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요한계시록 22:16-17 교회를 위하여 2010. 5. 30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6절을 봅니다. “나 예수는” 이 말씀의 권세가 느껴집니까? “나 예수는” 이 말씀 앞에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양을 치다가 광야 떨기나무에서 불이 붙어서 꺼지지 아니한 것을 보고 이상하여 다가가 보았습니다. 그때 불 가운데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습니다. 이런 모세를 보내실 때에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답변은 “나는 나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 예수는” 이 말씀에서 그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예수님이 알파와 오메가 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며 재림의 주가 되시며 심판의 주가 되십니다.

 

수련회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나 예수는”이렇게 말씀하시면 그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마음의 자세가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빌립보서 2:10-11절을 봅니다.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도는 지금 무릎을 꿇습니다. 성도가 아닌 자는 오직 자기 이름에만 관심이 있다가 나중에 심판받을 때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계시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알려주신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7:9절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님은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고 떠나셔야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은 아직 세상에 있기에 이런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만이 아니라 요한계시록도 교회를 위하여 증언 한 것입니다.

 

16절에서 이렇게 증언하게 하신 분이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합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로마서 1:2-6절에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그리고 새벽별에 대하여서는 민수기 24:17절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갔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예언에서 야곱에서 한 별이 나온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한 별이 비추어 그 길을 인도하였습니다. 역시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의 성취입니다. 이런 별이 예수님이라면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이 별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1:19-21절입니다.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사건보다 더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이란 변화산의 경험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화된 것과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마음에 샛별이 떠오를 때 까지 말씀에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면 그것이 샛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예언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성령이 임하시면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새벽별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 세상이 온통 흑암이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밤중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9:1-2절을 봅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온 세상이 흑암에 갇힌 것입니다. 그런데 큰 빛을 보았다는 그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런 빛을 주시는 분이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이사야 9:6절에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한 아기로 오신 분이 그의 어깨에 정사(政事)를 메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이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하십니다. 그 평강의 더함이 영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평강의 왕이 되십니까? 5절에서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섶 같이 살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전쟁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나라는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호전주의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남한도 북한도 서로의 이권을 위하여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버텨온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한이나 북한이나 둘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민족끼리 이렇게 대치하여 있는 것도 다 어둠의 세력 하에 있는 것입니다. 각자가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한은 하나님편이고 북한은 마귀편이 아닙니다. 둘 다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세밀하게 말씀으로 좁혀보면 우리 각자가 다 하나님의 원수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4절입니다.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여기서 간음한 여인들이라고 하니 남자는 아니라고 보십니까?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다 간음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에서는 간음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심지어 교회마저 세상과 벗되고자 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왜 짜증나고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까? 단 한 가지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이런 세상이 캄캄한 흑암이며 어둠이며 사망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까? 이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영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을 보시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부란 교회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부르심을 입어 흑암에서 새벽별을 보고 나온 사람이 신부 즉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라는 곳은 새벽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흑암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린도후서 4:3-4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이 복음의 광채 즉 새벽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여기에 갇힌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빛을 보게된 것입니까? 6절에서 어두운데 빛이 비치라고 하신 그 창조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빛이 우리의 보배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를 자랑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렇게 교회라고 모였는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까? 어둠의 세상에서 성공하고 복 받았다는 그런 방식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박해를 당하고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벽별을 보는 것입니다. 망할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어두움이 빛 인양 여기기에 새벽별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낭패와 실망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야 새벽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낭패와 실망과 죽음에 넘겨지는 것도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참 괴로운 말씀으로 들립니까? 아니면 위로가 되십니까? 괴롭게 들리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로가 되시는 분은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계시는 분이실 것입니다. 272장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후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갑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지 않았다면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령과 신부가 하는 말이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듣는 자도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과연 신부입니까? 그렇다면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오라고 하는 것입니까? 목마른 자에게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에 목말라 하여야 합니까? 세상에 목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목말라 하는 자에게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이사야 55:1절을 봅니다.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사람들은 참된 양식이 되지도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헛된 일에 수고하여 바쁜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참된 양식이 되지를 못하는 것에 사람들은 한 평생동안 목숨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둠에 사로잡힌 모습이며 이 세상의 신에 의하여 눈이 가려진 것입니다. 우리도 다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교회가 맞기는 한 것입니까? 목사 있고 장로 있고 당회와 제직회가 있다고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 사람이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성령의 부름을 받은 교회라면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음이 죄이기에 우리는 날마다 성령에 의하여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의가 없음에 대하여서도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에 세상의 판단에 대하여서 자유 해야 하는데 아직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고 있으니 책망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책망이 마음에 달게 오는 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만 혹 만에 한 사람 천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가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처럼 헛되고 헛된 것들을 구하며 살았는데 예수님께서 먼저 나타나셔서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한 생명수를 그 여인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란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셔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생명수를 값없이 얻은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사람이 만들 수도 없고 사람이 무너뜨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참된 교회라면 성령의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이 들리는 자가 신부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는 다시 목마른 사람들에게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합니다.