님도 아니고 저런 하나님도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하나님임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긴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믿는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어느새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말하면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기에 빠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면 당장 이상한 눈으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오셔서 열심을 내던 분들이 분위기를 감지합니다. 아! 이 교회에서 열심을 내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는구나! 눈치를 채고서 다들 열심을 내지 않는 것이 믿음인양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아 똑 같아집니다. 그런데도 열심을 내면 인간의 죄를 알지도 못하는 자라는 정죄의 눈길이 저에게 보입니다. 제가 잘못 본 것입니까?

 

우리가 다 죄인인데 죄를 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이런 죄인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내가 죄를 더 지어야 예수님의 십자가를 높이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다보니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아야 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당연하듯이 행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말을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그 일들을 감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사십니까?

 

오늘 본문 5절을 봅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너희도 이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전제를 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란 같은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아들의 나라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1:12~14절입니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 옮겨지는 것이 빛 가운데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골로새서 1:1~8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가 구역공부 시간에 한 내용들입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기도할 때 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반드시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모습은 또한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들었기에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란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회를 향하여 바울사도의 기도한 내용이 9~12절입니다. “봉독” 이러한 기도 후에 다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에게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13~23절입니다. “봉독” 그 중에 21~23절을 봅니다.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세워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서만 세워집니다. 우리가 이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이 다시 옛날의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그 일들을 행하면서 나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내가 짓는 죄는 이미 다 용서 받았기에 나는 어떤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을 초대교회 때도 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바울사도는 예상하고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자고 할 수 있겠느냐는 책망을 하였습니다(롬6:1,2). 오늘 우리가 그 책망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다시 오늘 본문 5절을 봅니다. 너희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음행만 탐심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탐심이 다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탐심들이 우상숭배 인줄도 모르고 복음을 이야기하고 자유를 이야기 하면서 그 탐심을 합리화 하고 있다면 이것 역시 우상숭배자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누구든지 헛된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 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고 하는 이 불순종의 아들들은 에베소서 2:2~3절입니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허물과 죄로 죽은 모습이 이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와 똑 같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연약함으로 이러한 모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고 회개하고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죄를 즐기면서 자신은 진리로 자유하고 있다는 헛된 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거짓말로 속입니다.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그 자유로 무엇을 위하여 사용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7:17~19절을 봅니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데 그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거룩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기 백성에게 거룩함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32절에서 예수님은 진리를 알면 자유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로 자유롭게 되어 어떻게 되라는 말씀입니까? 진리로 거룩하게 되라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거룩함 이란 이 세상과의 분리를 말합니다. 옛 사람과의 분리가 거룩함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탐심을 합리화하면서 우상숭배를 즐기고 있다면 이 사람은 아직도 흑암의 권세에 있는 사람입니다. 빛의 나라로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이 둘 사이에 중간은 없습니다. 빛의 나라로 옮겨진 자는 자신의 죄를 제대로 압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 죄를 자백하며 주님을 의지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런데 음행과 탐심을 불순종의 아들들처럼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란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과 이들의 속임에 넘어간 자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살았던 자들입니다. 몸만 어떻게 교회당으로 들락거리지만 그 마음은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의 복음이 욕으로 들리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는 관심도 없이 교회 나와서 자기를 중심한 나라만 구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자청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부인되어지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도록 기도하지 않는 기도는 다 우상숭배입니다.

 

고린도전서 6:9~11절입니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그 몸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청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가 하는 책망입니다.

 

이어지는 12~20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의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몸을 위하여 있습니다. 영육이원론이 아닙니다. 몸이 죄를 짓는 것이지 내 영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마음껏 음행을 하는 자들이 니골라 당이며 영지주의자라는 이단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 몸을 어떻게 창녀와 하나가 되게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둘이 한 육체가 된다는 말씀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합니다. 영과 몸을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 몸이 성령으로 충만해야지 탐심으로 충만해진다며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사신 것이 되었으니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입니다.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사귀게 되면 그렇게 물들기 마련입니다. 이들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거짓 선생들의 모습을 봅니다.

 

베드로후서 2:17~22절입니다.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이 말씀은 세상의 사람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 다닌다는 우리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하였는데 어느 순간에 진리로 자유 한다고 하면서 전에 피하였던 그 더러움을 즐기면서 합리화 하고 있다면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정죄함이 없다는 그 말씀이 무엇인지 새롭게 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