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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28 도둑질하지 말고 구제하라 2013. 8. 25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하기 위하여 성령으로 구별하여 불러내셨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자들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이 무엇인지 이 역사 속에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벗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에 대하여 알고 배우고 믿고 그러한 것을 덧입은 것이 새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믿게 됩니다.

 

이러한 새 사람으로 사는 모습들이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는 것이며,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말씀들입니다. 지난주에 어떤 분이 이 말씀을 듣고서 이상하게 한 주간 분노와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평소에 부부가 분노하고 다투는 일이 일상생활인데 이상하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그것이 말씀의 능력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들었지만 더욱 심한 분노와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요! 자기 분노를 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오늘말씀은 도둑질 하는 자는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나는 도둑질 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떳떳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도둑질을 말씀드리면 세상에 도둑질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자기변호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큰 도둑들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작은 도둑질은 도둑질도 아니라고 여깁니다. 천억을 도둑질 한 사람이나 천원을 도둑질 한 사람이나 같은 도둑질입니다. 이런 도둑질이 왜 일어납니까?

 

예레미야 2:13절의 말씀에서 두 가지 악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물을 저축하지 못할 웅덩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웅덩이에 자기가 살아가야 할 것들을 챙겨 넣어야 하기에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인생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공급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살려야 하는 인생이 되었기에 도둑질이 아주 일생이 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나 관공서의 간부들에게 지금 모든 것이 들통 났으니 빨리 몸을 피하라고 문자를 보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피하였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9~11절을 봅니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받지 못하는 불의한 자들의 목록들이 나옵니다. 역시 도적도 나옵니다. 그런데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를 입었지만 아직 옛 습관이 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어지는 12~20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의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셨기에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이제 도둑질이 무엇인지 성경전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최초의 도둑질은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 도둑질입니다. 이러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이라도 자기의 소유로 삼으려고 하는 욕망들이 다 내재되어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도둑질의 모습이 야곱의 아내 라헬이 자기 친정의 드라빔을 훔쳐 나옵니다.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입니다. 자기의 복을 위하여 우상인 드라빔을 훔쳐 나오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과 에봇과 드라빔을 단 지파가 강탈해 가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이러한 도둑질에 대하여 율법에서 금지합니다.

 

십계명의 제 팔 계명에서도 도둑질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계명에서는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합니다. 도둑질이란 결국 탐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웃의 소유물에 대한 내용들이 율법에서 아주 상세하게 나오며 도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하여서도 상세하게 나옵니다. 몇 배의 보상을 할 것이며, 어떤 형벌이 있을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에서 이렇게 도둑질을 금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 되었던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을 받아 여호와의 전쟁으로 얻은 약속의 땅에 은혜로 들어갔기 때문에 도둑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 살아야 하는 자들이 도둑으로 살아가는 것은 은혜를 잊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온갖 도둑질이 다 나타났습니다. 이사야 1:23절입니다.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호세아 4:1~2절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라기 3:8~9절입니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이 도둑질에 대하여는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십일조가 무엇을 말씀합니까? 모든 소산물의 처음 것의 희생으로 나머지가 거룩해 지는 것을 말하는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말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값 주고 사신 것이 되기에 나의 것이라고는 없는 자들입니다. 모든 것이 주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여기며 사는 것이 바로 도둑입니다. 고린도전서 4:7절입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모든 것을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고전2:12). 이런 자들은 도둑질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고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게 됩니다.

 

사도행전 20:34~35절입니다.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 사도가 이렇게 수고하여 무엇을 주려고 하였습니까? 그들에게 돈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또 다른 도둑질도 봅니다. 사무엘하 15:6절입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압살롬이 다윗에게로 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훔칩니다. 결국 반역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중매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부를 마치 자기의 제자나 자기의 종으로 삼아버리는 자들이 다 그 마음을 훔치는 도둑들입니다. 지난주에 미국에서 어떤 분이 전화가 왔습니다. 기도 한다는 어떤 권사의 기도 받은 이야기를 합니다. 기도 받고 나서 반드시 봉투를 내어 놓아야 하는 것도 말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고린도후서 11:20절의 말씀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이런 도둑들이 세상에 천지로 늘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둑들에게 넘어가는 자들은 왜 그럴까요? 그 안에 진리가 없고 도둑의 심보가 들어있기에 그렇습니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거쳐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한 어려움 없이 무당에게 굿하듯이 돈을 내고 한 번에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도둑놈의 심보가 있기에 도둑들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도둑질합니다. 예레미야 23:30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을 도둑질 하는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치신다고 하십니다. 이런 선지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 대한 말씀을 예레미야 23:9~32절까지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눈으로 보시고 귀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봉독”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도 못한 자들이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자기들의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선지자라면 내 백성을 악에서 돌이키게 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도둑질 하는 자는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단지 세상의 구제하는 차원이 아님을 지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을 하였습니다. 물론 도둑질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런 정도로만 머문다면 세상의 모든 윤리도덕과 종교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본 말씀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도둑질 하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도록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2:16~17절을 봅니다.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가난한 자란 ‘필요를 가진 자’ 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서 의사가 필요한 자가 누구입니까? 병든 자입니다. 그러므로 병든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 병든 가난한 자를 무엇으로 연결시킵니까? 세리와 죄인들로 연결시킵니다. 죄로 인하여 가난하여진 자를 무엇으로 구제할 수가 있습니까? 의가 없어 가난한 자가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구제입니다.

 

마태복음 19:16~26절입니다. “봉독”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다 지켰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하고자 하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을 때에 이 부자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율법으로 흠이 없다고 하는 이런 바리새인들의 의로는 단 한 사람도 생명을 얻는 구제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구제할 수 있는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할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19~21절입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무엇이 도둑질 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여 구제하는 것인지 아주 분명한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8: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 후서 7장과 8장은 연보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연보가 바로 예수님임을 말씀합니다. 부요하신 분이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을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의 자리에 오신 것이 자기 백성을 부요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 연보입니다. 이런 연보를 받은 자들은 또한 형제를 위하여 연보를 하게 됩니다. 이런 연보란 물질적인 연보도 당연히 포함되지만 그런 연보를 통하여 예수님의 연보되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에게 무엇으로 구제하였습니까? 금과 은은 나에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준 것이 참으로 선한 일을 한 구제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6:10절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 사도 자신도 부자 관원처럼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한 사람이지만 단 한사람도 구제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인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제를 받고 나서 무엇이 참된 구제임을 알고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믿음에 부요하게 하였습니다. 이 구제를 우리도 받고 이 구제를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