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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에베소서 3:7~9 은혜로 된 일꾼 2012. 12. 23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제가 전도사 때 초등학교 1~6학년까지의 주일학교를 맡았습니다. 교사가 약 50명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아주 열심히 교사를 하는 분도 있었고 마지못해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기억나는 한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남자로 자그마한 분이었습니다. 혀도 조금 짧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성실하게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반 아이를 심방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부장 장로님이 저에게 그 선생님의 과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교회당을 지을 때 동네사람들이 반대를 하였는데 그 선생님도 열렬히 반대하여 교회당 입구로 들어오는 길목에 블록으로 임시거처를 마련하여 그 안에 누워있었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반대하던 분이 그 교회당에 와서 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주일학교 부장을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7절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위하여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서 된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바울을 사역자로 사용하시는데 바울이 합당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합당한 일꾼입니까? 어려서부터 바울의 일꾼 됨을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잘 몰라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였지만 그 열심을 사용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약에 정통한 지식이 있었고 로마의 시민이고 헬라지식도 대단한 사람이었기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을 받았다면 그것은 바울의 조건을 보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제가 방금 예를 들은 이런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해롭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1~9절입니다. “봉독” 바울이 전한 복음을 왜곡시키는 자들을 향하여 개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율법적인 행위에 가치를 두는 자들을 보고 말합니다. 그들이 개들이며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 정도로 말하는 이유는 자신이 전에 그런 자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육체를 말한다면 자신은 그들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베냐민 지파이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며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합니다. 유대인 중에 이 정도면 최고의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은혜로 일꾼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1~15절을 봅니다. “봉독” 사도행전 7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일에 가담한 바울이 지금은 다메섹의 여러 회당에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기 위하여 살기등등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합니다. 바울이 주여 누구십니까? 라고 물을 때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합니다. 주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는 데 눈은 떴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직가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서 안수하여 보게 하고 그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는 대로” 바울이 자기가 원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복음을 믿고 전하는 자들을 다 잡아 죽여서 교회를 진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자가 어떻게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주의 능력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주를 핍박하기 위하여 달려가는 그 힘보다 더 강력한 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였고 또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달려가던 사람이 180도 바뀌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하고 다니는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8절을 봅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나에게” 문법에서 최상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최고 높은 것과 최고 낮은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장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신이라고 하는 것은 바울 자신이 전에 어떤 자였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겸손하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8~10절입니다.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만삭 되지 못한 자, 가장 작은 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로 된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여러 가지 직분을 받고 여러 모양의 봉사를 합니다. 이런 봉사들이 과연 은혜로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억지로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어서 합니까? 우리가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고 합니다. 적어도 장로교 간판을 건 교회는 그렇게 전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상급을 받으려면 교회에서 충성하는 정도로 결정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하였습니다. 만약 열심히 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주도 받는다고 하기에 예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어보니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점점알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일도 빠지고 헌금도 안하는 것이 처음에는 주저주저 하게 되었는데 안 해도 별로 저주 받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복을 더 받은 것도 아니고 거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알뜰살뜰 살았기에 이렇게 살게 된 것이지 하나님의 복과 저주란 없는 것이다. 그저 내 편한 데로 살자는 식으로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혹시 지옥이 있어서 지옥에 가면 안 되니 교회당에 등록은 하고 억지로 보험들 듯이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런 분이 계시다면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믿어지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흉내 낸다고 되겠습니까? 그저 나가 마음껏 노시다가 정말로 믿어지시면 그때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고집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바울을 돌려놓으신 분이 저와 여러분을 돌려놓지 못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봅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바울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일꾼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방인에게 드러내는 도구로 바울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무언가 잘난 것이 있어서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전에 노회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동계수련회에 갔습니다. 강사가 한분 오셨는데 현직 변호사이면서 목사였습니다. 이런 분이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들을까요? 역시 변호사라서 설교 잘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키가 작고 머리는 대머리고 코는 매부리코에 외모로 별 볼 것이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성도들에게 시험에 들 만한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갈4:13~15).

 

고린도후서 12:7~10절입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 약함 속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문다는 것을 바울이 알았기에 약한 것들을 기뻐하고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일꾼입니다.

 

본문 8절 후반을 봅니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바울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이 측량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에베소서 1:1~2:22절까지를 죽 읽었습니다. 오늘은 간단히 요약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이 복이 무엇입니까?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측량할 수 있는 내용입니까? 이 엄청난 복을 주신 것은 그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은혜에서 은혜입니다.

 

처음에 어느 교사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의 예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 그래서 세상의 풍속만 따르고 자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데로 하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까지 앉혀놓았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측량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이 원수된 것처럼 유대인과 이방인도 원수였는데 이 둘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사람을 만들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었다는 이 놀라운 은혜가 무엇으로 측량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요일 저녁에 에스겔서를 보고 있습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완성된 성전의 동쪽 문지방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은 건물이 아닙니다. 이 생명수가 흐르는 곳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강물을 측량하게 합니다. 처음 일천 척을 측량하니 발목 까지 오고 다음에 일천 척을 측량하니 무릎까지 오고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니 허리까지 오고 그 다음에 일천 척을 측량하니 사람이 헤엄칠 만한 물이며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측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강물이 너무 깊고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수 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냅니다. 이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알고 받을 수가 있습니까?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기에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성령을 보내주시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 풍성함을 알게 되면 세상의 것들은 점점 시시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기 위하여 은혜로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로마서 11:33~36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새해에 여러 가지 봉사를 여러분이 할 것입니다. 그 일 자체의 잘하고 못하고는 별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을 위하여 부름 받은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알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교회를 통하여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일들은 일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알아 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은혜의 일꾼이 되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더욱 맛보아 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