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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14~19 그리스도는 어디에? 2013. 1. 27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사도의 기도 중에 지난주에는 속사람의 강건함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속사람의 강건함이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하게 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속사람이 강건하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미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1:1절을 보시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13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다시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시는지 전체적으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인데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히브리말로는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나 그리스도는 같은 말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가 아직도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상태로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 그리스도는 아무른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고 이제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은 성령과 믿음으로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의 듣고 믿는 것이 성령으로 되는 것이며 이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20~24절입니다.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해서 따라 나서지 말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4:23~28입니다.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고 마태복음은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기에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는 소리 듣고 헤매고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의 마음에 계신다고 답을 하시겠지요! 그런데 정말로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고린도후서 13:5절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믿음 안에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합니다. 믿음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버림받은 자라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우리의 마음에 계십니까? 무엇으로 확증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몇 성경구절을 들이대면서 자신은 그렇게 믿는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12절을 인용하면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기에 나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였기에 나는 믿음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8:15절을 인용하면서 양자의 영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또는 고린도전서 12:3절의 말씀을 들면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라고 할 수 없는데 나는 예수님을 주로 믿기에 믿음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이 과연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주인이 맞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주인으로 계시는 사람과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 밖에 있는 자와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전자는 예수님과 사귐이 있습니다. 후자는 예수님을 종교적으로 섬기려고 합니다. ‘나’ 여기에 있고 ‘너’ 거기에 있는 식입니다. ‘왕의 남자’라는 영화에서 광대가 소경 흉내를 내면서 그런 놀이를 합니다. 이것을 신과 연결하여도 됩니다. 나는 여기에 있고 신은 저기에 있고 그래서 신에게 정성을 바쳐서 내가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내자고 한다면 그 대상이 예수님이든 성령님이든 하나님이든 그것이 종교라는 말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종교적인 규율과 금욕적인 모습과 지극한 정성으로 신을 대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해서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이기에 그 모든 것이 다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종교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주인이 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여전히 나의 주인으로 있으면서 나보다 능력이 많은 신이라는 대상에게 빌어서 나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에 넘어간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죄가 우리 안에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을 절대 진리며 선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나를 공고히 하고 영속화 시키는 것은 선으로 여기지만 나를 무너지게 하는 자는 악으로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관계가 완전히 역전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하신지 물으신 후에 나온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대답은 예수님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 복인가 하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비로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장로들에게 잡히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말리고 나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사단,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 것은 자신이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예수님께 도움을 주어야 예수님의 나라에서 한 자리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사단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네게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아직 주인으로 있으면서 예수님을 도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내면 자신도 그곳에서 높은 자리 차지하리라는 자기를 위한 예수님 따름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새로운 대통령 후보자가 인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측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도왔겠습니까? 때로는 대세가 이회창이었다가 때로 이명박으로 기울어질 때도 꿋꿋하게 박근혜의 곁을 지킨 자들이 지금 다들 한자리씩 합니다.

 

세상정치에서 주군을 모시는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생각이 바로 사단의 생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습은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에 주로 모신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자기 부인 즉 자기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이래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이 길을 가시겠습니까? 아직도 남은 인생이 많습니다. 죽기 싫으시다면 예수님을 버리시고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면 계산을 해 보고 따라야 할 것이 아닙니까?

 

누가복음 14:25~35절입니다. “봉독”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기 부인이란 부모 처자식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조차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려고 이런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까? 그러므로 망대를 세우는 자가 준공하기 까지 어느 정도의 비용을 계산하고 공사를 시작하듯이 또 전쟁에 나가는 임금이 적과 싸울 때 계산해보고 나가듯이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하여 잃어버릴 것이 무엇이며 얻을 것이 무엇인지 계산하고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절로 표현하면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 함께 죽었고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반드시 자기 부인, 자기 죽음이 전제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믿습니까? 교회 다니는 것 말고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주로 계시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주로 계신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시기에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이 곧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63절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우리의 육적인 노력들은 무익합니다. 이 영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곧 영이며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성령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합니다. 자신들은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여긴 자들입니다. 생활도 부요하고 믿음도 부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가련하고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계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나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과연 그들의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에베소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주와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계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